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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리더십이 갖춰야 할 조건

중앙일보 2016.09.25 20:55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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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저 영감이 총리로 있는 한 영국은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 같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1940년 6월 처칠 영국 총리의 라디오 연설을 듣고 비서에게 한 말이다. 루스벨트는 처칠의 연설을 듣고 영국이 독일과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확신을 얻어 미국의 참전과 영국 원조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처럼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리더십은 국가의 흥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지난 한가위에는 리더십 이야기가 유난히 많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있다. 추석 때면 곡식이 여물어가고 먹거리가 풍족해져 가족과 이웃이 함께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그러나 올해 한가위는 따스함보다는 불안함이 많았다. 계속되는 경제 침체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사건, 경주 지진 사태에서 보듯 현장에 정부는 없고 국민 스스로 알아서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불안사회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사드 건으로 중국을 돌아앉게 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없어 전술핵무기가 한반도에 재배치되더라도 우리의 뜻과 무관하게 사용될 수 있는 처지인데 일부 여당 의원은 전술핵 재배치 등 핵 보유를 주장한다. 미국에서는 선제타격뿐 아니라 협상론까지 나오고 있는데도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전쟁 위험 제거에 효과가 없음이 증명된 일방적 항복 요구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안전과 번영의 싹은 빈약하고 위험의 그림자가 짙어가는 상황에서 진정한 리더십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지난 한가위에 리더십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 나는 성공할 수 있는 리더십을 처칠 사례와 최근 미국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으로 재조명된 비행기 불시착 사건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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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BBC의 여론조사에서 영국 국민은 처칠을 가장 위대한 영국인으로 선정했다. 처칠은 종전 직후에도 그런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치러진 총선에서 영국 국민은 처칠을 선택하지 않았다. 처칠이 전후 복구에 적합한 리더십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모든 사회와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절대적 리더십은 존재하지 않으며, 시대적 과제에 적합한 리더십이 따로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대선 때의 시대적 과제 가운데 하나는 ‘경제민주화’였다. 좀 더 정확히는 동반성장이었다. 모든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주창했다. 그러나 대선 이후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를 외면했다. 지난번 대선후보들은 경제민주화를 득표용으로 이용했을 뿐 자신의 정치철학으로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서민들의 가계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시대적 과제 해결을 위한 정치철학이 리더십의 기본요건이라면 모든 리더십이 갖춰야 할 필수덕목도 있다. 그것은 자신이 맡은 직책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2009년 1월 15일 뉴욕 허드슨강에 유에스 에어웨이스(US Airways) 여객기가 사고로 불시착했다. 비행기는 이륙한 지 2분 만에 새떼와 부딪혀 엔진이 모두 정지됐다. 기장인 설런버거는 관제탑이 인근 공항으로 향할 것을 권유했지만 비행기 상태를 고려해 비행기를 허드슨강에 비상착수(非常着水)시켰다. 엔진이 정지된 직후 허드슨강에 불시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6분이었다. 설런버거 기장이 155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기장으로서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승객을 안전하게 해야 할 의무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허드슨강의 기적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든 안전사고와 극명하게 비교된다. 허드슨강에서는 기장을 비롯한 모든 관계자가 직책에 부여된 의무를 다했다. 인근 뉴욕시민들도 인도적 의무로 구조에 나섰다. 그러나 우리는 진도 주민의 이웃 사랑은 넘쳤지만 아래로는 승무원과 선장에서부터 위로는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계자가 직위에 부여된 명예와 권력만 향유했을 뿐 직책에 부여된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았거나 부족했다. 그 결과 304명의 꽃다운 생명이 희생됐다. 그래서 리더십이 갖춰야 할 필수요건을 자신이 맡은 직책에 필요한 식견을 갖추고 부여된 의무와 책임을 정확히 실행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시대정신에 부합한 정치철학과 직책에 부여된 책임 및 의무를 실행할 품성을 동시에 갖춘 리더십이 아쉽다. 하나 더 보태자면 군림하지 않고 국민을 섬기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예수도 말하지 않았던가. 누구든지 크게 되고 싶은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남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그런데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리더십은 주권자가 선택하기에 주권자인 국민의 현명함은 더욱 필요하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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