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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고 굴레 벗어나기 몸부림 “일본 국채 사자” 손길에 무산

중앙선데이 2016.09.25 01:33 498호 3면 지면보기
마중물을 붓고 헬리콥터를 띄운 것도 모자라 살수차까지 동원했다. 4년째 비상체제를 가동 중인 일본중앙은행(BOJ) 이야기다. BOJ는 20~21일 정례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장기 국채 금리를 0% 수준으로 유지하는 새로운 통화 정책을 내놓았다. 현재 마이너스 수준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0%가 되도록 다양한 만기의 국채를 사고팔겠다는 의미다. BOJ가 중장기 국채 금리를 통화정책의 타깃으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적·질적완화(QQE)에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했지만 인플레이션에 불이 붙지 않자 선택한 특단의 조치다.



허인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기채를 팔고 단기채 매입을 늘리면 상대적으로 단기채 금리가 더 떨어지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장단기 채권 간 금리차가 발생하면 경제 주체의 심리적 안정과 금융회사의 수익성 제고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BOJ의 발표 뒤 채권 시장은 다소 활력을 보였다. 채권 매도가 늘며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는 플러스로 돌아섰고 닛케이지수도 1.91%나 올랐다.


플라자합의 31년, 새로운 통화정책 실험 나선 일본은행

BOJ의 발표가 있고 약 13시간 뒤인 22일 오전 3시(한국시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를 발표했다.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이 많지는 않았지만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Fed 내부의 매파가 얼마나 목소리를 낼지 관심을 끌었다. 고민하던 연준은 결국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22일 아침, 투자자들은 일본 국채를 사기 위해 달러를 엔화로 바꿨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때마다 엔화는 인기스타가 된다. 엔화 수요가 많아지자 이날 엔-달러 환율은 1.32엔 내린 100.39엔에 장을 마쳤다. 전날 BOJ의 깜짝 발표 효과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BOJ 통화정책의 목표는 총수요 확대BOJ의 통화정책 목표는 기업경기 회복과 고용 증대를 통한 총수요 확대다. 인구 감소, 고령화 등 구조적 변화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엔화의 평가절하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BOJ는 매년 80조 엔 규모의 국채와 6조 엔 규모의 주가연계증권(ETF)을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 중이다. BOJ가 여태까지 사들인 국채·증권만 한국 1년 예산의 11배 규모인 386조7000억 엔(약 4345조원)에 달한다. 기업 곳곳에 돈이 잘 흘러가도록 윤활유(마이너스 금리)도 잔뜩 뿌렸다. 중앙은행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성과는 초라하다. 일본은 당초 2015년을 목표로 했던 인플레이션율 2% 달성을 올해 말로 미뤘다. 투자와 민간 소비가 부진했던 탓이다. 올해 상황도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본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8%.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지난해보다 낮은 0.6%로 점치고 있다.



돈 살포의 효과가 미진한 이유는 외국인의 열렬한 ‘바이 재팬(BUY JAPAN)’ 분위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대표적인 위험회피 자산으로 일본 채권을 꼽는다. 글로벌 불균형에 곳곳이 지뢰밭인 투자환경이 계속될수록 일본 채권 비중은 늘어난다.



올 1월 BOJ가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한 이후로도 기현상이 나타났다. 외국계 은행들이 조달 금리가 비싼 미 달러화 대신 엔화를 대거 빌리며 도쿄 외환시장의 은행 간 금리(TIBOR)가 플러스를 기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를 ‘금리 왜곡’이라고 평가했다.일본 주식시장도 BOJ가 직접 ETF를 사들이자 증시 호조를 기대한 외국계 자금이 대거 몰려들었다. 일본 증시에서 외국인은 2013~2015년 3년간 총 15조7000억 엔을 순매수했다. 2013년 초 1만688.11이었던 닛케이지수는 2015년 말 1만9033.71로 2배 가까이로 뛰었다. 이 기간 개인은 17조4000억 엔어치를 순매도했다. 물론 증시 상승에 따른 자산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베노믹스가 한창 양적완화의 시동을 걸던 2013년 12월 엔-달러 환율은 105.4엔. 지난 2년여 동안 BOJ가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음에도 엔-달러 환율은 오히려 100엔대 초로 떨어졌다. 이쯤 되면 일본이 어떤 수를 써도 엔고는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다. 양적·질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로 이웃나라를 거지로 만들려던 일본으로선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일본의 엔고 굴레는 1985년 9월 22일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 등 주요 5개국(G5)이 맺은 플라자합의에서 시작됐다. 변동환율제가 도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미국은 일본이 환율조작을 통해 엔화가치를 낮추고 있다고 봤다. 미국으로선 무역수지 적자 1336억 달러(85년 기준) 중 497억 달러(37.2%)가 일본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이를 좌시할 수 없었다. 특히 공산진영과의 체제 경쟁과 베트남 전쟁, 달러 국제화 등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재정 부담에 시달렸다.

1985년 플라자합의를 마치고 카메라 앞에 선 G5 재무장관들. 왼쪽부터 서독의 게르하르트 슈톨텐베르크, 프랑스의 피에르 베레고부아,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자크 드 라로지에르 IMF 총재, 영국의 나이절 로슨, 일본의 다케시타 노보루. [중앙포토]



채무국 전락한 미국이 반전 카드로 관철결국 미국은 83년 채무국 신세로 전락했고, 하루 4억 달러의 이자를 물어야 했다. 이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로 엔화 절상을 떠올렸다. 당시 미국과 안보·통상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던 일본으로서도 더 이상의 외교 관계 악화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엔화 절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플라자합의를 전후해 G5는 적극적으로 공조했다. 플라자합의 1주일 전인 9월 15일 런던에서 회담을 갖고 6주간 180억 달러의 협조 개입을 실시해 달러화 가치를 10~12% 하락시키기로 했다. 달러를 팔아 엔·마르크를 사들였다. 재원은 미국과 일본이 각각 30%, 독일이 25%, 프랑스가 10%, 영국이 5% 부담하기로 했다.



플라자합의 직후 240엔이던 엔-달러 환율은 9월 말 218엔으로 20엔 이상 절상됐고, 1년 뒤인 86년 9월엔 153엔으로 치솟았다. 87년 말엔 123엔이 됐다. 당시 총리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엔화 절상폭을 10~20%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결과적으로 안일한 판단이었다.



엔고는 한동안 축복이었다. 전후 40년 동안 근면하게 일만 하던 일본은 엔화가 대폭 오르자 전 세계를 누볐다. 미국의 록펠러센터(89년),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87년) 등 해외 자산을 마구 사들였다. 엔고로 인한 경기 둔화를 두려워한 BOJ가 금리를 2.5% 내리자 돈이 더 넘쳐났다. 닛케이지수는 3년 동안 3배, 부동산은 한 해 70%씩 뛰었다. 한국도 플라자합의 이후 저유가와 저금리, 저달러 등 ‘3저(低)’ 호황을 누리며 10%대 성장을 구가했다.



일본의 호황을 두고 한 BOJ 간부는 “마른 장작 위에 앉은 듯한 불편함”이라고 토로했다. 경기 과열을 걱정한 BOJ는 정책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90년 8월부터 1년여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3.5%포인트나 올렸다. 정부도 토지 관련 융자에 대출총량규제를 실시했다. 경기는 급속히 냉각됐다. 80년대 말 3만8000을 달리던 주가는 10년 뒤 6000대로 쪼그라들고, 91년 도쿄의 5000만 엔짜리 주택은 97년 1500만 엔으로 고꾸라졌다. 엔고를 견디지 못한 기업들은 동남아로 떠나는 바람에 대도시와 산업단지가 텅텅 비었다. 수요를 뒷받침해 줄 기업이 없었다.



갈 길 잃은 시중자금은 안전한 일본 국채에 몰렸다. 일본 정부 부채가 대부분 국내에서 소화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면이 외국인 자금을 유인해 엔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플라자합의 이후 엔-달러 환율은 단 한 번도 200엔을 넘지 못했다. 미국의 인위적인 엔화절상이 세계 2위 경제 대국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일본 역대 총리 중 가장 경제에 밝다는 미야자와 기이치는 “채무 등 일본의 모든 경제 문제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플라자합의가 있다”고 말한다.



플라자합의처럼 힘의 논리에 의한 인위적인 환율 개입은 여전하다. 통화가 다양해지고 경제가 다극화된 지금은 과거보다 더욱 심해졌다. 환율은 상대적이다. 미국이 돈을 풀면 일본도 그에 상응하는 자금을 내놓아야 현상유지를 할 수 있다. 2010~2011년 미국의 양적완화에 일본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엔-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70엔대로 하락했고 한동안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중국·일본 등 수출 경쟁력을 지키려는 나라들은 경쟁적으로 고환율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근린궁핍화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일본으로선 85년 이후 31년째 환율과 다툼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세계 곳곳에서 근린궁핍화 정책 펼쳐미국은 2010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상대로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2010년 9월 타운홀 미팅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위안화가 지나치게 평가절하돼 있다”며 논쟁의 불을 댕겼다. 위안화를 평가절상하는 제2의 플라자합의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실제 양상은 85년과 비슷했다. 2009년 미국의 무역적자 중 중국의 비중은 43.7%. 양적완화에 따른 재정부담에 허덕이는 미국은 중국을 압박했다. 철강·닭고기 등 일부 품목에서 반덤핑 관세 부과 등 무역분쟁도 일부 발생했다.



일본의 전례를 본 중국으로선 섣불리 위안화 절상에 나서기 어렵다. 물론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미국으로부터 시장경제 지위를 획득하고 싶은 욕심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동환율제를 택하고 외환시장을 개방했다간 자칫 엔화처럼 평가절상의 굴레에 갇혀 버릴 수도 있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 이코노미스트는 “엔화가 일본 통화당국자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위안화도 국제통화가 되면 지금처럼 중국이 좌우할 수 없다”며 “중국 당국자들은 위안화가 자칫 엔화처럼 될까 염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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