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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처럼 ‘출마’ 고건처럼 ‘불출마’ … 기로에 선 반기문

중앙선데이 2016.09.25 01:30 498호 5면 지면보기
“‘소나무가 산에 있어야지, 집에 들어가면 분재가 된다’고 걱정하는 소리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소나무나 대나무는 옮겨 심어도 소나무나 대나무이고 토양이 맞지 않으면 말라 죽을지언정 전나무나 갈대가 될 수 없다.”(이회창 전 국무총리, 1996년 1월 신한국당 입당 직후 고려대 강연회에서)



“1년 가까이 나름대로 상생의 정치를 찾아 진력해왔으나 대결적 정치구조 앞에서 저의 역량이 너무나 부족함을 통감한다. 제 활동의 성과가 당초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여론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건 전 국무총리, 2007년 1월 대선 불출마 및 정계 은퇴 성명에서)


반기문의 귀국 행보는

‘대쪽 총리’와 ‘행정의 달인’으로 불렸던 이 전 총리와 고 전 총리. 15대와 17대 대선을 1~2년 앞두고 지지도 1위를 달리던 두 전직 총리의 운명은 이처럼 엇갈렸다. 한 명은 결국 패배했지만 대선 출마로, 다른 한 명은 불출마의 길로 갔다. 이 전 총리에게는 있고 고 전 총리에게는 없었던 것이 무엇일까.



정치컨설턴트들은 대선주자의 필요조건으로 지역 기반과 정치세력을 꼽는다. 충남 예산에 원적을 두고 있던 이 전 총리는 당시 대중적 인기와 함께 충청이라는 지역 기반을 갖고 있었다. 그는 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권유를 받아들여 신한국당행을 선택했다. 입당 이후에는 신한국당 내 주류인 민주계가 아닌 비주류인 민정계와 손을 잡아 당내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고 결국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반면 서울 출신인 고 전 총리는 12대 총선에서 전북 군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당선됐으나 지역 기반이 약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사분오열돼 있었다. 그를 총리로 지명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오히려 “실패한 인사”라는 발언으로 고 전 총리의 의욕을 꺾었다. 고 전 총리에겐 험난한 대선 정국에서 자신을 밀어줄 수 있는 실질적인 정치 세력이 없었다.



그렇다면 19대 대선을 1년3개월 앞두고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어떨까. 충북 음성 출신인 반 총장은 충청대망론으로 주목받는 당사자다.



반 총장은 최근 내년 1월 귀국해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반 총장이 대선 행보에 나서면서 만약 새누리당을 선택할 경우 뚜렷한 차기 대선주자가 없는 친박(친박근혜) 주류의 지원 가능성이 크다. 반 총장이 새누리당에 입당해 친박계의 지지를 이끌어낸다면 이 전 총리와 유사한 길을 걸을 수 있다. 정치컨설팅회사인 시대정신 엄경영 대표는 “반 총장은 정치 지형적 측면에서 대선주자로서의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며 “더 중요한 것은 험난한 대선 경선과 본선의 길을 뚫고 나갈 권력 의지”라고 분석했다.



이 전 총리는 취임 4개월 만에 총리직을 던지며 자신을 임명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각을 세웠지만 나중에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다시 손을 잡을 정도로 강한 권력 의지를 선보였다. 신한국당 입당도 빨랐다. 15대 총선 3개월 전이자 대선을 거의 2년 가까이 남긴 96년 1월 입당했다. 반면 고 전 총리는 2006년 초부터 30%대의 높은 지지를 얻었으나 계속 외곽을 돌았다. 그랬던 지지도는 북한 핵실험 이후인 그해 10월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떨어졌다. 결국 고 전 총리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고 전 총리의 측근들은 “‘선거에서 지면 야당 당수라도 하겠다’는 결기를 보여야 한다”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반 총장의 권력 의지는 어떨까. 반 총장 측 인사들이 이와 관련해 최근 많이 하는 말이 있다. “2006년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 반기문과 10년 동안 유엔 수장을 지낸 2016년의 글로벌 정치인 반기문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한 측근 인사는 “지난 5월 방한했을 때 반 총장의 발언과 행보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며 “오는 10월 차기 유엔 총장이 선출되면 11~12월에 (대선 출마 여부를 놓고) 더욱 구체적으로 고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 총장에게도 약점과 위기 요인이 적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고령의 나이와 국내 상황에 대한 이해 부족을 약점으로 꼽는다. 44년생인 반 총장은 대선의 해인 2017년에 만 73세가 된다. 역대 최고령 당선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당선 당시 나이가 같다. 전 세계적으로 40대 지도자가 즐비하게 배출되고 있는 현상과 비교할 때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반 총장이 공·사석에서 “사무총장 10년 동안 마라톤을 100m 달리기 하듯이 했는데 하루도 결근하거나 감기에 걸려 쉰 적도 없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도 이를 의식한 것이다. 10년간 해외에 머물면서 국내 상황에 어둡다는 점도 정치 경험 부재와 맞물려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반 총장의 또 다른 측근은 “총장 재임 시절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17개 어젠다에는 현재 국내에서 현안이 되고 있는 저성장·양극화·교육·저출산·고령화 이슈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며 “정치를 하게 된다면 글로벌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상황에 맞는 대응 방안을 당연히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정치 경험이 전무한 반 총장의 정치력은 가장 큰 걸림돌이란 지적도 나온다. 특히 반 총장이 새누리당을 선택할 경우 친박과 비박 진영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가 난제 중 난제가 될 수 있다. 이 전 총리는 97년 대선 경선에서 신한국당 내 민정계의 지지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민주계를 제대로 포용하지 못해 결국 이인제 후보의 경선 불복과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새누리당 비박계 한 의원은 “반 총장이 만약 새누리당을 선택하면 연착륙과 경선 승리를 위해서는 친박의 지지가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과연 야당이 주장하는 ‘반기문=친박 후보’라는 프레임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력이 있을지가 의문시된다”고 말했다.



검증의 문턱도 반 총장에게는 또 다른 위기 요인이다. 실제 97년 이 전 총리의 대선 패배 요인 중 하나는 야권이 제기한 자녀 병역비리 의혹이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최근 기자들에게 “(역대 대선에서) 처음 지지도 1등을 한 후보가 과연 몇 분이나 당선됐나”라고 말하는 것도 대선주자로서의 검증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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