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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6 지진에 끄떡없는 비결, 매뉴얼·시스템·시민의식

중앙선데이 2016.09.25 01:24 498호 7면 지면보기

지진 발생 시 일본의 대피 매뉴얼 『도쿄 방재』

『도쿄 방재』



‘30년 이내에 70% 확률로 발생이 예측되고 있는 수도권 직하(直下) 지진. 당신은 준비돼 있습니까?’


현실로 다가온 지진, 일본서 배운다

지난해 9월 일본 도쿄 23개구 전역의 가정과 사무실에 도쿄도가 제작한 재난 매뉴얼 책자 『도쿄 방재(防災)』가 무료 배포됐다. 노란색 책 표지를 열자 수도권 직하 지진의 가능성과 대비 여부를 묻는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인에게 가장 두려운 건 도쿄 등 수도권 지하에서 발생하는 직하 지진과 시즈오카(靜岡)현 부근을 진원으로 하는 도카이(東海)지진이다. 도카이지진의 30년 내 발생 확률도 88%에 이른다.



2012년 일본 정부는 도쿄만 북쪽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일어나면 최대 1만1000명이 숨지고 건물 약 85만 채가 무너지거나 불길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했다. 도쿄 주민 1300만 명 중 239만 명은 학교 등 임시 피난처에서 생활해야 한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의 운행이 모두 중단돼 지진 발생 당일 약 448만 명은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집이 큰 피해를 보지 않더라도 전기·가스·수도 공급이 끊기고 식수와 식료품을 구하기 힘들게 된다.



총 323쪽 분량의는 ‘지금 대비하자(今やろう)’는 구호를 맨 앞에 내세우며 지진 대비 요령을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한다. ‘만일 지금 도쿄에 대지진이 일어난다면?’ ‘그때 집에 있다면? 지하철에 있다면?’ ‘한겨울이면? 한밤중이면? 혼자 있다면?’ 등의 질문을 잇따라 던지며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대지진 시뮬레이션은 지진 발생 직후의 행동요령과 피난, 피난생활, 생활 재건의 지침을 담고 있다. 지진이 발생하면 누구나 당황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때 최우선은 자신과 가족·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도쿄 미나토(港)구 등 일선 자치단체는 지진 매뉴얼을 별도로 제작해 배포한다. 한국어·영어·중국어 번역판까지 만들어 외국인들도 안전수칙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진동으로 가구가 넘어지거나 유리창이 깨지고 물건이 떨어져 머리 등을 강타하는 상황에 대비한 행동요령이 담겨 있다. 책상이나 테이블이 있다면 그 아래로 들어가 몸을 숨기는 게 급선무다. 흔들림이 진정되면 가스레인지 등 화기의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 지진은 가스 누출과 누전을 유발해 대형 화재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유리 파편에 다치지 않도록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문이나 창문을 열어 대피 통로를 확보한다. 백화점 등 상가에서는 쇼윈도나 진열대에서 상품이 떨어질 우려가 큰 만큼 기둥이나 벽 쪽으로 몸을 붙여 이동한다.



일본은 세계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10%가 집중되는 지진 대국이다. 다른 나라라면 큰 피해를 낳을 수도 있는 규모 6 정도의 지진에도 일본은 끄떡없다. 지난 21일 도쿄에서 남동쪽으로 600㎞ 떨어진 도리시마(鳥島) 인근 해저에서 규모 6.3, 이틀 뒤인 23일 간토(關東) 동쪽 바다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했지만 인명·재산 피해는 없었다. 건축물 내진 설계와 함께 철저한 반복 훈련을 통해 지진 매뉴얼을 평소부터 몸에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수시로 지진 대피 훈련이 실시된다. 매뉴얼에 따라 일단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긴 뒤 진동이 약해지면 머리에 방석이나 가방 등을 올리고 운동장으로 대피한다.



공동주택과 상업시설, 사무용 빌딩 등에서도 정기적으로 방재훈련이 이뤄진다. 출석 확인까지 한다. 사무실의 경우 직원 중 1명이 반드시 ‘방화·방재관리자’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5년에 한 번씩 시험이나 수강을 통해 자격을 갱신한다. 소방방재청과 각 지방자치단체는 방재센터에 지진박물관을 설치해 지진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알린다. 미야자와 마사히로(宮?正浩) 도쿄 북구 방재센터 소장은 “지진 발생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지만 대비는 가능하다”며 “지진 체험과 반복 훈련을 통해 준비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신속, 현장 중심, 매뉴얼에 따른 체계적 구조’를 지진 대응의 3원칙으로 내걸고 있다. 내각부는 2014년 ‘대규모 지진 방재·감재(減災)대책 대강(大綱)’을 마련했다. 사전 방재와 재해 발생 시 효과적 재해 응급대책, 재해지 안팎의 혼란 방지, 다양한 지역적 과제 대응, 2차재해·복합재해 대응, 본격 복구 등 6개 부분으로 나눠 지진 방재 시스템을 완성했다. 건축물 내진화와 지진해일 대책, 유사시 전기·가스·수도 등 생명선 확보, 자원봉사자들과의 연대 방안도 매뉴얼로 만들었다.



지진이 발생하면 ‘J-얼러트(Alert)’로 불리는 ‘전국순간경보시스템’이 즉시 가동된다. 지진의 규모와 진원의 깊이, 지진해일 발생 여부를 해당 지역 주민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통보한다. 지진 발생을 알리는 경보음도 요란하게 울린다. 일본 기상청은 수퍼컴퓨터를 이용해 지진의 상황을 수초 안에 분석한 뒤 국가재난방송사인 NHK 등 방송사에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TV에선 지진 속보 자막이 곧바로 뜬다. 지진의 규모가 클 경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속보 체제로 돌입한다. 정규 방송을 재개한 뒤에도 화면 위아래와 측면에 지진 속보가 계속 이어진다.



일본 정부는 지진 발생 직후 총리관저 위기관리센터를 중심으로 비상 대응에 나선다. 구마모토(熊本)현에서 규모 6.5의 1차 강진이 발생한 지난 4월 14일 오후 9시26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도쿄 시내 식당에서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현 방위상) 당시 자민당 정조회장 등과 식사 중이었다. 아베 총리는 지진 보고를 받고 5분 후인 9시41분 기자들 앞에 섰다. “재해 응급대책에 전력을 다하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후 곧장 총리관저로 돌아와 9시54분부터 위기관리센터를 지휘했다. 다음날 오전 현장 시찰 계획을 밝혔지만 16일 새벽 규모 7.3의 2차 강진이 발생하자 “피해 수습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피해 지역 방문을 취소했다.

지난 4월 일본 구마모토현 지진 당시 대학생들이 담요와 식량을 들고 임시대피소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자원봉사자들이 임시대피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국가 공공기관과 자치단체는 물론이고 일반 기업과 시민 자원봉사단체 등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자위대는 지진 발생 초기 신속하게 피해 현장에 들어가 구조와 주민 지원 활동을 벌였다. 2차 강진으로 피해가 커지자 병력을 2000명에서 2만 명으로 늘렸다. 경찰 1800명과 소방관 2600명도 구조활동에 참여했다. 국토교통성은 붕괴 위기에 놓인 건물과 다리·도로 등을 점검하고 안전대책을 세웠다. 전기통신 회사들은 대피소 등에 무료 인터넷망을 제공하며 피해자들을 지원했다.



구마모토 지진 피해 지역에는 전국 각지에서 자원봉사자가 몰렸다. 구마모토시 버스터미널 앞 자원봉사센터에는 봉사자들이 길게 늘어섰다. 2차 강진 발생 나흘 뒤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札幌)에서 비행기를 타고 지진 피해 지역에 들어온 하야시 순이치(林俊一·68)는 “구마모토와 인연은 없지만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닷새간 구마모토에 머무르며 이재민들을 도왔다.



일본의 높은 시민의식은 지진 피해 현장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식수와 빵·오니기리(주먹밥) 등 비상 식량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사람들이 몰리지만 식품 사재기는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많이 사면 다른 사람이 굶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피소에서 구호물품을 나눠줄 때도 긴 줄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1~2시간을 기다려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새치기하는 사람도 없다. 지난 4월 19일 구마모토현 미나미아소무라(南阿蘇村) 폐교 운동장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교실 대피소는 노약자에게 양보하고 식구 6명이 차 두 대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힘든 피난생활 중에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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