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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1위’ 빌 게이츠 위협하는 두 인물 오르테가·베저스

중앙선데이 2016.09.25 01:06 498호 18면 지면보기
빌 게이츠(60)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억만장자의 대명사다. 20여 년 동안 세계 최고의 갑부라는 ‘권좌’를 거의 그대로 지켜왔다. 1987년부터 부자 순위를 매겨온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특히 MS의 기업가치가 정점을 찍었던 90년대 중반~2007년 무렵 내내 부동의 1위였다. 이후 멕시코에서 유선통신 시장을 독점한 카를로스 슬림 헬루(76) 텔맥스텔레콤 회장과 ‘가치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86) 버크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 등 한때 그를 누르고 1위에 오른 부자도 있었지만, 얼마 못 가 게이츠에게 자리를 도로 뺏겼다.



그런 게이츠를 위협하는 강력한 상대가 최근 나타났다. 비록 보유 주식의 값어치 변동으로 권좌에서 다시 내려오긴 했지만(한국시간 22일 기준), 지난 9일 아만시오 오르테가(80) 인디텍스그룹 회장은 게이츠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다시 2위가 되고도 근소한 차이로 게이츠를 맹추격 중이다(지난해 10월에도 게이츠를 누른 적이 있다). 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가 정보기술(IT) 또는 부동산·투자·통신 등이 아닌, 패션이라는 이질적인 분야로 게이츠를 위협한다는 데 있다. 오르테가는 국내 길거리에서도 매장을 흔히 볼 수 있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브랜드 ‘자라(Zara)’를 창업했다.


바뀐 세계 부자 지형도 보니

패스트 패션은 디자인부터 제조와 공급·판매까지 단 3주 만에 이뤄지는 개념이다(2000년대 초, 비교할 만한 다른 브랜드들은 이 과정에 대략 5개월을 소모하고 있었다). 옷의 유행 주기가 짧아진 2000년대 젊은 소비자들은 빠른 공정에 열광했다. 자라는 88개국에서 2000여 매장을 둘 만큼 세계 의류 시장을 장악했다.



오르테가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전형적인 ‘흙수저’였다. 스페인 철도 근로자의 아들로 태어났고 13세 때(1949년)는 학업을 그만뒀다. 가난 때문이었다.



?한국서 자라 경쟁 상대는 온라인 쇼핑몰 ? 대신 한 양품점에서 심부름꾼으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성실성을 인정받아 17세엔 더 큰 양품점으로 이직했다. 27세가 되던 해, 그간의 노하우를 살려 잠옷 등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100달러가 초기 사업자금의 전부였지만 염가에 기능성·심미성을 갖춘 옷을 만들어 판다는 입소문이 나 사업에도 탄력을 받았다. 39세이던 75년, 모은 돈을 털어 자라를 만들고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무장한 자라의 인기는 스페인 전역을 휩쓸고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학력이라고는 중학교 졸업이 전부인 오르테가지만, 그의 통찰력은 유수의 명문대를 나온 여느 억만장자들 못잖게 뛰어나다. 이미 일흔두 살의 고령이던 2008년 방한해서는 “향후 한국에서 자라의 경쟁 상대는 백화점이 아닌 온라인 쇼핑몰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곧 현실이 됐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고학력 또는 부모로부터 막대한 부를 물려받은 ‘금수저’ 억만장자들을 제치고 게이츠의 아성마저 넘보고 있는 이유다.



게이츠의 자리를 위협하는 인물은 한 명 더 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재산이 많은 제프 베저스(52) 아마존 CEO다. 그는 고령자가 많은 톱10 억만장자 중에선 마크 저커버그(32) 페이스북 CEO 다음으로 젊다. 전문가들은 시대적 흐름을 미리 읽고 유통과 IT를 접목한 그의 전략적 기질에 주목한다. 95년 온라인 서점 ‘아마존닷컴’을 창업한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유저 인터페이스를 개선하고 취급 품목을 대대적으로 늘려 아마존을 종합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어 아마존웹서비스(AWS)로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을 개척, 선점하면서 AWS가 30%대 점유율로 세계 1위를 달리게 했다.



아마존은 최근 우주·드론 같은 차세대 산업에서도 두각을 보이면서 투자자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6년간 주가는 7배 넘게 뛰었고, 베저스는 이에 힘입어 같은 기간 재산을 가장 많이 불린 기업가가 됐다. 주가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그가 게이츠를 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 월가의 시각이다.



부동산 부자 왕젠린, 엔터테인먼트로 눈 돌려 세계 부자 지형도(地形圖)를 보면 오르테가와 베저스의 경우처럼 패션·유통 분야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전통의 중후장대 업종 사이에서 IT가 치고 올라와 대거 포진했듯, 내로라하는 IT 강자 사이로 패션·유통 강자들이 발톱을 세웠다. 프랑스 패션 시장을 이끄는 릴리안 베탕쿠르(93) 로레알 상속인과 베르나르 아르노 LVMH그룹(67) 회장이 각각 11위, 14위다. LVMH는 루이비통·불가리 등 명품 브랜드를 보유했다. 유통 공룡 월마트 가문의 세 후계자(15~17위), 독일의 마트 업체 알디 창업자들(24위), 패션 브랜드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28위)도 톱30에 들었다.



안승호 숭실대 교수(한국유통학회장)는 “온·오프라인에서 전에 없던 경험을 하길 원하는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유통업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세계 부자 순위표 상위권에 유통 분야 기업가들이 대거 포함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는 얘기다. 한 다른 교수는 “‘패션은 색(色)을 갖춘 반도체’라는 말이 있다”며 “과거 반도체처럼 근래엔 패션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해석하기도 한다. 반면 과거 순위표 상위권을 장식했던 자원개발 같은 전통 분야의 부자들은 예전만 못한 모양새다. 그만큼 시대가 바뀌었다.



중국 등 중화권의 기업가들이 꾸준히 강세인 점도 주목할 만하다. 80년대 말~90년대 초 일본의 부동산 기업가들이 ‘버블경제’를 등에 업고 세계 최상위권 부자 반열에 올랐던 것을 연상케 한다. 공통점은 아시아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차이점은 부동산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당시 일본보다 미래가 밝아 보인다는 것이다. 톱30에 오른 중국의 왕젠린(61) 완다그룹 회장(18위)과 홍콩의 리카싱(88) 청쿵그룹 회장(20위), 리자오지(88) 헨더슨랜드 창업자(30위)는 부동산 재벌이다. 마윈(잭 마, 52) 알리바바그룹 회장(22위)과 마화텅(44) 텐센트 회장(29위)은 전자상거래와 게임 등의 분야를 개척해 억만장자가 됐다.



왕젠린은 이력이 독특하다. 군인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16세 때(1970년) 군에 입대해 15년여를 군인으로 살았다. 군복을 벗은 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86년 중국 정부가 병력을 감축) 때문이었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던 그는 부동산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고, 88년 다롄에서 시강(西崗)주택개발공사를 창업하면서 승부수를 던졌다. 이 무렵 중국 정부는 대대적인 개방 정책에 몰두하고 있었고, 왕젠린은 ‘국민소득 증대→내수 활성화→고급 주택 수요의 급증’ 흐름을 예측했다.



예측이 맞아떨어지면서 자신감을 얻은 왕젠린은 사업 확장에 적극 나선 끝에 중국의 부동산 개발 역사를 바꿨다. 기존 업체들이 아파트 같은 주택 개발을 우선시할 때 그는 상업용 건물에 주목, 중국에 처음 복합 쇼핑몰 개념을 도입했다. 이어 부동산 외에 유통·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그 결과 2011년엔 중국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왕젠린의 자산은 50%나 증가했다. 그가 쟁쟁한 경쟁자들을 누르고 아시아 최고 부자 자리에 오른 비결이다.



마화텅은 중국 고위 공직자의 아들로 금수저였다. 내성적인 컴퓨터공학도였던 그는 27세 때(98년) 모친 돈을 빌려 텐센트를 덜컥 창업했다. 의외로 사업은 적성에 잘 맞았다. 마화텅은 저돌적이기보다는 매사 침착했고, 이는 갖가지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됐다. 텐센트는 세계 1위 온라인 게임 기업이자 ‘위챗’ 같은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갖춘 종합 IT 기업으로 성장했다. 영어강사 출신인 마윈은 162㎝ 키의 왜소한 체구에 매번 취업에 실패했다. 99년 알리바바 창업 전까지도 수차례 창업했다가 실패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그래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세계가 주목하는 억만장자가 됐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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