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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아이돌, 뛰어난 번안 작가가 뮤지컬 진화 이끌어

중앙선데이 2016.09.25 01:06 498호 15면 지면보기
중앙SUNDAY는 세계한류학회와 공동으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한류의 본질을 분야별로 집중 분석해보는 ‘한류 2.0 시대’를 게재합니다.



 

1 뮤지컬 ‘김종욱 찾기’. 2 K팝 아이돌 중 뮤지컬 배우로 가장 성공한 시아준수. 최근 그가 주연한 ‘드라큘라’가 막을 내렸다. 3 20년 이상 롱런하고 있는 유일한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 4 ‘김종욱 찾기’의 라이선스 일본판. [사진 중앙포토·오디뮤지컬컴퍼니·GS칼텍스 예울마루·스테이지 나탈리]


한류 2.0 시대 -9- K-뮤지컬

춤과 노래, 그리고 대사를 통한 스토리텔링은 인류의 보편적이고 가장 원초적인 공연예술 행위다. 3400년 전 수메르(현재의 시리아 지역)에서 제작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악보는 이러한 음악에 대한 인간의 문화적 집착과 열정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원시 공연예술은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이라는 무대 위에서 연기와 노래를 하는 광대들과 그 주위를 둘러싼 군중이 하나가 돼 민속예술(folk art)을 처음으로 창조했던 인간의 원초적 예술행위였다. 이 민속예술이 군중과 배우들 사이에 끈끈한 교감이 일어날 수 있도록 집단 춤과 노래, 그리고 연주를 필요로 했음은 당연지사다.



원초적 민속예술을 뮤지컬이라는 현대적 대중예술(mass art)로 재창조한 것은 미국의 할리우드였다. 1930년대부터 뉴욕의 소수 엘리트의 향유물이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 필름에 담아 전 세계에 대량으로 보급하는 새로운 뮤지컬 영화를 개발한 것은 할리우드의 기발한 영화제작자들이었다. 이로써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뮤지컬의 테스트 시장이 됐고, 여기서 성공하면 할리우드 뮤지컬로 제작돼 소위 변환매체화(intermedialization)를 통해 전 세계적인 영상 작품으로 보급됐다. 따라서 이 뮤지컬 영화 덕분에 다시 브로드웨이 원작이 20년 이상 롱런하는 미국형 뮤지컬 생태계가 형성됐던 것이다.



미국선 성공한 뮤지컬 영화로 재가공 할리우드의 뮤지컬 영화가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둔 이유는 이 변환매체화 과정에서 ‘삭제’라는 반복된 기술을 교묘히 첨가했기 때문이다. 미국 피츠버그대 영화학 교수인 제인 포이어(Jane Feuer)는 “인조적인 무대나 춤의 도구를 삭제하고 대신에 즉흥적인 도구나 자연, 심지어는 배우의 몸을 이용하는 안무를 구상해 원시성을 복원했던 것은 할리우드의 창의적 요소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공적인 안무를 철저히 삭제하는 것처럼 위장해 춤 자체가 원시적으로 보이도록 한 것이 두 번째 성공 요인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술 더 떠 리허설 자체를 그대로 영화로 내보내 더욱더 안무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위장했다. 마지막으로 원시 예술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소위 따라 부르기(singalong)라는 방법을 통해 서로 간의 결속을 다졌지만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서는 교묘하게 노래를 릴레이식으로 배우들이 이어 불러 따라 부르기와 비슷한 효과를 자아냈다. 특히 배우들이 원초적 민속예술에서처럼 그저 음악과 연기를 사랑하는 아마추어(‘사랑하는 자’라는 라틴어)로 보이도록 가면을 씌웠던 것이다.



이러한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가 없는 국내 뮤지컬 업계에서는 변환매체화를 통한 ‘대박’과 롱런이 불가하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가 영화화했지만 뮤지컬 영화가 아니었다는 것은 이러한 한국적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할리우드는 이제 애니메이션 뮤지컬이라는 장르까지 전 세계적으로 흥행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 뮤지컬을 해외 시장에서 흥행시킬 수 있을까. 특히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가 결합해 롱런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뮤지컬 시장의 높은 벽을 어떻게 뚫고 진입할 수 있을까.



외국 스토리를 창작 뮤지컬 소재로 삼아 한국의 뮤지컬 기획사나 제작사들이 외국의 이야기를 한국의 창작 뮤지컬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최근이다. 그 전에는 창작 뮤지컬이라고 하면 늘 우리 문화만 고집했다. 유일한 창작 뮤지컬로 롱런하고 있다는 ‘명성황후’나 최근 조금씩 유명해지고 있는 ‘아리랑’이 그렇다. 미국이 중국의 스토리를, 유럽의 스토리를, 그리고 심지어 한국이나 태국의 스토리를 가져가서 할리우드의 스토리로 재포장해 전 세계 시장에 되판다는 사실은 마치 먼 나라 이야기만 같았던 것이다.



다른 나라의 스토리를 가져와서 재창작한다는 것은 일단 뮤지컬 라이선싱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도이나 둘 다 제작상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무대에서 테스트된 성공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국적으로 새로 각색과 프로듀싱을 하기 때문이다.



외국 스토리의 한국적 번안은 뮤지컬 제작자나 작가의 창의와 창조를 요구하는 부분이다. 다른 나라의 콘텐트를 우리 것으로 재포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뮤지컬 제작 기술이 뛰어나야 한다. 둘째로, 가수들의 춤과 노래 솜씨가 유별나게 눈에 띌 정도로 확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스토리텔링 기법이 탁월해야 하며 서양의 원작보다 훨씬 더 뮤지컬적인 멋과 재미를 관객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뮤지컬 업계가 과감히 K팝의 아이돌들을 배우로 동원했다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춤과 노래의 실력을 전 세계적으로 쉽게 홍보할 수 있었다. 아이돌의 뮤지컬 동원은 뮤지컬 라이선싱이나 창작 뮤지컬 모두에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쉽게 가져다 줬다.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성공 요인은 서양 스토리를 번안한 창작 뮤지컬에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스토리 변환 기술이 특히 돋보였다는 점이다. 세계한류학회 대구지부장인 김중효 계명대 연극학과 교수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스토리 라인은 원작보다 훨씬 극적이며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는 무형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서양의 원작, 우리의 번안 작가들, 그리고 K팝 아이돌의 존재는 우리 뮤지컬 시장을 급속히 다양화시켰고 세분화시켰다고 김 교수는 언급한다. “다만 우리는 아직 롱런할 수 있는 작품이 없다”고 김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연극계의 풍부한 인적 자원이 우리나라의 영화계, 드라마계, 그리고 뮤지컬계를 모두 발전시키는 장점이지만 미국의 시카고처럼 뮤지컬 테스트 시장이 없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홍보 담당을 역임한 정혜민씨는 “2003년부터 ‘뮤지컬계의 욘사마’ 격인 조승우씨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에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전제하면서 “전 동방신기의 시아준수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관객들의 수요가 폭발했는데 음악과 춤을 즐기는 국민성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한다. 시아준수의 성공으로 일본과 중국에서 그의 뮤지컬을 보러 한국까지 오는 새로운 뮤지컬 한류관광이 선보였으며 일본어와 중국어 자막이 뮤지컬극장에 등장하게 됐다. 드라마계에서 아이돌의 등장이 기존의 드라마 배우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현상이었듯이, 뮤지컬 배우들도 아이돌의 시장 진입에 불쾌감을 고스란히 드러냈지만 “최근에는 서로 윈-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정씨는 귀띔해준다.



‘런 투 유’ 같은 중소형 작품 해외서 더 호응 “너무 한국적인 뮤지컬들은 실패했으나 ‘천사’ ‘김종욱 찾기’ ‘런 투 유’ ‘빨래’와 같은 중소형 창작 뮤지컬들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호응이 좋다”고 정씨는 주장한다. 그는 “시간 투자가 많고 연기하기가 힘들어 뮤지컬에 좋은 아이돌을 빼오기가 힘들다”고 장르적 단점을 지적한다. 정씨 또한 뮤지컬 테스트 시장이 우리나라에 없다는 점을 약점으로 꼽았다. “시장 테스팅 없이 창작된 국내 작품에 대한 위험성이 문제가 돼 결국 뮤지컬 라이선싱으로 제작자들이 선회하게 된다”고 설명하면서 “라이선싱과 창작극의 차이는 제작비가 아니라 극의 사업성에 대한 리스크”라고 분석했다.



원작 소설이 먼저 뮤지컬화하고 이어서 영화화한 뒤 뮤지컬이 다시 롱런하는 것이 할리우드 모델이다. 우리는 뮤지컬 테스트 시장이 없는 점을 오히려 역이용해 한국을 테스트 시장으로 하고, 중장기적으로 해외에 수출해 우리 작품을 현지화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공연기획사 파워포엠의 최원준 대표는 “원작 소설을 한류스타가 주연하는 뮤지컬로 만들고 다시 그것을 해외에 한류스타와 같이 수출한 뒤 최종적으로 현지의 배우들로 완전히 라이선싱 수출하는 우리만의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종욱 찾기’다. 한류배우 오만석을 필두로 한국시장에서 검증된 뒤 최근 일본에 수출돼 이제는 라이선싱 뮤지컬로서 완전히 현지화돼 일본 배우들이 동명의 뮤지컬을 열연하고 있다.



번안 작가층 드라마 업계처럼 두꺼워야 중소극장형 창작극을 해외에 라이선싱 수출하려면 위에서 말했듯이 외국 스토리를 한류 뮤지컬로 번안·재창작할 수 있는 작가 층이 드라마 업계처럼 두꺼워야 한다. 필자가 여기저기서 발표한 것과 같이 한류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각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여성 작가들이 젠더형 멜랑콜리아라는 보편적 주제를 가지고 한국적으로 각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뮤지컬 업계에는 이런 두꺼운 여성 작가층이 부재하다. 최원준 대표는 “1차 창작 단계에서 작가·작곡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꼬집으면서, 인재난을 해소하려면 적어도 10년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K팝 업계에서는 작곡가의 부족을 해소하려고 해외작곡가로부터 곡을 수입하는 과감한 투자가 있었듯이, 뮤지컬 업계에서도 작곡가를 해외 인재에 의지하는 변칙수도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 대표는 “예술고등학교에서 뮤지컬 1차 인력의 조기 교육이 필요하고 K팝의 조기 아이돌 교육 기관과 같은 기획사 차원의 뮤지컬 아카데미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뮤지컬 시나리오의 작가 교육, 외국어 교육, 작곡 교육, 인성 교육 등이 종합적으로 가미된 뮤지컬 전인교육 시스템을 빨리 도입해 볼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억~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전 세계 10위권의 창작 뮤지컬이 한국 무대에서 테스팅을 거쳐 전 세계의 주요 무대로 라이선싱 수출되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 한국 영화계도 이참에 뮤지컬 영화와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는 내공과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매진해 줬으면 한다.



 



최종회에는 한류를 연구하는 ‘한류학’을?소개합니다.



 



 



오인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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