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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공기 머금은 왕릉의 고즈넉함

중앙선데이 2016.09.25 00:33 498호 22면 지면보기

이곳 파주의 장릉(長陵)처럼 한자의 음이 같은 왕릉은 모두 3기이니 혼동하지 말자. 다른 2기는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과 원종비가 묻힌 김포의 장릉(章陵)과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강원도 영월의 장릉(莊陵)이다. 기본적인 상설물의 배치는 모든 왕릉이 비슷하다. 따라서 답사 전에 묻힌 주인의 이야기를 미리 공부하고 가는 것이 즐거운 왕릉 답사길의 필수요소다.



드디어 여름이 갔다! 어느새 습기가 사라진 가을의 청명함이 공기 중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얼마나 기다려 온 계절이던가. 아직은 한낮 햇살이 따갑지만, 그늘 아래 웅크린 초가을 기운이 반갑기만 하다.


도시남자 이장희, 전원 살다 -13-

이런 사랑스런 순간들을 놓칠 새라 가족 모두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바로 집 근처에 있는 조선 왕릉. 조선의 열여섯 번째 왕, 인조와 원비 인열왕후 한 씨가 묻혀 있는 장릉이다.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다가 최근 시범 개방으로 출입이 가능해졌다. 원래 인조의 능은 살아생전 지목해 놓은 파주 운천리라는 곳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능이 조성된 이후 화재를 비롯해 능 근처에 뱀과 전갈이 무리를 이루고 석물 틈에도 집을 짓는 등 좋지 않은 일들이 이어져 지금의 탄현리로 옮겨 온 것이다. 이곳의 석물들이 17세기와 18세기의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까닭도 처음 조성될 때 있었던 석물들과 이장하며 새로 만든 석물들이 혼재된 이유라고 하니 흥미롭다.



그늘에 앉아 스케치북을 편다. 예의 왕릉만의 호젓함이 우리를 감싼다. 인조는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좌에 올랐던 임금이다. 하지만 친명 정책을 쓰면서 청과 외교 관계가 악화되었고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쓰라린 변란들을 겪어야만 했다. 인조가 서울 송파의 삼전도라는 곳에서 청나라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군신의 예를 취한 사건은 조선 역사에 있어 가장 치욕적인 날 가운데 하루가 아닐까.



하지만 그 반정군의 숨 막혔을 정변의 시간도, 삼전도 굴욕의 날들도 가을 하늘 아래 왕릉 안에서는 모두 덧없어 보인다. 그저 지금 이 순간 길고 길었던 여름의 끝에 찾아온 가을 바람의 달콤함이 눈물나도록 고마울 따름이다.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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