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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극복의 드라마 ‘펑펑’ … 세부종목 줄여 경쟁력 ‘활활’

중앙선데이 2016.09.25 00:33 498호 25면 지면보기

지난 11일 리우 패럴림픽 남자 유도 -100kg급 결승전에서 최광근이 브라질의 테노리오를 한판승으로 꺾은 뒤 포효하고 있다. [중앙포토]



시각장애인 최광근(29·수원시청)은 2016 리우 패럴림픽 남자 유도 -100kg급에 출전했다. 2012 런던 패럴림픽 우승자인 최광근은 결승에서 번개 같은 발뒤축후리기로 브라질 선수에 한판승을 거뒀다. 관중석으로 달려간 그는 부인 권혜진(37)씨에게 뜨겁게 입맞춤했다. 두 사람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2016 스포츠 오디세이 -17-] 올림픽은 스토리, 패럴림픽은 콘텐트

장애와 비장애, 8살 나이 차까지 뛰어넘은 사랑이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직원인 권씨는 최광근을 런던 패럴림픽에서 처음 만났다. 2014년 이들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혼여행도, 결혼 반지도 없는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최광근은 리우 대회 전 “결혼반지 대신 금메달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최광근은 “부족한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맙다”고 했고, 권씨는 “남편은 최고의 남자다. 예의가 바르고 꿈이 있는 사람”이라고 화답했다.



고교 2학년 때 훈련 도중 사고로 눈을 다친 최광근은 패럴림픽 유도 장애등급(B1, B2, B3) 중 시력 상태가 가장 나쁜 B1 등급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장애인 대회와 비장애인 대회에 다 출전한다. 남자 -81kg급 이정민도 같은 경우다. 이정민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왕기춘을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 금메달 7, 은 11, 동 17개로 종합순위 20위에 올랐다. 메달 갯수로 따지면 전체 11위다. 수영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조기성(21)이 S4(지체장애) 자유형 50m·100m·200m를 휩쓸었고, 이인국(21)도 S14(지적장애) 배영 100m에서 금메달을 보탰다.



 

수영 배영 100m에서 금메달을 딴 이인국이 어머니와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이인국의 금메달은 4년 전 스토리와 연결돼 감동을 더했다. 이인국은 런던 패럴림픽에서 예선 1위로 결승에 올랐지만 실격을 당했다. 경기 20분 전에는 경기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인국이 한눈을 판 사이 코칭스태프가 그를 찾지 못했고 규정보다 3분 늦게 경기장에 도착했다.



‘이인국 참사’는 한국 패럴림픽 대표팀 운영에 숙제를 던졌다. 장애 유형에 따라 체력·심리·분석 시스템이 정교하게 역할을 해 줘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지적장애인이 출전하는 수영·육상·탁구 종목에는 스포츠심리학을 전공한 트레이너가 붙어 세심하게 멘탈을 관리했다. 이인국은 리우에서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4년 전 아픔을 깨끗이 씻어냈다.



 



IOC “세부종목 줄여야 함께 간다”런던 올림픽 당시 중앙일보는 ‘올림픽은 스토리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경기의 승패를 초월한 사람 이야기를 지면에 담아냈다. 리우 패럴림픽을 보면서 ‘패럴림픽은 콘텐트다’는 명제가 떠올랐다.



이제 패럴림픽은 올림픽이 끝난 뒤에 따라붙는 ‘부록’같은 존재가 아니다. 장애를 벗어나려는 인간의 원초적인 열망이 뿜어져 나오는 용광로다. “저 몸에서 어떻게 저런 동작이 나올 수 있지”라는 찬탄이 흘러나온다. ‘극복의 안간힘’은 한 장의 스틸 사진에서, ‘인간의 위대함’은 중계 영상을 통해 독자와 시청자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장애인들의 국제 스포츠 경기는 1948년 영국에서 열린 스토크 맨드빌 경기대회(Stoke Mandeville Games)가 시초다. 스토크 맨드빌 병원에서 상이군인들의 재활을 위해 스포츠 활동을 도입했고, 이를 바탕으로 대회를 열었다. 제1회 장애인 올림픽이 열린 건 1960년 로마였다. 올림픽 개최도시에서 장애인 올림픽이 열리게 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였다.



패럴림픽(Paralympic)은 원래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패러플리지아(paraplegia)’와 ‘올림픽(Olympic)’의 합성어였다. 지금은 ‘나란히’를 뜻하는 그리스어 전치사에서 유래된 ‘패러(para-)’와 올림픽이 결합해 ‘올림픽과 나란히 열린다’‘올림픽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민규 한국체대 교수는 국내 장애인 스포츠의 권위자다. 88 서울 패럴림픽 당시 본부임원으로 일했던 한 교수의 증언은 패럴림픽의 변화상을 알려준다. “서울 올림픽 때 세부종목은 무려 1281개였고, 실제 치러진 종목은 729개였다. 나머지는 종목당 참가 선수가 3명이 안 돼 못 치른 것이다. 장애 유형이나 등급별로 너무 잘게 나누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 당연히 관심이 떨어지고, 중계나 스폰서가 붙지 않는 ‘그들만의 잔치’가 돼 버렸다.”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비슷한 운동 능력을 가졌다면 휠체어든 뇌성마비든 묶을 수 있는 데까지 묶어 보자는 것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IPC에 지속적인 압력을 넣었다. “세부 종목 수를 하계 550개, 동계 85개 이내로 줄여라. 그래야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함께 갈 수 있다.”



리우 패럴림픽 종목은 22개, 세부종목 수는 528개였다. 금메달 수가 줄어드니 경쟁력이 높아지고, 경기의 질이 현저하게 좋아졌다. 미디어의 관심도 커졌다.



 

패럴림픽 여자 육상의 간판 전민재(오른쪽)가 200m 결승에서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전민재는 남다른 근성으로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중앙포토]



선수들 "재활·복지란 말 제일 듣기 싫어"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에 비례해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올림픽 출전 선수들처럼 패럴림픽 선수들도 과학적인 훈련과 심리상담, 영상분석 등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린다.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에는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이 있다. 2009년 개원한 장애인 국가대표 전용 합숙 훈련장이다. 장애인 엘리트 스포츠 시설로서는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리우 패럴림픽 선수단이 해단식을 한 다음날인 지난 23일 이천훈련원을 찾았다. “태릉선수촌보다 훨씬 좋다”는 평가가 빈말이 아니었다.



농구 코트 3개가있는 종합체육관을 필두로 실내·외 테니스장, 유도장, 휠체어 펜싱장, 골볼(시각장애인 구기종목) 전용경기장, 탁구장, 양궁장, 사격장 등 종목별로 독립된 훈련장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국제 규격 수영장에는 수중에서 휠체어를 타고 출발선까지 갈 수 있는 시설도 마련돼 있다. 동계 종목인 컬링 전용경기장도 건설 중이다.



이곳에 있는 스포츠의과학팀은 대표팀의 메달 산실 역할을 했다. 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트레이너 등이 힘을 합쳤다. ‘고프로’라는 카메라 3대를 수중과 물 밖에 설치해 선수들의 움직임을 촬영했다. 수영 3관왕에 오른 조기성은 “선수생활 하면서 내 경기 장면을 내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리우 직전까지 스포츠의과학팀장을 맡았던 김상훈 박사는 “조기성은 왼팔과 오른팔의 스트로크가 짝짝이라는 사실을 발견해 교정했다. 사이클팀은 영양 자문, 심리치료, 저압저산소 훈련실 활용 등을 통해 첫 출전에서 은메달(이도연)을 따냈다”고 전했다.



패럴림픽 선수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게 ‘재활’‘복지’같은 말이다. 자신들을 전문 운동선수로 보지 않는 세상을 향해 성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 출국장에서 대표선수들이 “우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엘리트 선수들이다. 복지나 시혜 차원이라면 패럴림픽에 출전하지 않겠다”며 시위를 했다. 그해 연말에 장애인 스포츠 주관이 보건복지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 바뀌었다. 패럴림픽 입상자의 연금(금메달 월 100만원 등)도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똑같다.



패럴림픽이 매력 있는 콘텐트가 된 점은 고무적이지만, 밝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경쟁력과 흥미를 높이기 위해 종목을 통폐합하면서 ‘도전과 극복’이라는 패럴림픽 본연의 가치가 흐려질 수 있다. 박승재 이천훈련원 훈련지원부장의 말이다. “수영은 지체장애만 해도 S1부터 S10까지 분류가 있다. 1~4는 하체를 쓸 수 없고 상체로만 물살을 가른다. 이런 선수들을 한데 묶어버리면 장애 정도가 심한 사람은 나오지 말라는 것과 같다. 엘리트 선수의 수준 높은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전민재(육상·뇌병변)를 보면서 장애 극복 의지와 몸짓 자체에 감동 받는 경우도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약물복용·기술도핑 등 부작용 드러나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비장애인 스포츠의 부패 바이러스가 장애인 쪽으로 옮아가는 점도 염려스럽다. ‘도핑 왕국’ 러시아는 선수단 전체가 리우 패럴림픽 출전이 금지됐다. 육상에서 원활한 코너링을 위해 양쪽 의족의 탄성을 달리 하는 등 ‘기술 도핑’도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가족·친구인 보통 장애인들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종목의 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민규 교수는 “장애인 생활 스포츠의 문턱이 아직 높다. 장애인의 체력측정-상담-운동처방을 원스톱으로 할 수 있는 거점센터가 활성화돼야 한다. 또 공공체육시설을 장애인과 공유하는 게 권장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분투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패럴림픽은 도전과 극복의 드라마를 쉼 없이 생산하는 ‘스포츠 콘텐트의 보고(寶庫)’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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