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커푸 “삼촌은 방향만 제시해라, 장애물은 내가 제거할 것”

중앙선데이 2016.09.25 00:30 498호 28면 지면보기

1 천커푸(가운데)와 천리푸(오른쪽)형제. 흔히들 왼쪽 인물을 쉬언쩡이라 말하지만 확실치 않다.



1924년 국·공합작이 성사되면서 국민당은 공산당의 놀이터로 변했다. 천커푸(陳果夫·진과부)의 회고를 소개한다. “공산당원을 받아들이면서 국민당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내 의견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나는 중성(中性)이 되기로 작정했다. 당 안에 또 다른 당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국민당 집회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공산당 모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공 조직에도 등을 돌렸다. 초연한 입장을 견지하다 보니 이간질 당할 일은 없었지만 밤마다 머리가 쑤셨다. 피를 바꾸지 않으면 국민당의 앞날은 기약하기 힘들었다. 칼을 이용한, 아름다운 살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사진과 함께 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496-

1927년 4월 장제스(蔣介石·장개석)가 상하이(上海)에서 정변을 일으키자 우한(武漢)의 국민정부와 공산당원들의 항의는 상상 이상이었다. 장제스를 도살(屠殺)자로 규정하고 반혁명 분자로 몰아붙였다. 국민당 중앙과 국민정부도 성명을 발표했다. “장제스는 민중을 도살하고 당 업무를 마비시켰다. 당원 명부에서 이름을 삭제하고 총사령관직을 박탈한다.” 후임 사령관에 임명된 펑위샹(馮玉祥·풍옥상)은 장제스의 직계인 제1집단군을 군사위원회 직할로 편입시켰다. 천커푸의 제명도 당 중앙에 요청했다. 거절당할 리가 없었다.



군을 장악하지 못한 당이나 정부의 성명서는 휴지 조각과 다를 게 없었다. 제1집단군의 장제스에 대한 충성은 변함이 없었다. 민심도 난징에 딴살림을 차린 장제스의 국민정부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장제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직접 성명서를 발표했다. “중국 국민당 중앙위원회는 공산당이 국민당에 입당한 공산당원들과 연합해 모반을 획책한 증거를 포착했다. 본 사령관은 이들을 토벌하고 질서를 바로잡고자 한다. 이 시간 이후 소동을 부리거나 치안을 저해하는 행위는 엄히 다스리겠다.”



살기등등한 선언을 마친 장제스가 천커푸를 불렀다. 만면에 수심이 가득했다. “너와 나는 우한정부에서 제명당했다. 하다 보니 한 새끼줄에 묶인 개미 신세가 됐다.” 천커푸는 대담했다. “삼촌은 방향만 제시해라. 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길을 뚫겠다.”



국민당 2차 대회 네 번째 회의는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에 복직한 장제스의 독무대였다. 천커푸와 다이지타오(戴季陶·대계도) 등이 머리를 맞대고 작성한 국민정부 조직조례(國民政府 組織條例)와 군사위원회 조직대강(軍事委員會 組織大綱), 총사령부 조직대강을 통과시켰다. 핵심만 소개한다. “국민정부는 중국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의 지도와 감독을 받으며 전국의 정부기구를 관장한다. 국민당 군사위원회는 국민정부의 최고 군정기관이다. 육해공군의 정치교육과 인사·경리·위생을 전담하며 국방의 책임을 다한다. 각 성의 행정기관과 군사기관은 군사위원회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다. 국민정부는 군령의 통일을 위해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을 임명할 수 있다.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은 전군을 통솔하고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와 정부의 군사 문제를 책임진다. 군사위원회 주석도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이 겸한다.” 이 정도면 대권을 한 사람에게 안겨줄 길을 합법적으로 터놓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회의는 정리당무안(整理黨務案)도 순조롭게 통과시켰다. “전국의 국민당 지부는 중앙에서 파견한 사람이 올 때까지 활동을 중지한다. 전 당원은 등기를 새로 하기 바란다. 등기가 진행되는 동안 당원들은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 천커푸는 당원 정리기간을 이용해 반대세력들을 당에서 축출했다.

2 천리푸(왼쪽 셋째)는 산에 오르기를 좋아했다. 1930년 12월 9일, 뤼산(廬山). [사진 김명호 제공]



1929년 3월에 열린 국민당 3차 전국대표대회는 당 정리를 주도했던 천커푸와 천리푸(陳立夫·진립부) 형제의 뜻대로 진행됐다. 조직부장 연임에 성공한 장제스는 2년간 당원 정리를 도맡아 했던 형제의 공로를 저버리지 않았다. 천커푸와 천리푸에게 당 운영을 일임했다. 당의 인사와 조직을 장악한 형제는 중앙 조직부 내에 당무조사과(黨務調査科)를 신설했다. 당의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기구였다. 천커푸는 이 평범한 기관을 특무조직으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장제스에게 건의했다. “중공 지하조직과 국민당 내의 반대 파벌들을 파괴할 기구가 필요합니다.” 장제스는 동의했다. “조사과를 확대시켜라. 돈이 필요하면 돈을 지원하고,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지원하마.” 장제스와 천커푸는 책임자를 물색했다. 천리푸 외에는 맡길 사람이 없었다.



조사과 주임에 취임한 28세의 천리푸는 국민당 최초의 특무조직 창설에 매진했다. 천커푸가 주관하던 중앙당무학교 졸업생 10명과 중앙군관학교 출신 20명을 기반으로 “특무공작총부(약칭 특공총부)”를 출범시켰다. 외사촌이며 미국유학 동기인 쉬언쩡(徐恩曾·서은증)을 주임으로 초빙했다.



특공총부는 완전한 비밀조직이었다. 국민당의 어떤 기구에도 예속되지 않고, 당 조직표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천씨 형제는 요원들에게 생살대권(生殺大權)을 부여할 수 있는 특무 중의 특무로 변신했다.<계속>



 



김명호



 



 



-----------------



중앙SUNDAY가 지령 500호를 맞아 ‘우리에게 지금 중국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사진과 함께하는 중국 근현대’의 필자 김명호 교수 초청강연을 개최합니다. 강연은 무료이며, 참석자에게는 다과와 소정의 기념품을 드립니다. 반드시 사전에 참가신청을 하신 분들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일시 2016년 10월 6일(목) 오전 7:30~9:00



▶?장소 호암아트홀(서울 중구 순화동)



▶?참가신청 080-023-5005



▶?참가신청 링크 https://goo.gl/forms/W7T3lsPnozBKlsIi2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