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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셰프 유씨의 ‘적정인문학’

중앙선데이 2016.09.25 00:24 498호 29면 지면보기
다섯 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아버지와 살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와 다시 합쳤지만 1년 만에 또 이혼. 집안이 흔들릴 때마다 이리저리 전학을 다녀야 했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이던 해 아버지가 간경화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고교 입학 후 고모님댁 신세를 지다 자취를 시작했다. 고교 2학년 어느 날 밤거리에서 친구들과 술마시고 놀다 다른 청년들과 패싸움이 벌어졌다. 육상·권투로 다져진 몸.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상처만 받아온 청소년이기에 물불을 가릴 줄 몰랐다. 상대 한 명이 전치 12주 중상을 입었다. 학교는 당연히 퇴학. 법원은 장기 보호관찰·사회봉사와 함께 청소년자립생활관 6개월 입소를 명령했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짬을 내서 만난 유정환(21)씨는 지금 동원대학교(경기도 광주시) 호텔조리전공 2학년이다. 1학년 평균학점 4.3으로 장학금도 받았다. 2학년에 올라와선 학생회장이 됐다. 그는 올해 5월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6 대한민국 국제요리경연대회’에 같은 조리전공생들과 팀을 짜 출전, 대상과 금상을 거머쥐었다. 180개 팀 800여 명이 참가한 큰 대회였다. 깻잎을 곁들인 광어살 애피타이저, 연어 스테이크, 청포도 무스 디저트로 구성한 퓨전한식이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애피타이저가 해산물이면 메인은 육류나 가금류라는 고리타분한 공식을 깨고 싶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공감 共感

고교시절 패싸움은 2012년 9월 벌어졌으니 꼭 4년 전이다. 그 4년 동안 유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는 법원의 조치에 따라 2013년 6월 13일 춘천청소년자립생활관에 들어갔다. 청소년자립생활관은 마땅한 보호자 없이 소년원을 나왔거나 보호관찰 중인 청소년, 가출 등으로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돌보는 공공시설이다. “처음엔 짜증만 나서 아이들과 말도 안하고 방구석에 박혀 있었죠”라고 했다. 두어 달 뒤 생활관이 ‘인문학 수업’이라는 것을 도입했다. 강원대에서 인문치료를 연구하는 김익진 교수(불문과·인문상담센터장)가 수업을 진행했다. 사과를 앞에 놓고 생긴 모양·색깔이나 사과에 대한 추억을 간단히 글로 쓰게 했다. 잘 쓰라는 부담도 주지 않았다. 점차 주제가 달라지다가 어느 날 ‘10년 후 나의 모습’에 대해 가상 자서전을 쓰는 시간이 됐다. “어릴 때부터 혼자인 때가 많았고, 혼자 밥 해먹으면서 ‘크면 요리를 해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래서 썼지요. 내가 대학에 가서 요리를 배워 나중에 신라호텔 총주방장이 되고, 더 나이 들어서 내 가게를 차리는 과정을.”



김익진 교수는 ‘보호관찰 청소년’과 ‘신라호텔 총주방장’ 사이의 큰 틈을 메우는 아주 쉬운 방법을 알려줬다. 우선 검정고시를 준비해 대학 요리학과에 가라 했다. 검정고시를 두 번 치른 끝에 지난해 동원대에 합격했다. 이제 신라호텔은 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참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너는 인문학이 무어라고 생각하니?” “계단이고 발판이라고 생각해요.”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전에는 왜 사는지 별 생각 없었지요. 인문학 수업을 들으며 꿈이 생겼어요. 그래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라는 말이 있다. 첨단·고비용·대규모가 아닌, 낙후된 지역이나 소외계층도 쉽고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을 말한다. 전기 없는 지역에서 자전거 페달로 가동하는 세탁기, 냉장고 대용의 이중 항아리 등 사례가 무수히 많다. 나는 4년 전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출장 갔다가 한국인 최홍규 박사의 ‘태양광 적정기술’ 봉사활동을 보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그가 만든 태양광 장치는 나무상자와 폐품 패널, 배터리로 이루어진 아주 싸고 간단한 구조여서 전기가 없는 시골에 제격이었다.



적정기술이 있다면 ‘적정인문학’도 가능하지 않을까. 서평가로 유명한 이현우씨도 몇년 전 강신주 철학자를 논하면서 적정인문학이라는 말을 언급한 적이 있다. 유정환씨를 가르친 김익진 교수는 요즘 적정인문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에 빠져 있다. 위기 청소년, 대학생, 일반 회사원, 군인, 노숙인에게는 각자의 상황에 맞는 인문학이 있다는 전제에서다. 그렇다고 인간 인식의 최전선에 도전하는 ‘첨단 인문학’의 가치가 바래는 건 아니다. 적정기술을 구사하려면 첨단기술에도 능해야 한다. 탄자니아의 최홍규 박사도 미국에서 에너지공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적정인문학도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대학의 첨단인문학이 샘이라면 대학 밖의 적정인문학은 강이다. 샘이 마르면 강의 물도 마른다”고 비유했다. 인문학은 생각의 힘을 키우는 학문이다. 마음의 피로를 달래주는 오솔길일 수도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각자 돌아보자. 지금 나에게는 어떤 인문학이 ‘적정’한지.



 



노재현중앙일보플러스?단행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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