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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설명하는, 여자를 완성하는

중앙선데이 2016.09.25 00:18 498호 32면 지면보기
요근래의 ‘먹방’ 인기, 맛집 탐방 열풍을 설명하는 말이 있다면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 아닐까. 한 인간을 그가 먹는 것으로 규정하는 이 명제는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 담론과 연결되며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어디 인간뿐이랴. 인간을 이루는 두 종류, 즉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남자란 무엇이며 또 여자란 무엇인가-. 최근 극히 심해진 이른바 ‘남혐’ ‘여혐’ 논란의 기저에는 ‘인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통찰이 너무나도 부족한 우리 사회의 정신적 빈곤함과 피폐함이 있다. 도대체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욕하고 비방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세상의 절반을 적으로 삼으려는 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그남자가 읽어주는 여자의 물건』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남자의 시각에서 ‘여자’라는 세계를 새롭게 이해해 보려는 일종의 여행 가이드 북이기 때문이다. 부제로 붙어있는 ‘그남자가 읽어주는’이라는 말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남자’는 저자의 별명인데, 풀어보자면 ‘그림 읽어주는 남자’라는 뜻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독립영화도 제작했으며 미술 전문지 편집장을 역임한 저자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에 동시대 예술을 올려놓고 비교미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므로 ‘그남자’는 ‘여자’라는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그림과 조각과 사진을 자유자재로 연결시킨다.



이 책은 여성의 일상과 관련된 사물 혹은 현상을 저자가 보기에 가장 적합한 그림을 매개로 설명하고 있다. “네가 쓰는 것이 곧 너다” 라는 얘기다. 저자는 말한다. “여성의 사물은 여성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며 여성의 사물 하나하나는 여성의 본질과 닿아있고 그것들은 여러 장르의 예술작품에서 각기 다른 색채와 감성으로 표현되어 왔다. 나는 그들 작가의 고유한 해석에 나의 주관적인 시선을 덧붙임으로써 또 하나의 ‘사물에 관한 팡세’를 내놓게 되었다.”



저자는 여자의 물건을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느끼는’ 다섯 가지 감각으로 나눠 52가지의 아이템을 구분했다. ‘귀고리’ 항목에서는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1665년경)을 보여주면서 장식적이지 않은 진주 귀고리의 단순한 우아함이 보여주는 미덕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소녀의 귓불에는 구멍 뚫은 흉터가 없기를 기원한다. 그 작은 구멍이 돌이킬 수 없는, 지울 수 없는, 그 자리를 떠나가버린 것에 대한 슬픈 증거이기에.



‘비키니’에 대해서는 “몸과 옷, 노출과 은폐의 절묘한 줄타기를 통해 우리의 육체가 지킬 수 있는 자유로움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 ‘닥터 노’(1962)에 등장하는 본드걸 우르줄라 안드레스의 흰색 비키니는 궁극의 완벽함과 여백의 충만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브래지어’를 여성의 ‘가장 부드러운 갑옷’이라고 설명하면서 16세기 카를 5세의 초상화에서 ‘남성성’을 돌출시킨 ‘코드피스’를 연관짓는 방식은 흥미롭다.



‘그남자’가 설명하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프렌치 시크’에 대해서는 ‘지적인 위트의 멋스러움’이라고 요약한다. “일부러 꾸미지 않은 듯 멋이 배어나오는 세련된 분위기로 획일화된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색채와 느낌을 패션을 통해 담담히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면서 “옷에 사람이 가려져서는 안 되고 사람이 옷을 눌러야 한다”고 덧붙인다.



“여자의 물건에 대한 인문학적 해독을 통해 무던했던 세상이 낯설고 새롭게 다가오게 되는 ‘행복한 예술향유’를 독자들이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말대로, 진정한 이해와 소통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작은 관심이다. 그런 소소한 관심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좀 더 유연해질 수 있는 첫 번째 단추를 꿰는 일일터다.



 



 



글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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