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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시간 아는 게 슬퍼지는 까닭

중앙선데이 2016.09.25 00:12 498호 34면 지면보기
손목시계



백과 사전 기원전 4000년경 해시계의 기원인 그노몬에서 시계의 역사가 시작됐다. 물시계·모래시계처럼 자연의 힘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를 거쳐 1364년 프랑스에서 기계식 시계가 처음 등장했다. 이후 시계를 점점 소형화하고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각국에서 벌어졌다. 16세기 이후 대서양 해양무역시대가 열리면서 경도법을 이용한 항해용 정밀 시계가 등장한다. 손목시계는 까르띠에 산토스 뒤몽이 1904년에 처음 제작한 뒤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했고 1950년대 이후부터는 널리 대중화됐다.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그 여자의 사전 그 여자의 쇼핑목록 가장 뒤에 있는 최후의 사치품. 그 여자가 꼭 알고 싶지는 않은, 정확하게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은 정보, 예를 들어 ‘시간’ 같은 것을 알려주는 물건.



 



나는 평생 시계와 불화했다. 많은 사람이 손목 시계에 대한 몇몇 아름다운 기억들을 가지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멋지고 비싼 시계를 여러 개 사는 취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시계와 친해지지 않았다. 물론 몇 번 선물을 받은 적은 있었다. 외국에 갔을 때 기념품으로 사기도 하고 결혼할 때 예물로 시계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체질은 자성(磁性)이라도 품었는지 내 손목에만 올라갔다 하면 시계가 금세 고장 났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멈춰있는 시계를 볼 때면 나는 시계바늘이 쉬지 않고 그렇게 열심히 달렸으니 언젠가는 지쳐 쓰러지고 말 운명이었음을 알았다는 듯 덤덤한 마음이었다. 멈춘 시계는 보이지 않는 서랍 속으로 들어가서 잊혀졌다. 시계를 열어 배터리를 교체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머릿속에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몇 번 그러다 보니 돈을 들여 시계를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시계가 없는 손목이 훨씬 가볍게 느껴졌고 그제야 제대로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시계를 꺼려 했던 건 아마 시계가 싫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두려워서였던 것 같다. 지금처럼 눈만 돌리면 어디서든 현재 시각을 확인할 수 있던 때가 아니라 정말 시계를 보지 않으면 시각을 확인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다. 나는 9시 뉴스를 몇 초 남겨놓고 째깍째깍 돌아가는 TV속의 시계를 볼 때마다 ‘이렇게 일 초 일 초 정확한 시간을 알아도 되는 걸까’ 싶은 마음에 불안했다. 길 가다가 벽시계 속에서 정확한 시간을 볼 때마다 무슨 세상에 꼭꼭 숨겨진 엄청난 비밀이라도 알게 된 것 마냥 화들짝 놀랐다.



그러니 그런 은밀한 정보를 내 손목에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확인하는 일은 뭐랄까, 불경스럽기도 하고 지나치게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자의 두려움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걸 들여다 보기만 하면 정확한 숫자로 들이미는 전자 시계는 더 불편했다. 그나마 바늘이 달린 시계를 조금 늦게 가거나 조금 빨리 가게 해놓고 정확한 시간은 미루어 짐작해보는 정도로만 시계와 혹은 시간과 타협했다. 시계 가게에 늘어선 시계가 전부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을 때 ‘어떤 시간이 맞는 걸까’ 짐작 해보는 일이 딱 맞는 시계를 보는 일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다.



수 천 년 전부터 정확한 시계와 달력을 만들기 위해 인류의 온갖 지혜와 과학과 예술이 동원됐던 걸 떠올린다면 나의 이런 시계 거부증세는 아마도 심각한 문화적 혹은 정신적 지체현상임에 틀림없다. 세상에, 너무나 당연한 세계이며 자연의 질서 정연함을 대표하는 시간이라는 것이 내 이성으로 인지되는 것을 거부하고 ‘미루어 짐작하는’ 상상력의 영역에 시간을 두고자 했다니.



요컨대 나는 시간과 평생 불화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내가 왜 평생 시간을 맞추는 일에 서툴렀는지 짐작이 된다. 객관적이고 엄연한 시간이 옆에서 정확히 흘러갈 때도 나는 내 머릿속 나만의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나만의 시계는 종종 시간을 멈추기도 하고 현실의 10분을 상상 속의 30분으로 늘려놓기도 한다. 그러니 매사 때를 놓치거나 너무 늦어버리거나 하는 서투른 인생일 수밖에 없다.



여전히 시계와는 친하지 않다. 그러나 요즘은 스마트폰 때문에 자다가 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시간을 보는 일이다. 여전히 ‘세상에 대해 쓸데없이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아는 일’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올해도 벌써 9월이 다 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정확한 시간을 아는 건 슬퍼지기까지 하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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