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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의 재주

중앙선데이 2016.09.25 00:09 498호 31면 지면보기
손아래 처남 이구재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고원영은 애써 무관심한 척했다. 이구재는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에서 주로 총무·인사 같은 관리직으로 15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왔고 다른 무엇보다 성실함으로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온 터였다. 그런 그가 ‘더 이상 회사에서는 가슴이 뛰지 않고 비전을 발견할 수 없다. 새로운 일을 찾겠다’고 했다는 말을 아내에게 전해 듣고는 고원영은 혀를 찼다.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 잔뜩 쌓아놓고도 직원들에게는 나눠주지를 않아서 동생이 이의를 제기했대요. 경영진이 대주주들 눈치만 보고 고생한 직원들은 무시하니까 곰처럼 순한 동생이 화가 난 거예요.”


성석제 소설

“회사는 회사대로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힘든 시기, 어려울 때를 대비할 필요도 있고.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저런 측면을 고려해서 고도의 경영적인 판단을...”



“당신은 그 회사 덕본 것도 없이 왜 회사 편을 들어요? 그리고, 처남은 당신 동생 아녜요? 남들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데 당신은 밖으로 굽나봐. 곰배팔인가...”



마침내 고원영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이 말이면 다 하는 줄 알아?”



아내는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래 난 말이 아니고 닭띠예요, 왜?”



결국 고원영이 먼저 입을 꽉 다물었다. 어쨌든 골방 샌님처럼 얌전한 줄 알았던 처남이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난바다 같은 건설업에 직접 뛰어들었다는 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것만은 사실이었다. 명절 때 처갓집에 갈 때에 따로 마주 앉아 에둘러서 구체적인 전망이 어떤지 물어보기도 했다.



“형님, 역시 남자는 자기 사업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가 모험의 연속인 것 같아서 짜릿짜릿 합니다. 젊은 친구들하고 일하니까 펄펄 뛰는 싱싱한 아이디어도 나오고요. 큰 회사들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틈새시장이 많아요.”



이구재는 말뿐만 아니라 표정까지 희망에 설레는 삼십대, 아니 십대처럼 변해 있었다.“젊은 애들하고 어울리면 젊어지는 부수입은 있겠구만. 부작용일 수도 있겠지만.”



고원영은 실상 아직 꿈을 꾸고 사는 이구재가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불만이 가시가 되어 다른 사람을 찌르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이구재는 오래된 시가지의 낡은 빌딩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해서 전문성을 가진 업종이 한 곳에 입주하게 해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변화를 싫어하는 부동산 소유주를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고원영은 비슷한 입장인 자신이 스파링 상대가 되어줄 수 있다는 말을 하려다 참았다.



그렇게 시간이 이년 정도 흘렀다. 이구재의 사업은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오른 것 같았다. 때때로 이구재를 볼 때마다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래처 사람을 만날 때 외제 차를 타고 나간다고 했고 최고급 맞춤양복과 비싼 시계를 여러 벌 사들였다고 했는데 외양도 은근히 멋졌다. 그러던 어느날 이구재가 아파트 분양 같은 대규모 공사를 벌이는 기획사를 차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거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걔가 어떤 앤데, 다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하는 거래요. 잘하면 우리 집안에 꼬마 재벌 하나 나오게 생겼네.”



이구재가 처음으로 분양하는 아파트의 모델 하우스 개관식에 고원영도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갔다. 깃발과 현수막이 펄럭이고 시끄러운 음악이 귀를 찢는 듯했다. 늘씬한 모델과 정장 입은 안내요원 삼십여 명이 도우미로 동원된 개관식은 흡사 선거 유세장처럼 북적거렸다. 고원영은 겨우 이구재와 악수나 할 수 있었을 뿐 길게 이야기할 틈도 없이 길거리 중국집에서 수타자장면을 사먹고는 돌아왔다. 그게 좀 서운하기는 했다.



“우와, 아파트 청약경쟁률이 20대 1이래요. 올케는 좋겠다.”



“그거 다 분양하면 얼마나 남는대?”



고원영은 발톱을 깎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물었다.



“몰라, 나도 그게 궁금하긴 한데. 한번 물어볼까?”



아내는 곧 전화기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올케와 한참이나 중요하지도 않은 화제를 가지고 수다를 떨었다. 그러고는 비명처럼 “백 억?”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원영은 정말로 아랫배가 싸르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아내가 흥분된 표정으로 방에서 나와서는 “상가 빼고도 최소한 백억은 남는다”고 하는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고원영은 화장실로 내달렸다.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 지 서너 달이 흘렀을 때 이구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투자를 할 용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투자금으로 아파트 내 노른자위 상가로 분양해줄 수도 있고 시중 금리의 세 배쯤 되는 이자로 상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때 고원영은 갑자기 어떤 위험신호가 오는 것을 느꼈다.



“처남, 내 정말 미안한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간곡하게 말씀하신 것을 어길 수가 없어. 식구들끼리는 절대로 금전 거래를 하지 마라는 거야. 생전에 정하신 가훈 역시 ‘빚보증을 서지 말라’는 거네. 식구 간 우애도 상하고 온 식구가 다 같이 물에 빠져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어. 미안하네.”



이구재는 선선히 알았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보다는 자형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고원영은 아내 모르게 가지고 있는 여윳돈을 조금 투자할 걸 그랬다고 몹시 후회했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아파트는 준공검사를 마치고 입주가 시작되었다. 장인의 팔순 생신 잔치에 참석한 고원영은 이구재와 나란히 서서 대화를 나누었다.



“축하해, 처남. 돈 많이 벌었다매?”



이구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그에게서는 전에 없던 관록이 생겨나 있었다.



“직원들 월급 챙겨주고 회사 유지비 들어가고 하니까 남는 게 거의 없더라고요.”



“에이 왜 그래. 그거 다 제하고도 백억은 남는다고 하던데.”



“솔직히 그 백억, 급전 충당하는 데 사채 이자로 다 들어갔어요. 공사를 하다보면 별 일이 다 터지거든요. 열흘 빌리고 두 배로 갚은 적도 있어요. 본전 한 거만 해도 정말 선방한 거예요.”



“아니, 그럼 전부 남 좋은 일 한 거 아냐? 장인 어른한테라도 빌려보지 그랬어?”



“형님, 식구들 간에는 금전 거래 하는 게 아니라면서요? 우리 아버지도 칼같이 거절하시더라고요. 진짜로 어떤 때는 돈 빌려주는 사채업자가 아버지보다 훨씬 고마웠어요.”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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