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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호흡법 터득 73세 나이가 무색

중앙선데이 2016.09.25 00:09 498호 8면 지면보기

내한 공연에서 선보일 솔로 무대 ‘블랙 오버 레드’(2013) 중에서 ⓒLaurent Paillier



칠순의 ‘춤추는 시인’이 온다. 1970년대 말 유럽의 혁신적인 현대무용 트렌드 ‘누벨 당스’를 이끈 ‘컨템포러리 댄스의 여제’ 카롤린 칼송(Carolyn Calson·73)이 올해로 19회를 맞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2016 무대에 직접 오른다. 2007년 이후 9년만의 내한 공연(9월 28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이다.


9년 만에 내한하는 영원한 현역 무용수 카롤린 칼송

미국 태생이지만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안무가로 정착한 칼송은 당대 현대무용의 중심을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기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40여 년간 베니스 라 페니체 극장, 파리 떼아트르 드 라 빌, 핀란드 국립 발레단, 스웨덴 쿨베리 발레단 등을 종횡무진 누비며 100편이 넘는 작품을 만들었다. 98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 무용부문 최초의 황금사자상 수상 등이 그의 위상을 말해 준다.



자신의 작업을 ‘시각적인 시’라 표현하며 동양적 가치를 숭상하는 ‘무대 위의 철학자’지만, 칼송의 무대는 결코 정적이지 않다. 서울 공연에서도 70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역동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를 보여줄 예정이다. 무용평론가 장인주씨는 “칼송의 독보적인 면모는 음악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구축한 압도적인 움직임인데, 그걸 지금도 무대에서 보여준다”면서 “아마 내한 공연으로는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고 추측했다. 이번 공연을 놓칠 수 없는 이유다. e메일로 만난 칼송은 “매일 아침 몸의 중심잡기를 비롯한 운동과 명상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블랙 오버 레드’ ⓒLaurent Paillier



카롤린 칼송의 9년만의 내한은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한 ‘2015-2016 한불상호교류의 해’ 행사의 일환으로 성사됐다. 지난 1년간 프랑스에서도 한국의 무용이 많이 소개됐는데, 칼송은 자신이 상주 아티스트로 머물고 있는 샤이요 국립극장에서 소개된 국립국악원의 종묘제례악을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았다. “한국의 역사적인 의식(ritual)을 보여주는 춤이었지요. 무용수들의 정확한 움직임이 아주 인상 깊었어요. 아름다운 전통 장식과 음악도 매우 강렬했습니다.”



이번 무대는 자신이 30분간 직접 춤을 추는 ‘블랙 오버 레드(BLACK OVER RED)-로스코와 나의 대화’를 비롯해 한국인 무용수 원원명(40)이 추는 ‘불타는(Burning)’과 ‘바람여인’ 등 3편의 솔로로 짜여진다. 2013년 작인 ‘블랙 오버 레드’는 추상표현주의의 거장인 화가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동작 하나하나에서 발산되는 빛과 어둠의 결합은 즉시 화가의 색채로 변하여 울려 퍼진다”(FANZ’YO), “가장 급진적인 유채 추상화가의 세계로 이끄는 듯한 시각적인 시(詩)의 여행”(blouinartinfo.com) 이라는 등의 극찬을 받았다.



“이종호 예술감독이 제게 로스코 솔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그는 “솔로 무대가 흥미로운 건 한 사람에게 주목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로스코 솔로 뒤에는 ‘바람 여인’이 등장하는 게 어울리죠. 캔버스를 깨끗하게 비워주거든요. 그리고 ‘불타는’으로 존경하는 무용수 원원명을 초대했어요. 다시 한번 강렬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채워주길 기대하면서. 이렇게 각각의 솔로 무대가 객석에 각기 다른 감정을 전달하게 될 겁니다.”



작품 ‘블랙 오버 레드’에는 ‘로스코와 나의 대화’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무엇에 대한 대화인가요. “그런 명칭을 붙였지만 사실 한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던지는 헌사에 가까워요. 이 안무는 로스코의 그림 ‘무제(Untitled-Black, Red over Black on Red), 1964’에서 영감을 받았죠. 이 그림에 대한 에세이 『로스코와의 대화』(2011)를 쓰다가 안무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로스코의 그림은 명상적이고 금욕적이며 어떤 통찰력까지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의 예술을 보고 난 뒤의 느낌을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요. 작품 자체가 스스로를 대변하는데, 춤도 마찬가지거든요. 당신이 보는 것이 곧 경험이 될 거에요.”



로스코는 자기 그림의 색을 배우로 여겼다던데, 스스로 그림 속 배우 역할을 하는 건가요. “네, 어떤 면에서는 대사 없는 여배우죠. 제가 쓴 『로스코와의 대화』에서만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고난과 시련, 기쁨을 거쳐 예술을 창조하는 인식의 상태를 상상하며 안무했죠. 사실 저는 작품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대중의 상상으로 완성돼야 하니까. 로스코도 대부분의 작품을 무제로 남겨 서로 다른 해석이 존재하게 했어요. 자신의 그림이 말로 설명될 수 없는 만큼, 감상하는 사람이 스스로 인식해 나가기를 바란 것이죠.” 그는 로스코와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로스코의 내적인 이미지 세계와 시각적인 시를 창조할 필요성을 공유한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그림이 종교적 체험의 대상이 되길 원했던 것처럼 춤을 통해 세상에 영적인 통찰력을 주고 싶다”고도 했다. “저 높고 광활한 우주와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세상은 자주 잊어버리거든요. 우리 존재는 보편적이며 모든 것은 하나라는 것. 그게 내가 춤을 통해 전하고픈 이야기에요.”

‘블랙 오버 레드’ ⓒLaurent Paillier

무대 위 칼송은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 속 말 없는 배우가 되어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마주하게 한다. 사진 중앙포토



“나는 로스코 그림 속 말 없는 여배우” 사실 칼송이란 이름은 우리에게 그리 친숙하진 않다. 하지만 그는 영화 등을 통해 ‘현대무용계 대모’로 낯익은 독일의 피나 바우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시대 현대무용계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장인주씨는 “피나 바우쉬가 ‘탄츠테아터’라는 장르를 만들고 연출과 무대에 주력했다면 카롤린 칼송은 독보적인 움직임 자체와 음악과의 관계에 주력해 보다 추상적인 언어를 만들어냈다”고 구분했다.



영향력 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칼송은 후배들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가진 것을 끌어내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의 신진 안무가들도 그에게 많을 걸 배웠다고 고백한다. 후배들이 안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자기 것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산파 역할을 해 왔다”는 게 장씨의 평가다.



‘불타는’은 한국 무용수 원원명을 위한 작품이라구요. “그의 강렬한 존재감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몇 년간 나와 함께 활동하면서 보여준 퍼포먼스도 기대 이상이었어요. 그를 위해 특별히 만든 작품인데, 그와 내가 빛과 함께 불타고 있고 그 원동력을 매일 불태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죠.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활활 태워버리자는 이야기예요.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제일 먼저 후회스런 약속들을 태워버려야 하거든요. 핵심적인 결단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제대로 보고 느끼기 위한 과정인 것처럼.”



알쏭달쏭 선문답 같은 답변들에는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발레를 배웠지만 대학에선 무용이 아닌 시와 철학을 전공한 것이다. “시는 나의 근원이며, 내 춤은 철학과 영성을 강하게 지향한다”고 강조하는 그다.



“제가 한 거의 모든 작업이 시 또는 철학가의 에세이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제 춤은 테크닉이 아닌 마음에서 출발하죠.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 질문을 던집니다. 움직임 너머에 에너지를 향한 질문이 있는 거죠. 그 에너지는 무대를 관통해 관중에게로 나아갑니다. 그러니 시처럼 대중의 해석에 열려 있고, 상상력의 여지를 열어두는 거죠. 어쩌면 춤은 서예와도 같아요. 서예에서 손의 움직임은 종이 위의 흔적이 되고, 그 흔적들은 시를 쓸 영감을 줍니다. 그러면 시가 다시 무대 위의 움직임으로 돌고 도는 것이죠.”

2006년 예술의전당 기획공연 ‘느린 달(full moon)’ 중에서

‘느린 달(full moon)’ 중에서

‘느린 달(full moon)’ 에서 칼송과 협업한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가운데)



전성기와 지금의 작업을 비교한다면. “제 작업의 기반인 시에 대한 통찰이 깊어지면서 저의 창작 또한 진화했지요. 세상이 변해가기도 하구요. 한 시대는 고유의 색채를 띠고 있거든요. 함께 하는 무용수들도 각자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 핀란드·이탈리·프랑스에서 작업한 결과물이 각기 다릅니다. 협업의 비밀이죠.”



오랜 세월 태극권, 기공, 서예 등 동양 문화에 심취해 온 그의 작품은 내면에 동양 철학을 품고 있다. 일본의 부토 등 동양 춤의 직접적인 영향도 받았고, 2006년 예술의전당 기획공연으로 한국 창작춤의 대모 김매자와 협업한 ‘느린 달(Full Moon)’은 강강술래의 구조적 원리를 차용해 현대인에게 치유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동양 춤은 자연과 영혼의 힘을 세상과 연결 짓죠. 인간 안에 내재된 단순성을 다루는 것 같아요. 느린 동작 안에 시간을 잊어버린 몸짓들이 있고, 영혼 속에서 몸의 중심을 잡아 춤으로 이끌어내죠. 태극·기공 등 무예를 통해 많은 걸 배웠어요. 마치 순간 속에 들어간 듯 자연에게 받은 선물이었죠.”

‘블랙 오버 레드’ ⓒLaurent Paillier



몸의 중심잡기· 명상, 지금도 춤출 수 있는 비결 그간 칼송과 꾸준히 인연을 이어왔다는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은 “그는 동양에 대한 조예가 정말 깊다. 우리와 작업했던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직접 그때의 추억을 서화로 그려서 보내주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일본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좋아하던 그가 저와 알고부터 한국의 음악적 요소에 심취하게 됐죠. 원래 하이쿠를 좋아하던 사람인데 제가 소개한 우리 정가에 빠져들더군요. 이번에도 공연 전 워크숍을 연다고 제게 우리 음악가를 추천해 달라 하더라고요. 당시 2년에 걸쳐 세심한 작업을 하면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는데, 한국무용의 호흡과 여백을 이해하고 자기 안무 메소드에 적용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그런 태도를 많이 배웠죠.”



김 이사장은 칼송이 70대에도 현역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동양춤의 호흡법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저와 동갑이거든요. 한국무용가들은 연륜이 있을수록 자기 몸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죠. 칼송도 동양적인 호흡법과 에너지를 자기 몸에 적용했기에 오래 출 수 있는 거예요. 높이 뛰고 다리 많이 드는 게 아니라 속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아는 고수인 거죠.”



칼송 자신도 ‘몸의 중심잡기’와 ‘명상’을 지금도 춤출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다. 하지만 왠지 그가 말하는 춤은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움직임이라기보다는 그의 머릿속에서 꿈틀대는 시상인 듯하다.



“사람은 순간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춤의 동작은 바로 그 순간 속에 나타나고 사라지죠. 하지만 춤은 거짓말을 허락하지 않는 게 매력이에요. 무대 위 무용수를 볼 때 당신은 진실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무용수는 몸을 숨길 수 없으니까요. 근본적으로 무대 위 무용수에게 의상이란 있을 수 없고, 저는 제 인식만을 대변하죠.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를 끊임없이 인식하며 늘 기본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게 춤의 아름다움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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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린 칼송의 갑작스런 건강악화로 그의 내한일정이 취소되어 28일 카롤린 칼송 무용단의 공연이 일부 변경되었음을 SIDance 조직위원회가 25일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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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SIDance 조직위원회·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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