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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Deja vu by system #7. 제안(提案)

중앙일보 2016.09.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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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성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이야길 들어봐서 나쁠 건 별로 없었다. 안 믿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위치를 바꿔 앉았다. 몸매가 더욱 도드라졌다. 의도인지 의도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직 순진하기만 한 재성의 시선을 흔들기엔 충분했다.
 
“그걸 말씀드리기 전, 재성님의 원래 미래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려도 괜찮겠어요?”
 
“제 미래요?”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자는 양손으로 턱을 괴며 이야기했다.
 
“절대 이상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그냥 차분하게 들으세요. ‘이미 정해진 것’이긴 하지만, 재성님의 선택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까요.”
 
재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요.”
 
무슨 얘기를 꺼내려는지, 여자의 얼굴이 불편해 보였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재성은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들 대부분이 사실이 아닐 거라는 단정을 하면서도 긴장이 되어 입술이 타올랐다. 여자의 입이 움직였다.
 
“재성님께서는 돌아오는 입시에 실패를 합니다. 재수를 준비하죠.”

 
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각오를 하고 있던 거였다.
 
“재수생활도 순탄치는 않습니다. 그래서 몇 개월 만에 포기하고 취직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몇 년간의 허송세월을 보냅니다.”

 
순간 재성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자는 계속 이야기했다.
 
“집도 없고 가진 것이 없으니, 결혼하기도 힘듭니다. 그래도 짝을 찾긴 찾습니다. 하지만 아이 하나를 낳고 헤어지고 맙니다. 여자 분이 아이를 맡고요.”
 
“훗, 그리고요?”
 
“재성님은 그 여자 분과 아이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며 폐인처럼 지냅니다. 그렇게 힘든 삶을 살다가 결국 고독하게...”

 
재성의 눈동자가 붉어졌다.
 
“그만요!”
 
그의 목소리에 울분이 섞였다.
 
“보자보자 하니, 너무하는 거 아닌가요?”
 
재성이 다시 방안을 돌아다니며, 벽 부분을 양손으로 일일이 밀었다. 하지만 박스에 갇힌 쥐처럼 빙빙 돌 뿐이었다. 그에 아랑곳없이 여자는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 ‘직후생인’이에요. 기억을 더듬어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결정된 미래’는 자력으로 어쩔 수가 없어요. 운명이 뭔지 아시죠?”
 
“그만하라니까요!”

 
여자가 차갑게 말했다.
 
“출입구는 언제든 열어드릴 테니, 마저 들으세요.”
 
“됐어요!”
 
“손해 볼 건 없잖아요?”
 
“헛소리를 듣고 있는 거 자체가 큰 손해예요. 그리고 지금은 너무 늦었다고요.”

 
여자가 고갤 흔들었다.
 
“이곳에서 재성님 시대의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단 1분도요.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요?”

 
재성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자기가 누워있던 베드 쪽으로 가서 몸을 기댔다. 그리고 맘대로 하라는 식으로 눈을 감고 빈정거렸다.
 
“좋아요. 다 들을게요. 고독하게 결국?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요?”
 
여자가 대답했다.
 
“재성님의 동생 분은 성격이나 학습력이 재성님에 비해 매우 뛰어납니다. 그 동생과의 차이가 점점 커지지만, 동생은 오빠와의 관계를 끊지 않네요. 무척 착한 동생이에요. 그 동생이 재성님을...”
 
재성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상했다는 기분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여자를 노려봤다. 화가 가득 찬 눈동자였다.
 
“거기서 내 동생 이야기가 왜 나와요?”
 
“상관이 있으니까요.”
 
“지금 약 올리려는 거죠? 대체 왜! 뭐하는 거예요? 왜왜?”

 
재성은 악에 받혀 마구 소리를 질렀다. 눈동자에 핏기가 돋아났다.
 
“문 어디 숨겼어요! 대체 내가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거야?”
 
성질을 참을 수가 없는지 그는 벽을 주먹과 발로 있는 힘껏 뻥뻥 찼다. 하지만 벽은 꿈쩍도 안했다. 그 딱딱한 것을 때리는데도 이상하게 손이나 발이 아프지 않았다.
 
“이 민감한 반응을 보세요. 동생 때문에 평소에 기(氣)도 죽었고, 스트레스 많이 받았잖아요. 평생을 그렇게 사실 건가요?”
 

재성은 그 말에 모든 걸 포기한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전,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함부로 넘겨짚지 말라고요.”
 
“우린 서로에게 도움이 필요해요. 재성님도 제게서 필요한 것을 얻어 가면 좋잖아요? 잘 판단해 보세요.”

 
재성이 여자를 흘겨봤다.
 
“신비롭게 보이기 위해 초록색 서클 렌즈를 끼고 나왔다든지... 생각을 읽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어디선가에서 내 정보를 얻었다든지... 최신 홀로그램 기기로 속였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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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일어났다. 눈빛이 차가워 보였다. 사방이 막힌 공간이었지만, 어딘가에서 새어 들어오는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하늘거렸다. 여자는 그걸 한 손으로 쓸어 올려 묶었다. 그러자 하얗고 작은 얼굴이 도드라졌다.
 
“누군가가 재성님 시대에 흔치도 않은 비싼 홀로그램 장치까지 이용해가며 재성님을 기망(欺罔)할 정도로 본인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여자의 말에 재성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믿으려고 해도 믿을 수가 없는 걸 어떡해요? 생각해봐요. 제가 그쪽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재성의 눈동자 속엔 조금씩 ‘설마’라는 단어가 스며들고 있었다. 여자가 재성에게 다가오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니 일단 들어 보기나 하세요. 그 후에 믿든 그냥 나가시든 하면 되잖아요?”
 
그에 재성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여자는 좀 더 부드럽고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제 연구를 도와주시는 대신, 저는...”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재성님이 필요로 하는 모든 지식을 재성님의 머릿속에 넣어드릴 거예요.”
 
순간 재성의 눈동자가 커졌다.
 
“무슨 소리죠?”
 
“부러워하셨잖아요. 똑똑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들을... 그래서 머릿속에 칩을 이식하는 세상까지 꿈꿨고요, 그렇지 않아요?”

 
재성이 황망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칩도 아니고, 하찮은 지식도 아닌... 재성님을 위대하게 해줄 수많은 지식이에요.”
 
“그럴 리가...”

 
여자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재성의 불규칙한 숨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대학은 물론이고,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이룰 수 있어요.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결혼도 할 수 있고요.”
 
재성은 순간 소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앞의 여자의 얼굴이 그녀와 많이 닮은 듯했다. 맥박이 빨라졌다.
 
“지식뿐이 아니에요. 누군가를 이길 수 있는 운동신경까지 생깁니다.”
 
“이긴다고요?”
 
“귀찮게 하는 친구들 있잖아요. 앞으로는 그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어요. 운동신경도 결국 뇌의 작용이니까요.”

 
재성이 한 손으로 이마를 만졌다.
 
“뇌의 작용? 난 머리가 나쁜데... 영어단어도 금방 못 외운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사람의 뇌는 무궁무진해요. 그 안에 우주가 있어요. 단지 활용을 하지 못할 뿐이죠. 재성님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네, 가능합니다.”
 

재성의 머릿속을 맴돌던 말이 튀어나왔다.
 
“정말이죠? 믿어도 되죠?”
 
“물론입니다. 단, 제 연구를 도와주셔야 가능하겠지만요.”

 
재성의 몸이 묘하게 뜨거워졌다. 심장소리가 자신의 귀까지 들릴 정도였다.
 
동생과 비교당하기 시작했던 이후, 재성은 하루라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늘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수면 위에 지푸라기가 떠돌고 있다. 커다란.
여자는 때를 놓치지 않고 재성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녀의 한쪽 손에는 좀 전의 그 검은색 도구가 들려있었으나 재성은 그걸 알 수 없었다.
 
“증거 하나를 제시할까요?”
 
재성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래요. 믿을 수 있게...”
 
“재성님은 잠시 후, 여기에서 나가셔서 현실로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매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놀라운 소식이라뇨?”
 
여자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좋지 않은 사건입니다.”
 
“뭔데요?”
 
“재성님께서 얼마 전 만났던 분.”
 
“...?”

 
재성이 숨을 죽이자, 여자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분의 사망 소식.”
 
재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서 빈틈이나 거짓은 찾을 수가 없었다.
 
“방금 ‘사망’이라고 했어요?”
 
“네, 그래요. 자살입니다.”
 
“내가 만났던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그게 누군가요?”
 
“재성님을 비롯해 많은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입니다.”
 
“부러워해요?”
 
“수련회 때 만난 분.”

 
순간 재성의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 하나가 있었다. 여자는 재성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사람..”

 
여자가 재성의 아래쪽을 쳐다봤다. 재성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자신이 신고 있는 슬리퍼를 내려다봤다. 재성이 눈을 부릅떴다.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걔가 왜요?”
 
“생각하시는 것처럼, 부족한 것이 하나 없는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요.”

 
재성이 떨리면서도 빠른 어투로 물었다.
 
“그건 정말이지, 터무니없어요.”
 
“그러니까요. 그 터무니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누구나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거죠. 어쨌거나 제 ‘과거’에 분명히 벌어졌던 사건이에요. 재성님 입장에서는 ‘앞으로의 일’이 되겠지만요.”
 
“앞으로의 일...”
 
“네, 충분할지는 몰라도 그것을 제가 미래에서 왔다는 증거로 제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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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동국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공포 미스터리 창작 전문 작가 그룹 언더 프리(Under Free) 부대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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