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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 90%, 평균 33세…신규 창업 1만개 일군 ‘멜팅폿’

중앙일보 2016.09.21 01:41 종합 4면 지면보기
지난 7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 난산구의 창업 액셀러레이터(창업 초기 기업 보육기관) 난지취안(南極圈) 사무실.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20~30대 중국 젊은이 수십 명이 자유롭게 웃고 떠들며 일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캠핑카 호출 서비스 ‘소팡처’의 류하이옌(32) 대표는 지난해 여름 창업을 위해 베이징에서 다니던 항공기 부품업체를 그만두고 선전으로 왔다. 중국의 유명 TV제조업체를 다니던 남편도 퇴사 후 합류했다. 창업가에게 호의적인 선전의 비즈니스 환경과 베이징보다 쾌적한 대기환경을 생각해 선전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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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대표는 “콜택시에선 디디추싱이 넘버원이라면 캠핑카 분야에선 우리가 넘버원이 되겠다”며 “지금은 어느 때보다 중국에서 창업하기 좋은 시절”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미래 선전을 가다 ① 차이나드림 현장
선전 창업생태계 왜 특별한가
‘관시’무풍지대, 모든 게 자유경쟁
스타트업 지원 단체도 100개 몰려

2010년 설립된 난지취안은 중국 최대의 인터넷 기업 텐센트 출신들이 모여서 만든 창업 액셀러레이터다. 텐센트를 퇴사한 창업가들에게 스타트업에 필요한 인력 채용, 투자 유치, 금융 지원 등 다양한 인프라를 제공하면서 액셀러레이터로 발전했다.

텐센트 관계자는 “더 크게 성공하려고 나간다는 직원들을 붙잡을 수는 없다”며 “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게 텐센트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투자하고 협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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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센트 외에도 화웨이·ZTE·DJI·BYD 등의 본사가 있는 선전에는 이들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뒤 퇴사한 창업가가 수두룩하다. 이들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이들을 육성하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만 100여 개다. 선전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선전에 등록된 벤처캐피털은 2524개로 중국 전체 벤처자본의 3분의 1이 선전에서 투자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선전대학교와 선전시가 90년대 후반 기술기업 육성을 위해 조성한 하이테크 산업단지가 있는 난산구와 소프트웨어산업단지 등에서 매년 수천 개의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있다. 선전시는 내년쯤 신규 창업 기업 수가 1만 개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선전의 IT 산업 전문가들은 선전의 ‘멜팅 폿(melting pot·용광로)’ 문화를 오늘날 선전을 만든 핵심 경쟁력으로 꼽는다. 정치 엘리트들이 꽉 잡은 수도 베이징이나 외지인에 다소 폐쇄적인 상하이에 비해 도시 역사가 짧은 선전은 외지에서 몰려든 기업인들이 키웠다. 현재도 인구 1500만 명 중 90% 이상이 외지인이다. 평균 연령도 33세로 젊다. 주택만 구입하면 거주권을 지급해 외지인의 정착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특히 선전은 중국식 ‘관시(關係·인맥)’보다도 자유 경쟁을 우선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켈빈 딩 화웨이코리아 대표는 “계획경제 모델에서 빠진 선전에선 관시에 의존해 사업하기가 불가능하다”며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경쟁하는 선전의 문화가 오늘의 화웨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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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신산업을 키우려는 선전시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몫하고 있다. 선전시 어디서나 손쉽게 볼 수 있는 BYD 전기차 택시는 2010년 중국 최초로 선전시가 대중교통에 도입한 것이다. 또 선전의 IT기업 밀집지역인 난산구는 창업단지에 입주하는 스타트업에 ㎡당 월 56위안(약 9500원)의 저렴한 임대료 혜택을 주고 있다.

이런 개방적인 남방의 문화에서 성장한 IT 거물들은 중국 전역에 혁신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기업가치 39조원)이나 O2O 업체 메이투안-다중디엔핑(18조원), DJI(11조3000억원) 등은 이렇게 탄생했다.

선전의 또 다른 경쟁력은 세계 최대의 하드웨어 제조 기지라는 점이다. 용산전자상가의 10배 규모의 초대형 상가 밀집지역인 화창베이에선 각종 기기와 부품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또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의 선전 공장을 비롯해 세계 스마트폰의 65%가 선전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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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유럽에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생산속도와 규모에 하드웨어 스타트업들도 선전을 찾고 있다. 7일 선전에서 만난 하드웨어 스타트업 넥스팩에는 구글에서 조립형 스마트폰 아라(Ara)를 이끌던 댄 마코스키가 한 달 전 합류했다.

디자인 총괄 존 패리존스는 “홍콩·실리콘밸리에 지사가 있지만 생산은 선전 공장들에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엔 실리콘밸리의 세계 최대 하드웨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핵스(HAX)가 본사를 선전으로 이전했다.

스타트업 미디어인 플래텀의 조상래 대표는 “만난 지 10분 만에 투자 계약서를 쓰고 스타트업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일단 해보라’고 하는 중국의 속도와 개방성이 선전 같은 창업도시의 힘”이라고 말했다.

선전=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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