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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준비된 검은 새 한 마리

중앙일보 2016.09.21 00:14 경제 1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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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강전 1국> ●·커 제 9단 ○·강동윤 9단

3보(15~30)=검토실에서 좌상귀 15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던 이유는 15가 놓이기 직전에 “좌상귀로 붙여가는 변화는 흑이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어려운 수읽기도 아니다. 노골적으로 귀의 실리를 도려내고 외곽 백 세력을 크게 허용하는 그림은 어떻게 진행돼도 흑이 좋을 게 없는데?

16부터 23까지 도미노의 핀처럼 쓰러지는 외길 수순, 필연의 진행이다. 24로 씌우고 보니 예상대로 귀를 도려낸 흑의 실리보다는 두터운 외벽을 쌓은 백의 세력이 빛난다. 누가 보아도 흑이 신통치 않은 결과인데 커제 같은 강자가 이런 결과를 읽지 못했다고? 3관 제패 이후 피로감을 보이고 있긴 해도 이견이 없는 세계 최강자가 이 정도의 그림에 만족할 리가 없다. 뭐가 더 있을까.

관전자들의 시선이 좌상귀로 모일 때 25, 긴 숙고 없이 검은 새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준비된 수다. 그러면 그렇지, 한 수 더 내다보았다. 25 다음 ‘참고도’ 백1, 3이면 흑4, 6으로 나가 8, 10으로 봉쇄를 돌파하는 수단. 백도 13으로 틀을 갖추지만 이 절충은 백의 예상에 없던 그림이라는 점에서 언짢다. 26은 봉쇄를 풀지 않겠다는 의지다. 27, 29로 귀의 실리가 커져 호각의 갈림.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백도 두터움을 구축하고 선수를 뽑아 우하귀 30으로 선공한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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