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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키 165㎝ 이 남자, 이래 봬도 24홈런

중앙일보 2016.09.20 00:45 종합 25면 지면보기
지난 2006년 여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스카우트 오마 로페스는 베네수엘라의 16세 소년을 유심히 관찰했다. 잘 치고, 잘 뛰고, 2루 수비도 괜찮았다. 문제는 그가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관중석이 너무 높아서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가 실제보다 작아 보였을 거라고 로페스는 생각했다. 그의 진짜 키를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로페스 앞에 선 그는 정말 작았다.

빅리그 작은 거인 휴스턴 알투베
키 작아 1600만원 헐값 계약
끊임없는 훈련으로 약점 극복

로페스는 “이 친구를 보려면 안경을 써야 한다”고 농담을 던지며 “그래도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캠프에 초청했더니 녀석은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우리 말고는 미국의 어느 팀도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이듬해 휴스턴은 소년에게 계약금 1만5000달러(약 1600만원)를 줬다. 계약 후에도 그의 키는 자라지 않았다. 메이저리그(MLB) 현역 최단신(1m65㎝) 선수 호세 알투베(26·휴스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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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의 2루수 알투베는 19일 현재 아메리칸리그 타격 1위(0.337), 안타 1위(198개), 도루 3위(27개)를 달리고 있다. 놀라운 건 홈런을 24개(리그 33위)나 쳤다는 점이다. 2011년 MLB에 데뷔한 그는 2014년 타격왕(0.341)과 안타왕(225개)에 올랐지만 당시 홈런은 7개에 그쳤다. 2015년 홈런을 15개 쳐내더니 올해는 장타력이 더욱 좋아졌다. 땅볼보다 플라이가 많아진 덕분이다. 홈런이 늘어나면서 장타율 7위(0.545)에 올라 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더한 OPS는 4위(0.942)다. 알투베는 올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후보 중 하나다.

거인들의 격전지인 MLB에서 알투베의 활약은 소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140년 MLB 역사에서 키 1m70㎝ 이하의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은 핵 윌슨(1900~48), 빌리 해밀턴(1866~1940) 등 6명뿐이다. 모두 1940년대 이전에 활약한 선수들이다. 이후에는 그 어떤 선수도 알투베처럼 활약하지 못했다.

알투베는 공을 때리는 재능이 뛰어나다.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훈련과 공부를 다른 선수들보다 몇 배 이상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MLB에서 성공할 순 없다. 존 메일리 휴스턴 타격코치(현 시카고 컵스)는 “공을 강하게 쳐야 하기 때문에 타자의 신체조건이 중요하다. 알투베의 키로는 충분한 힘을 낼 수 없다. 팔이 짧으면 타격할 때 레버리지(지렛대 효과)가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투베는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휴스턴 투수 콜린 맥휴는 “알투베는 상하좌우 어떤 코스로 공이 날아오건 쳐낸다. 타격이 단순화 돼있다”며 “투수들은 키 작은 타자와 상대하면 스트라이크존 높이 설정(타자 가슴부터 무릎 아래까지)에 애를 먹는다. 그러다 실투가 나오는데 알투베는 결코 이걸 놓치지 않는다”고 전했다. 알투베는 “여기는 MLB다. 투수들은 날 공격하듯 스트라이크를 던진다. 나도 적극적으로 때린다”고 말했다.

알투베는 지난달 17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마무리 오승환으로부터 9회 좌전안타를 뽑아냈다. MLB 786경기 만에 쳐낸 1000번째 안타였다. 현역 선수로는 스즈키 이치로(696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경기에서 1000안타에 이르렀다. 맥휴는 “팔이 짧은 덕분에(스윙 메커니즘이 단순해서) 알투베가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알투베의 성공은 그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휴스턴 구단의 캐스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휴스턴은 10년 전부터 데이터 기반의 스카우팅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선수를 새로운 시각으로 평가하려 했기 때문에 알투베라는 보석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 알투베는 휴스턴을 이끄는 리더다. 거의 공짜로 휴스턴에 입단했던 그는 2014년 4년 총액 1250만 달러(약 140억원)에 계약했다. 알투베의 가치를 생각하면 여전히 저비용·고효율 선수다. 알투베는 말했다. “사람들은 데릭 지터나 알렉스 로드리게스 같은 선수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라운드에 서면 모두가 평등하다. 키가 크거나 작은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야구를 하기에 나는 충분히 크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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