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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배 64척 중고시장 풀리면 수주절벽 조선업 더 휘청

중앙일보 2016.09.19 01:29 종합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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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해운을 양대 동력으로 한 ‘해양대국 한국’의 꿈이 휘청이고 있다. 조선산업은 이미 중국에 1등 자리를 내줬다. ‘해운 강국’이란 위상도 사라졌다.

동반 위기 맞은 해운·조선업
글로벌 해운사 저운임 출혈경쟁
17개 중 3개 못 버티고 사라져
현대상선도 중소선사 전락할 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선박 매각이 끝나면 한진해운은 한국 수출품을 외부로 실어 나르는 아시아의 소규모 해운사로 전락할 것”이라고 18일 보도한 것은 한국 해운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7위의 글로벌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기우뚱하는 사이 경쟁자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글로벌 해운동맹(얼라이언스)을 체결하고 동서 항로에 주력하는 글로벌 해운사는 14개다. 조만간 아랍계 선사 UASC가 독일 하파그로이드에 합병되면 12개사가 된다. 대만 양대 선사인 양밍이 에버그린의 컨테이너 부문 인수를 검토하고 있고, 해운 강국인 일본도 대표적 선사 3곳(NYK·K라인·MOL)으로 유지되는 3사 체제 재편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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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해운사들은 그간 경쟁자가 떨어져 나가길 기다리며 저운임 전략을 펼쳐 왔다. 세계 1위 머스크를 비롯해 3위 선사 CMA-CGM 등이 운임 ‘치킨게임’을 벌여 온 것이다. 이를 버티지 못하고 글로벌 원양 선사가 줄줄이 사라졌다. 현재 움직임대로 해운사 재편이 이뤄지면 1~7위 모두 150만TEU 이상 초대형 선사가 차지한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현대상선(43만TEU)도 중소선사로 추락한다는 얘기다.

해외 선주들은 신규 선박 발주를 줄일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 등에 빌려준 배를 되돌려 받으면 신규 선박을 발주할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조선업계에 타격을 준다. 한진해운에 컨테이너선 8척을 대선(貸船) 있는 그리스 선사 다나오스는 현재 보유한 58척 중 48척(82.8%)을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진중공업 등 한국에서 건조했다. 한진해운에 3척을 대선한 시스팬 역시 113척 가운데 절반 이상(58척)을 국내 조선소에서 만들었다. 여기에 한진해운이 보유하고 있던 컨테이너선 64척이 중고시장에 풀리면 상선 발주는 더욱 감소할 수 있다.

이미 최악의 수주절벽에 매달려 있던 조선업계엔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다. 지난 7월까지 컨테이너선 신규 발주는 총 41척이었지만 중고 거래는 68척이나 됐다. 모든 배의 거래가 줄었지만, 특히 컨테이너선 거래는 지난해 대비 90%가 줄었다. 가격도 지난해 대비 6~17% 떨어졌다. 지난해 22척을 수주했던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컨테이너선 수주가 전무하다. 지난해 각각 11척과 10척을 수주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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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현재 국가별 조선업 물량 순위 2위를 어렵게 지키고 있다. 국제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우리나라 수주 잔량은 2331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를 기록했다. 12년10개월 만에 최저다. 중국(3570만CGT)과의 물량 격차는 더 벌어지고, 일본(2196만CGT)과의 격차는 줄었다.

정부는 그간 빅3의 합병 등 구조 개편을 주문하면서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나서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시장 자율적인 구조 개편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다. 빅3는 사업 영역이 거의 비슷해 합병해도 시너지가 없다. 당장 생존이 급급한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에 대우조선 인수를 강제할 수도 없다.

현재 빅3가 확보한 일감은 1년 반에서 2년 남짓이다. 업황이 좋아질 것으로 관측되는 시기는 2018년 상반기 이후다. 일각에서는 “자존심이 상해도 선박 수리 시장, 선박 개조 시장으로라도 눈을 돌려 이 시기를 버텨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급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력을 보유한 만큼 이번 위기를 잘 넘기기만 하면 또 다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것이다.

삼호중공업 관계자는 “배를 대신할 대형 운송 수단은 아직 없다. 호황기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희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는 “특별한 것, 유일한 것을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선에서 일본을 제쳤듯이 특화시킬 만한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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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한 연근해 선박을 교체하거나 여객선 사업과 관련한 규제를 대폭 풀자는 주장도 나온다. 중소조선연구원 관계자는 “연근해를 오가는 선박 대부분이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 선박인데 해양 오염의 주범”이라며 “조선업에 불씨를 지핀다는 측면에서 중고 선박의 교체를 고려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전영선·조득진·문희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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