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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이대생, 학교 감사 요청 등 1939건…졸업생은 학생회 고발

중앙일보 2016.09.19 01:11 종합 14면 지면보기
‘추석 , 홀로 지내지 말고 본관으로 와라’.

학생들 농성 동력 떨어지는데
퇴로 없는 치킨게임에 사태 악화

추석 직전 이화여대 본관에서 점거 농성 중인 학생들이 페이스북 소통 페이지(‘save.our.ewha’)에 남긴 글이다. 추석 연휴에도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은 계속됐다. 추석 당일(15일)은 이들의 농성이 50일째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갈등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농성 기간 동안 벌어진 재학생·졸업생·학교 측 간의 고발과 민원 세례로 이화여대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농성 참가자들은 20·22·27일 세 차례에 걸쳐 교내 행진 시위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지난 7월 시작된 농성의 취지는 직장인 평생교육 단과대인 미래라이프대학 신설계획의 폐지였다. 농성 초기에 교내 경찰 투입 등으로 비난이 거세지자 8월 3일 최경희(54) 이화여대 총장은 미래라이프대학 신설계획을 철회하겠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대 사태는 학생들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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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주모자 없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의견을 모으는 느린 민주주의, 일명 ‘달팽이 민주주의’를 표방한 이대 학생들의 새 시위 방식도 연일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대 재학생과 졸업생 일부는 갑자기 ‘총장 사퇴’로 구호를 바꾼 뒤 지금까지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학내 문제를 외부 세력인 경찰의 손에 넘긴 총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농성이 장기화되며 농성 참가자들은 ‘장외전’까지 불사하고 있다. 지난 12일 농성 학생들은 입장 발표문을 통해 “국회와 지자체 등에 법인카드 유용·적립금 사용 내역 등 학교 및 이사회와 관련된 각종 의혹에 대한 감사 요청 민원을 1939건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이화여대 졸업생인 권성희(54) 변호사는 13일 이대 총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 등 10명을 업무방해·특수건조물 퇴거 불응 등의 혐의로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고발했다. 권 변호사는 “이들은 학교의 행정업무를 마비시켰고 최 총장에 대해 ‘무조건적인 사퇴’만을 요구하며 불법적으로 학교 측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농성 참가자들은 같은 날 학교 측에 공문을 보내 ‘권 변호사의 고발을 취소시키고 권 변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해 달라’고 요구했다.

농성이 애초 취지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농성 참가자들이 표방한 ‘달팽이 민주주의’의 동력은 빠른 속도로 떨어졌고 현재는 그 실체 또한 의심받는 상황이다. 실제로 교수·교직원 감금 혐의로 시위 참가자들을 수사 중인 경찰은 이번 사태를 처음부터 계획한 ‘주동자’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조만간 농성 참가자 중 일부를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한 이화여대 졸업생은 “학교가 미래라이프대학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을 때 본관에서 철수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당시 이를 주도할 사람이 없었고 ‘치킨게임’의 현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며 아쉬워했다. 지난 50여 일은 재학생과 졸업생, 학교 측 모두에 상처만 남겼다. 이제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그 역시 당사자들의 몫이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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