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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로 된장 발효 3년…짠맛 줄였죠

중앙일보 2016.09.19 00:45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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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흠(왼쪽)·지민정 부부는 “된장은 훌륭한 맛을 내는 자연 조미료”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보은군 회인면 피반령 산자락에는 제주 고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 있다. 지난 2일 차를 타고 마을 깊숙이 들어가자, 수백 개의 항아리가 마당을 가득 메운 집이 눈에 들어왔다. 고시랑장독대 대표인 고상흠(51)·지민정(51) 부부가 10여 년째 전통장을 연구하고 만들어온 곳이다.

된장 대중화 나선 고상흠씨 부부
절에서 맛본 장맛에 반해 본격 공부
“한국 된장, 일본 미소보다 맛 뛰어나”

“사방이 장독대인데도 된장 냄새는 하나도 안 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지씨가 장독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가 한 장독대를 열자 전통 된장 특유의 쿰쿰한 냄새와 달리 은은한 짠 내가 풍겼다. 고씨 부부가 ‘된장의 대중화’를 목표로 자체 개발한 벌꿀효소 된장이다. “장을 담글 때 대추를 벌꿀에 발효시킨 효소와 함께 각종 한약재를 넣었어요. 일반 된장에 비해 냄새를 80%까지 잡았고 짠맛도 덜한 편이죠.(지씨)”

불교용품 도매업을 하던 고씨 부부는 1998년부터 된장 연구에 뛰어들었다.

고씨는 “전국의 사찰에 다니다 보니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장을 맛볼 수 있었고, 자연스레 전통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씨도 “외국 호텔에 가면 일본의 미소 된장국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더 훌륭한 맛을 내는 한국의 전통 된장은 우리 젊은 세대들조차 찾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워 장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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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발효액을 넣고 장을 담근 뒤 1년이 되니까 시어서 못 먹겠고, 2년이 되니까 써서 못 먹겠더라고요. 3년을 기다리니 그제야 제대로 된 된장 맛이 났어요.(지씨)” 이 때문에 1년 이상 묵혔다 먹는 일반 된장과 달리 고씨 부부의 된장은 3년에서 5년의 숙성 과정을 거친다.

2010년 특허 등록까지 마치며 본격적으로 된장 사업에 나선 이들에게 위기가 찾아온 건 2012년 7월이었다. 한 업체와 계약을 하러 가는 길에 4중 추돌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지씨는 당시 사고의 충격으로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겪으면서 사고 이전의 기억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2년간 병원 신세를 지며 힘들어하던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남편의 힘이 컸다. 고씨는 “병원에서 외출할 때마다 이곳 장독대 앞에 앉혀놓고 일하는 모습을 보게 하면서 기억을 되살리려 했다”고 말했다. 지씨는 사고 전 기록해 둔 메모를 토대로 장 담그는 방법 등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면서 조금씩 예전의 삶을 되찾았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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