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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여력 없이 혁신이 가능한가

중앙일보 2016.09.19 00:32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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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논설위원
고용노동선임기자

얼마 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보도가 있었다. ‘근로시간 단축이 신규 고용을 떨어뜨린다’는 내용이다. 주 40시간 근무제(주 5일제)가 도입된 뒤 근로자 한 사람의 주당 실제 근로시간은 43분 정도 단축됐다. 하지만 신규 고용률은 오히려 2.28%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초과근로수당이 많아져 투입비용이 증가했다. 그러자 기업이 장기적으로 생산 규모를 줄이게 되고, 덩달아 고용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초과근로수당 때문에 생산을 줄인다는 게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기업이 살길을 접는다는 얘기와 같아서다. 역으로 장시간 근로를 하면 초과근로수당이 줄어드니 기업이 생산을 늘려 고용률이 올라간다는 말이 된다. 어째 이상하다. 그런데 이 분석의 근거가 2004~2009년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였다. 2004년이면 카드대란으로 경제위기가 고조될 때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그해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원활한 개인 파산제도 도입과 같은 해법을 제시할 정도였다. 2008~2009년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휘청거리던 때다. 고용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왜 고용률이 떨어졌는지 이해가 간다. 근로시간과는 어쩌면 별 상관없이 말이다.

근로시간은 갈수록 짧아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더 줄이고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게 석학들의 얘기다. 저명한 경영학자인 톰 피터스(Tom Peters)는 “기업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전략·조직구조·시스템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며, 특히 ‘창조성과 상상력’이다”고 했다. 경쟁력의 원천이 노동이나 자본인 시대는 갔다는 얘기다. 부(富)의 원천은 창조적 상상력으로 바뀌었다. 경제 역사의 고비마다 한 나라를 일으키고 새로운 경제 패권을 형성한 것도 혁신성에 기인한다. 주식회사 개념을 도입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를 강국으로 만들고, 덩샤오핑(鄧小平)이 흑묘백묘(黑猫白猫)론으로 공산당 논리 대신 개혁·개방을 채택해 굴기를 이룬 것도 이런 파괴적 혁신성이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예전의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더 만들어 냈다. 4차 산업혁명은 다르다. 다보스포럼은 사라지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5년 내에 710만 개가 사라지고, 200만 개가 새로 생긴단다. “전통경제가 규모의 경제에 의해 작동된다면 신경제를 이끄는 것은 네트워크 효과다”는 칼 샤피로(Carl Shapiro)와 할 배리언(Harl Varian)의 1998년 예상이 현실로 다가왔다. 오래 일하고 몸집이 크다고 생존하는 시대가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이나 한진해운만 봐도 그렇다. 작지만 효율적이고 경제 물길을 바꾸는 혁신성이 중요하다. 강소기업이 즐비한 독일이나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들처럼 말이다.

어쩌면 근로시간 유연화는 고용시장의 혁신이란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오래 일하다 지친 상태(burn-out)에선 창조적 상상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잔업과 특근에 근로자를 지치게 하는 건 조직의 후진성을 보여 줄 뿐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쟁력의 원천은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시간, 즉 여력(slack)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그게 일하기 좋은 회사”라고 했다. 근로자 개개인의 혁신성이 기업을 먹여 살리고, 그 과실로 고용은 늘어나는 선순환구조를 타게 되니 말이다.

그러려면 기술 진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근로 환경은 디지털화되고 있다. 생산현장은 물론 고용시장의 구조도 그에 따라 크게 변했고, 앞으로 더 심한 지각 변동이 예고됐다. 그런데도 전통적 생산 시스템, 노사 관계, 인력 운용을 고집한다면 미래가 없다. 고용시장을 유연하게 하고 아이디어에 대한 재산권을 인정(성과 보상)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이게 되면 근로시간은 자연스럽게 유연해진다. 그걸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추진했지만 지지부진이다. 노동개혁은 다른 게 아니다. 고용시장 혁신이다.

창조와 혁신은 인간의 영역이다. 이를 외면하면 로봇과 경쟁하고, 로봇을 원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지금 필요한 러다이트(Luddite)는 로봇을 부수는 게 아니라 기회를 선점할 수 있게 구습(舊習)의 틀을 깨는 일이다.


김 기 찬
논설위원
고용노동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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