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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경제는 없다?

중앙일보 2016.09.19 00:25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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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

한가위 차례상 앞에 친척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본 반가움에 밝은 미소와 함께 ‘얼굴 좋아졌다’ ‘아이들 많이 컸다’는 덕담이 오갔다. 덕담이 끝나고 세상 사는 얘기로 이어지자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한 친척은 “요즘 회사 일감이 줄고 있다”며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또 다른 대기업에 근무하는 친척은 “외부에서 볼 땐 회사가 큰 문제 없이 잘나가는 것 같지만 분위기는 썰렁하다 못해 꽁꽁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핵심 사업 중심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 임원 수가 갈수록 줄고 있는 데다 어떤 사업부가 매각될지 몰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말하는 내내 찌푸려진 그의 두 눈썹 사이는 펴지질 않았다. 중소기업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대기업 직원도 실직 불안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듯했다.

자녀 이야기로 이어지자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이네 아들 말이야. 대학 졸업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취직을 못했다네.” 다른 친척이 거들었다. “내 손주도 중소기업에 다녔는데 올 초 회사가 망했거든. 그래서 동료랑 창업했다는데 아직 벌이가 거의 없어.” 대학생 자녀를 둔 친척은 “이렇게 취직하기가 어려우니 우리 애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이날 차례상은 한숨으로 끝났다.

이들을 짓누르고 있는 불안감을 관통하는 건 경제였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는 갈수록 움츠러들고 서민의 삶은 팍팍해졌다. 설문조사를 하면 지난해보다 살림살이가 나빠졌다는 응답자가 10명 중 4~5명에 달할 정도다. 정부는 2012년 10조원이던 일자리 예산을 올해는 50%가량 늘려 15조원이나 쏟아붓고 있지만 청년실업률(15~29세)은 해마다 치솟고 있다. 2012년 7.5%에서 올해는 2월에 사상 최고치(12.5%)를 기록하는 등 평균 10%대로 상승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14분기 동안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1% 이상 성장한 건 세 차례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0%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인 수출은 19개월 연속 마이너스(전년 동기 대비) 행진을 벌이다 지난달 반짝 상승세(2.6%)를 보였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이를 조업일수(2일) 증가 등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진단한다. 당장 이달 1~10일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감소했다. 여기에 가계부채는 2013년 1분기 962조원에서 올해 2분기에는 사상 최대치인 1257조원으로 불어났다. 경제가 위축되면서 청춘들은 취업시장에서 피지도 못하고 지고 있고 개인은 빚에 짓눌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라는 단어를 첫째 또는 둘째로 많이 언급한다. 하지만 서민의 삶이 벼랑 끝에 와 있는데도 국민이 체감할 만한 획기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는다. 현 정부는 경제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 관심이 다른 데 있는 것인가.


김 창 규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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