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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다같이 누리면서 부담은 한 명이…독박 문화’ 언제까지

중앙일보 2016.09.19 00:01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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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추석 명절이 끝났다. 명절 끝에 마음이 울적한 사람들도 있다. 바로 1000만 명이 넘는 며느리들이다. 1년에 2번 나타난다는 육체적·정신적 증상인 ‘명절증후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병’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절증후군이 반복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독박 문화’ 때문이다. 독박 문화는 소수의 희생을 강요해 다수가 그 편의와 혜택을 누리려는 세태를 말한다. 마치 형제들이 여럿 있어도 의무와 책임은 맏이의 전유물로 여긴다거나, 동호회원은 많은데 모임준비는 항상 회장·총무 몫으로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 혜택은 똑같이, 책임은 편파적으로!

문제는 이러한 독박 문화가 명절 뿐 아니라 우리 일상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여러 명이 함께 식사할 때는 ‘식비 독박’이 일어난다. 연장자나 상사, 아니면 돈이 많은 사람이 밥값을 다 지불하는 것이 관습처럼 굳어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혜택만 있고 책임이 없으면, 행동은 ‘무(無)절제’해지기 마련. 돈 걱정 없이 먹다 보니 과식·과음으로 이어진다. 특히 밥값을 회사 돈으로 내는 날엔 더 말할 것도 없다. 메뉴는 돼지고기에서 소고기로 상향 조정되고, 1인분씩 먹던 양이 2~3인분으로 늘어나는 게 다반사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본인 몫만큼 책임지는 ‘자기 책임의 원칙(self-responsibility)’이 일반적이다. 식사는 ‘더치 페이’가 기본이다. 나이·직위·재력을 떠나 정확히 각자가 먹은 만큼 지불한다. 동네 주민들의 친목모임마저 각각 한두 가지 음식을 만들어 와서 즐기는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형태로 진행된다. 여러 요리를 분담하니 부담도 줄고, 한 가지 메뉴에 양만 늘리니 효율성도 올라간다. 아담 스미스가 말한 ‘분업에 따른 생산성 혁신’과 같다.

국가 정책에도 독박 문화는 만연해 있다. 최근 유행하는 포퓰리즘 정책들이 대표적이다. 인기의 근원엔 ‘세금 독박’이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세 수입구조를 보면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이 많다. 근로자도 법인도 절반이 면세자다. 게다가 법인세의 약 80%를 상위 0.5% 기업이, 소득세의 40%를 상위 1.5%가 부담한다. ‘물주’가 있으니 ‘과식·과음’이 이어진다. 정치인은 ‘퍼주기’식 정책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대중도 마다하지 않는다. 만일 이를 위해 개인 세금부담을 올리자고 한다면, 사람들의 호응과 수많은 포퓰리즘 정책 발표가 있을 수 있었을까?

오래 전, 미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에서는 컨벤션 센터 건립을 두고 두 번의 주민투표를 진행한 적이 있다. 건립 여부에 대한 투표는 통과됐으나, 재원 마련을 위한 0.25%포인트 부가세 인상 건은 부결됐다. 컨벤션 센터가 ‘내 돈’을 더 부담할 만큼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기 몫은 자기가 부담하라는 ‘김영란법’은, 포퓰리즘이 판치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건·사고가 생기면 ‘책임 독박’도 일어난다. 사고의 근본원인 규명과 잘못된 시스템 개선에 주력하기보다, 소위 ‘옷 벗을 사람 찾기’에 급급하다. 그러다 보니 역대 장관 평균 재임 기간은 1년여 남짓. 하지만 비슷한 문제는 반복된다. 근본적인 개선 없이 책임 독박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독박 문화는 ‘경제 살리기’에서도 나타난다. 창조경제는 5천만 국민과 70만 기업이 동참해야 가능하지만, 실상 사람들은 ‘남의 일’인양 대통령만 바라볼 뿐이다. 반면 서구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재작년, 다보스 포럼에서 우리 대통령의 창조경제 강연을 들으며, 한 서양인에게 ‘저 분이 말씀하시는 창조경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통령의 뜻을 왜 알아야 하죠? 지도자는 방향을 제시할 뿐, 구체적인 행동은 각자의 몫이지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선진국민이 정책을 어떻게 대하는 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창업 독박’도 만만치 않다. 창업 얘기만 나오면 우선 청년부터 얘기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창업정신을 가지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인데도 말이다. ‘투자독박’도 있다. 투자는 대기업만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주요 대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와 고용 비중은 GDP의 10%대거나 그 이하임에도 말이다. 나머지 80~90%를 차지하는 중견·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이 모두 투자에 나서야 경제 활력도 생길 터다.

여러 사람의 행복은 일부의 ‘독박’이 아닌 각자의 ‘책임’을 다할 때 오는 것이 아닐까.


이 승 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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