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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하드고어한 오후 한 시 #7. 딸기의 밤 (1)

중앙일보 2016.09.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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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탁 소리가 나게 책장을 덮었다. 덮었다기보다 던져둔 것에 가까웠다. 스탠드 불빛 아래 한여름의 음영이 사각 형상으로 도드라졌다. 어스름이 내리는 창밖에는 검붉게 착색된 다가구 주택의 지붕들이 축축한 구름장을 배경으로 들쭉날쭉 솟아 있었다.
 
‘역시 하드고어는 내 체질이 아냐.’
 
공 실장으로부터 《스트로베리 나이트》를 받아온 게 엊그제였다. 공 실장은 경영 악화로 존망이 불투명해진 T 출판사의 실질적인 소유주로 그녀의 십 년 지기였다.
 
“한 번 읽어나 봐.”
 
달콤한 제목답지 않게 스트로베리 나이트는 피 웅덩이에 발을 담그지 않고는 다음 행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하드고어류 소설이었다.

장르문학이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좀 세다 싶었다. 사람 몸을 난도질하다 못해 쨈처럼 으깨는 살인쇼가 습한 지하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살인자의 철퇴에 희생자의 눈과 귀가, 코와 입이, 가슴이 뭉텅뭉텅 사라졌다. 선량한 시민이자 평범한 생활인인 관객들은 살 떨리는 공포와 아찔한 쾌락의 양극단을 오가며 숨죽이고 쇼를 지켜보았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으깨놓고 싶을까?”
 
“그래도 그 소설로 혼다 데쓰야가 완전히 떴어. 작년 여름,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가운데 하나야. 임 작가도 맨날 어설픈 소설만 붙잡고 있지 말고 그런 걸 쓰는 거야.”
 
내 소설은 읽다 보면 배시시 웃음이 나오잖아. 웃음이 나오게 하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지, 토 나오게 하는 소설이 뭐가 좋아? 이딴 거 나 못써! 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임 작가’는 도대체 왜 이런 소설이 인기인데 하며 스트로베리 나이트를 분석 중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금속성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창 너머로 1층 여자의 통통한 다리와 보라색 플라스틱 슬리퍼, 건조대의 은빛 몸체가 땅을 끌며 지나가고 있었다.

‘또 시작이군.’
 
탁탁 빨래 터는 소리와 함께 섬유 유연제에 뒤섞인 역한 세제 냄새가 밀려들어 왔다. 해 질 녘에 빨래를 너는 이유가 뭐야. 가뜩이나 습한데. 1층 여자는 얄밉게도 창가를 살짝 벗어난 자리에 빨래건조대를 폈을 터였다. 그나마 개선된 게 이 정도였다. 며칠 전만 해도 여자는 떡 하니 그녀의 창 앞에 빨래를 널었다.

반지하 생활자의 가장 큰 고충이라면 일조량이 부족한 것도, 먼지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습기였다. 해 질 녘이면 낮 동안 열과 습기를 머금었던 대지가 반지하 그녀의 처소를 향해 더운 숨을 뿜어냈다. 습기는 형체 없는 유령처럼 스멀스멀 기어들어 와 그녀의 숨통을 무지막지하게 죄었다.
 
“아래층 사람인데요.”
 
참다못해 쫓아 올라갔다. 문을 열어 준 여자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동글동글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가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보았다.
 
“부탁인데, 빨래건조대 위치를 조금만 옮겨 주시면 안 될까요? 가뜩이나 반지하라 통풍도 안 되는데 빨래가 창을 떡 가로막고 있으니 습기가 다 저희 집으로 들어와요. 세제 냄새도 심하고요.”
 
동글동글한 눈이 가로로 길게 찢어지는 것이, 여자의 표정에 노기가 서렸다.
 
“깨끗이 헹구었다구요.”
 

아무리 잘 헹구어도 젖은 빨래에서는 기본적으로 세제 냄새가 난다는 것과 한 시간만 코앞에서 그 냄새를 맡게 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것을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댁이 이 골목 전세 낸 것도 아니잖아요. 이쪽이 저쪽보다 햇빛이 잘 든다구요.”
 
“어차피 이쪽으로도 그늘이 져요. 그래 봤자 몇 분 더 쬐는 것이니 빨래 너는 곳을 조금만 옮겨 주세요.”

 
공방이 이어졌지만, 여자는 끝내 빨래건조대를 옮기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베란다를 만들 수 없는 집 구조 때문에 바깥에 빨래를 너는 것은 이해한다지만 남에게 피해를 줘 가며 자기 욕심을 차리는 것까지 봐줄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3층에 사는 주인 여자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주인 여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내가 음식 쓰레기를 버릴 때는 잔반통에 버려달라고 했는데, 부득부득 일반 쓰레기에 섞어 내놓는 통에 못 살겠어.”
 
자신이 원하는 것은 쓰레기 버리는 방식이 아닌 빨래 건조대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었지만 주인 여자도 쌓인 게 많은 것 같았다. 노년에 접어든 주인 여자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떠들어댔다.
 
“지들도 그렇게 오래 반지하에 살았으면 그 고충을 알만도 한데 왜 그렇게 매너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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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개구리, 올챙이 적을 생각해서라도 빨래 너는 위치를 바꾸게 하라고. 그녀는 주인 여자의 모든 말에 수긍한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 여자의 말에 의하면 1층 여자는 건너편 반지하에 5년 가까이 세 들어 살다가 작년에야 이쪽 1층으로 주거지를 옮겼다고 했다. 말하자면 이 동네 터줏대감이었다. 여자의 심술은 텃세라고 할 수 있었다.

아파트 9층에 살던 그녀가 반지하로 거처를 옮긴 것이 지난해 겨울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 준비를 하던 남편이 어느 날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얼굴이 파리한 게 한눈에도 특대 사이즈의 사고를 친 것으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생활비로 가져다준 돈이 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야금야금 빼낸 대출금이라는 것이다. 이제 대출도 더 이상 불가능하고 이자 갚을 방법마저 없으니 생활비를 끊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중대한 사실을 왜 이제야 말하는 걸까.
 
“말해야 알아? 사업 준비하는 사람이 돈이 어디서 났겠어? 그 정도 눈치는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 당신이 뭐라도 해서 생활에 보탬을 줄줄 알았어.”
 
남편의 말투에는 절박함과 면목 없음, 원망이 골고루 묻어있었다.
 
“나는 소설 쓰잖아.”
 
“맨날 그놈의 소설. 대체 돈도 안 되는 소설을 뭐하러 써?”
 
“나도 이제껏 놀지 않고 일했어. 일할 만큼 했으니 이제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도 되는 거 아냐?”
 
“나는? 나는, 하고 싶은 거 없는 줄 알아?”

 
당신은 가장이잖아.”
 
“그토록 혐오하는 가부장제를 왜 이럴 때는 들먹거리고 나오실까.”
 
“당신이 그 잘난 바에 다니는 동안 나 알뜰하게 살림했어.”

 
남편의 취향 정도는 신용카드 명세서에 다 나와 있었다. 룸살롱보다 저렴하고 호프집보다는 주대가 센 바(bar)에는 남자들의 하소연을 잘 들어주고, 허벅지와 손목 정도는 쉽게 빌려주는 젊은 아가씨가 상주할 터였다. 허를 찔렸는지 남편의 심기가 확연하게 불편해졌다. 창백했던 얼굴에 피가 돌면서 안색이 검붉게 변했다.
 
“이게 얻다 대고 큰소리야?”
 
“당신이야말로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사람을 물건으로 아는 거야? 이거라니!”

 
모든 언쟁이 그렇듯 그들의 싸움도 본질에서 벗어나 말투가 어떠니 저떠니 하는 문제로 넘어가버렸다. 그렇게 매일 싸워대는 가운데 드디어 대출이자를 갚아야 하는 날이 닥쳤다. 그다음 순서는 경매였다. 용케 집을 판다고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부동산 시세는 최악이었고 어떤 방법을 경유해도 그들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고생해서 산 집이니만큼 그녀는 세상을 헛산 느낌마저 들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파트를 전세로 돌린 뒤 집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더 깊은 나락으로 달려가는 길이 될 수도 있었다. 부동산 시세는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 중이었다. 그중 아파트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집값이 더 떨어진다면 그들의 인생은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다. 어떤 선택도 악수였지만 그들은 확률이 가장 적은 쪽에 내기를 걸었다. 집값이 오르기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아파트를 전세 준 뒤 일부 대출금을 갚고 나니 각자의 손에 남겨진 돈이 6천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을 한다. 그러나 헤어지고 나면 변변치 않은 재산마저 반쪽이 나기 때문에 대개가 바닥 인생으로 전락한다. 그러므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이혼한다는 것은 핑계다. 경제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혼하는 것이다. 이혼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남편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그녀로선 온당한 선택이었고 그렇게 해서 하루아침에 극빈자가 되었다.
 
부동산에서 소개해 준 집이 지금 사는 17평짜리 반지하였다. 인간의 주거지라면 아파트밖에 없는 줄 알던 그녀였지만 동네가 조용하고 주택 외관이 세련된 것이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택지조성이 이루어진 지 칠팔 년쯤 된 다세대 주택지였고 마을 어귀에 동네여자들이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웃끼리 정담을 나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정서적 충만함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반의반 토막이 나기는 했지만 집 자체도 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어두컴컴하고, 통풍이 안 되고, 습하고, 곰팡이 냄새가 나고, 집 내부가 환히 내려다보여 사생활 보호가 안 된다는 점만 빼고 말이다.
 
“혼자 사는 주제에.”
 
현관에선가 스치는데 1층 여자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그랬다. 온갖 경멸이 담긴 말투였다. 그녀로선 어이없는 봉변이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혼자 사는 게 왜 문제가 되지?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는 곧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혼자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주거지가 문제였다. 그전에 살던 곳에도 더러 혼자 사는 여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놓고 경멸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아파트 특유의 구조적인 폐쇄성과 익명성도 있겠지만 구성원의 자의식이 문제인 것 같았다. 대형 아파트의 경우, 관리비 등 유지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아파트 거주자에게는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했다. 즉 여자가 혼자 산다는 것은 여자에게 경제적 능력이 있다는 증거였다. 안정된 경제력은 그들 사이에 중산층 특유의 연대감을 형성했다. 그녀가 살던 곳에서 독신은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꾸려가기 위한 방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파트가 아니라 다세대 주택지였다. 자기 집을 소유한 중산층에서부터 반지하 세입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두루 거주하고 있었다. 집주인이 제각각인 연립주택과 달리 다세대 주택의 집주인은 보통 꼭대기 층인 3층을 오롯 차지하고, 그 아래층을 남에게 빌려주는데 보통 한 개 층에 두 가구 이상 들어가 살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임대료가 낮아지면서 삶의 등급까지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반지하 생활자는 정식 세입자라기보다 건물의 잉여분을 메우는 존재였다.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최하층민인 셈이었다. 그런 반지하에 더구나 여자가 혼자 산다고 하면, 누가 봐도 그 여자는 정상적인 삶을 향유할 능력조차 없는 낙오자로 인식되는 것이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지 않는다. 무시할 뿐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다. 틈만 나면 멸시하려 든다. 뭐라도 밟고 있지 않으면 자기가 바닥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어서일까. 1층 여자가 그녀를 깔보려 안달이 났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자타공인 최하층민인 그녀를 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들과 어떻게 해야 잘 지낼 수 있을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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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1969년 경기 부천 출생.
· 인천대 국문학과, 한신대 문예창작 대학원 졸업.
· 2010년 전남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발표한 소설로 <예술가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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