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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서 배운 간이식, 이젠 그들이 ‘한 수’ 배우러 온다

중앙선데이 2016.09.18 01:21 497호 8면 지면보기

서경석 교수가 수술실에서 박성미 간호사와 모니터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빈 기자



지난 5월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세계간이식학회가 열렸다. 회의장에 간이식 수술이 생중계됐다. 라이브 서저리(live surgery)였다. 회의장 앞 대형 화면으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수술실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집도의는 서경석(56)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 이 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이기도 하다. 간경화 말기 환자 김모(53)씨에게 부인(51)의 간 일부를 잘라 이식했다. 회의장을 가득 메운 300여 명의 외국 의사는 탄성을 자아냈다.


‘의료 한류’ 이끄는 서경석 서울대 교수

공여자의 배를 가르지 않고 내시경(복강경) 기법으로 간을 잘라 꺼내는 걸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프랑스 보종병원 외과 의사 올리비에 수브란은 “복강경으로 저렇게 섬세하고 빠르게 수술하다니 마술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종전에는 공여자의 간을 절개하기 위해 벤츠 엠블럼 모양(왼쪽)의 개복수술을 했으나 요즘는 작은 구멍 서너 개를 뚫어 복강경 수술(오른쪽)을 하고 아랫배 절개면으로 간을 빼낸다. 흉터는 팬티 안에 숨겨진다.



복강경 간이식은 세계에서 서 교수를 따라올 의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에 지름 1~2㎝ 크기의 구멍 두세 개, 0.5㎝ 크기의 구멍 한 개를 뚫고 공기를 채운 뒤 초음파 절삭기·집게·카메라 등을 넣어 간을 잘라 빼내는 수술법이다. 종전까지 ‘개복(開腹)+복강경’ 하이브리드(혼합) 기법을 썼으나 지난해 8월 열쇠 구멍(key hole) 기법으로 진화했다. 하이브리드 기법 이전에는 승용차 벤츠 엠블럼 모양처럼 공여자의 배를 갈라 간을 떼냈다. 간이식 수술기법은 벤츠 엠블럼하이브리드키홀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서 교수는 간이식 수술의 90%를 키홀 방식의 복강경 수술법을 사용한다. 다른 병원은 복강경 수술을 많이 하지 않는다.



키홀 기법을 활용하면 공여자 배에 흉터가 거의 남지 않는다. 작은 구멍 서너 개가 아물면 흔적을 찾기 어렵다. 가로 10~11㎝로 아랫배를 절개해 그 틈으로 간을 꺼낸다. 흉터는 속옷(팬티)으로 가려진다. 과거 벤츠 엠블럼 방식으로 수술하면 커다란 흉터가 배에 남았다. 하이브리드 기법은 흉터 크기를 줄이긴 하지만 그래도 선명하게 남는다. 서 교수는 “대부분 젊은 자녀가 부모에게 간을 제공한다. 젊은이들의 배에 큰 상처가 있는 걸 보면 가슴이 아팠다. 특히 딸일 경우 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키홀 기법으로 수술하면 비키니 수영복을 입어도 문제가 없다. 몸에 칼집을 적게 내니 수술 후 회복도 훨씬 빠르다. 복강경 기법은 개복 수술보다 평균 한 시간 이상 더 걸린다. 그런데도 젊은 공여자의 삶의 질을 생각해 이 기법을 적극 활용한다.



서 교수의 이력을 보면 ‘세계 최초’ 또는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88년 국내 최초 간이식에 참여했고 98년에는 국내 최초 뇌사자 분할 간이식에 성공했다. 99년 생체 간이식을 시작한 뒤 2001년 국내 최초 부분 간이식을, 2007년 세계 최초 복강경 공여자 간 절제술을, 이듬해에는 국내 최연소(생후 60일) 영아 간이식을 성공했다. 2008년엔 국내 최초 심장사(心臟死)한 환자의 간이식에 성공했다.



이런 실력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서 교수한테 ‘한 수’ 배우려는 외국 의사들이 줄을 잇는다. 2011년 일본 도쿄대 의대 쇼조 모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8개국 65명이 다녀갔다. 인도·카자흐스탄·조지아·네팔 등 개도국뿐만 아니라 미국·일본·캐나다·호주 등의 선진국에서도 찾는다. 1박2일 단기 코스에서 1년 장기 연수까지 다양하다. 5월 코엑스 라이브 서저리 이후 복강경 수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다음달에는 미국의 세계적 의료기관인 클리블랜드클리닉 의사가 2~3주 코스로 배우러 온다.



외국 환자들도 꾸준히 찾는다. 2010년 몽골 환자가 처음 찾은 뒤 그 나라에서만 12명이 수술받고 갔다. 2012년 러시아 환자가 수술을 받았고, 올해는 아랍에미리트(UAE)의 39세 딸이 58세 아버지에게 간 일부를 제공하는 수술을 했다. 이 환자의 수술비는 3억원에 달한다. 외국 환자의 수술비는 2억5000만~3억원이다.



수술 시스템을 수출하기도 한다. 다음달에는 미얀마 양곤병원에 가서 수술 노하우를 전수하고 기초 토대를 깔아 줄 예정이다. 카자흐스탄에도 이렇게 기술을 전수한 병원이 여럿 있다. 서 교수의 생체 간이식은 서울대병원 이광웅·이남준 교수뿐만 아니라 삼성서울병원 권준혁 교수, 국립암센터 김성훈 교수 등의 후학들에게 전수돼 여러 병원에서 적용하고 있다. 서 교수는 월 7~8건의 간이식 수술을 한다. 1000건이 넘는 생체 간이식 수술을 했는데도 ‘수혈 사고’ 한 번 없었다. 수술 중 수혈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 교수는 88년 은사인 김수태 교수의 간이식 수술에 처음 참여했고, 90년 미국 피츠버그대에 가서 배웠다. 당시 세계 각지에서 그 병원으로 몰려왔다. 하도 사람이 많아 어떨 때는 하루 종일 체외순환기(수술하는 동안 간 역할을 하는 기계)를 돌리는 일만 했다. 서 교수는 “앞 사람이 가려서 발판을 놓고 봤는데 한번 내려오면 자리를 뺏기기 때문에 12시간 동안 꼼짝도 안 하고 본 적이 있다”고 회상한다. 97년에는 일본 교토대에서 한 달을 배웠다. 그때만 해도 교토대가 최고였다. 개 실험을 하고 미국과 일본에서 배운 걸 바탕으로 99년 생체 간이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16년이 흐른 지금, 서 교수가 한 수 배워 온 미국과 일본이 이제는 서 교수한테 배우러 몰려오고 있다. 미국의 텍사스대 의대·미시간대·위스콘신대 의대, 일본의 교토대·구마모토대 등에서 다녀갔다. 한국이 얼마나 우수한지 서 교수한테 물었다.



-왜 세계에서 한국을 찾아올까요. “생체 간이식은 뇌사자 간이식에 비해 훨씬 어렵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잘 못해요. 거기는 뇌사자 이식이 증가하면서 생체 간이식은 줄고 있어요. 프랑스는 거의 사라졌고 미국은 줄고 있습니다. 한국은 간암이 많아 간을 자를 기회가 많습니다. 뇌사자도 생체 간이식도 동시에 증가하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한국이 수술을 많이 하나요. “복강경 간이식을 비롯한 간이식 수술은 한국을 따라올 데가 없어요. 한국인의 젓가락 기술이 우수하다고 하잖아요. 인구 대비 생체 간이식 수술건수가 세계 1위, 뇌사자 간이식은 중간쯤 될 겁니다. 둘을 합하면 세계 2위로 볼 수 있습니다.”



-왜 외과 의사, 특히 간이식 전문의를 택했나요. “죽음의 문턱에 있던 사람이 건강하게 되는 드라마틱한 수술이 간이식입니다. 의사로서 뿌듯한 게 있습니다. 이런 걸 본 레지던트(전공의)들이 전문의를 딴 뒤 세부 전공으로 간이식 분야를 지원하는 거 같습니다. 연 400~500건의 뇌사자 간이식이 밤에 이뤄집니다. 밤새 수술하고 힘들지만 생명을 살리는 게 ‘외과 정신’입니다. 이식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서 교수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다. 지난해 1월 27인치 모니터의 아이맥 컴퓨터를 연구실에 들이면서 아이패드·아이폰으로 갈아탔다. 고생은 했지만 아이맥으로 선명하게 의료자료를 보는 장점이 있다. 복강경 수술을 배운 것도 얼리어답터의 한 단면이다. 주변에서 “나이가 몇인데 하던 거나 하고 후배들한테 시키지”라고 말렸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취미”라고 말한다. ‘창의적 수술기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2년 전 공여자의 간 오른쪽 3분의 2를 떼면 남는 게 얼마 안 돼 이식이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왼쪽 3분의 2를 자르는 수술을 시도해 보란 듯이 성공했다.

5년 전 간이식 수술을 받은 20대 여성 환자가 그린 서 교수의 캐리커처.



서 교수는 지난주 스케치 캐리커처를 선물로 받았다. 5년 전 급성간염에 걸려 오빠의 간을 이식받고 건강하게 살고 있는 20대 여학생이 그린 그림이다. 또 다른 기쁨은 2명의 이식 환자가 아이를 무사히 출산한 점이다. 면역억제제 때문에 다른 약을 중단해야 하고 거부반응이나 간기능 악화 등을 계속 주시해야 해 출산이 흔하지 않다. 34세 엄마 환자는 외래진료 때마다 감사인사를 잊지 않는다. 100일 사진, 가족 사진 등을 보낸다고 한다.



서 교수는 모니터에 비친 간의 내부를 보면서 복강경 초음파 절삭기나 집게 등을 조정하면서 간을 자른다. 3D 안경을 끼고 수술한다. 초음파 절삭기로 간을 자르고 혈관을 쪼개고 지진다. 혈관이 모자라면 잇고 인조혈관을 사용한다. 수많은 혈관을 하나하나 잘 자르는 게 관건이다. 자른 간을 비닐백에 담아 아랫배 절개면으로 빼내서 수혜자의 몸에 넣어 정맥과 문맥(장에서 간으로 오는 혈관)을 잇는다. 여기까지 평균 4~5시간이 걸린다. 다른 의사가 수혜자에게 붙이는 것까지 완료하는 데 12시간 정도 걸린다. 오후 2시 넘어 늦은 점심을 먹는다.



서울대병원은 88년 이후 1787건의 간이식 수술을 했고, 이 중 1230건이 생체 간이식이다.



 



◆생체 간이식 수술 ?간 이식은 공여자 간의 오른쪽 부위 3분의 2를 잘라 환자에게 붙인다. 서 교수 표현에 따르면 간이 깨지면 갑자기 재생 본능이 생겨 재생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다. 일주일 후 두 배로 자라고 그 이후 서서히 커져 넉 달이 되면 공여자의 간이 정상으로 돌아간다. 간이식 수술은 최소한 이식 전문의 3명이 달라붙는다. 서 교수가 복강경으로 공여자의 간을 잘라내는 사이 다른 교수가 환자의 망가진 간을 제거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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