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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텍필립 시계, 에르메스 핸드백'… 뇌물의 진화

중앙일보 2016.09.18 00:01
‘파텍필립 시계, 에르메스 핸드백….’

대형 로비사건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명품’이 대우조선해양 비리 사건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대우조선이 남상태(66ㆍ구속기소) 전 사장의 재임 시기를 중심으로 회사 측이 파텍필립 시계를 다수 구입한 것을 확인하고 행방을 추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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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월드 2016`서 선보인 시계 트렌드. 30일과 31일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파텍 필립 `애뉴얼 캘린더`. [사진제공=파텍 필립]

1851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파텍필립은 대표적인 최고급 시계 제조사다. 제품 가격도 2000만원 이상이다. 대우조선은 남 전 사장 재임 시절 파텍필립 시계를 ‘영업용’으로 쓰겠다면서 5~6개나 구입했다고 한다. 검찰은 남 전 사장이 이를 연임 로비 용도로 썼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소재를 추적 중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 ‘연임 로비’를 해주겠다면서 접근한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박수환(58) 대표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박 대표는 남 전 사장의 연임 로비를 해주겠다고 제안하고 나서 대우조선으로부터 2009∼2011년 홍보대행비 및 자문료 등 명목으로 21억 3400만원을 챙긴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구속기소됐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박 대표의 ‘명품 핸드백 로비’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다. 홍보업계에서는 박 대표가 에르메스 등 고가 핸드백을 사회 고위층 인사 부인들에게 자주 선물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실제로 검찰은 박 대표가 에르메스 핸드백을 비롯해 각종 명품 가방을 무더기로 구입한 정황을 포착, 사용처를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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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한 명이 가장 기본적인 켈리백을 만드는 데 18시간이 걸린다. [사진제공=에르메스]

이처럼 시계나 핸드백 등 고가의 명품 제품이 로비의 소재로 등장한 사례는 많다.

지난 2006년 전군표 전 국세청장은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식사를 하고 나서 3500만원짜리 프랭크뮬러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근래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59) 전 의원 비리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 분양대행업자에게서 시가 3120만원 짜리 해리 윈스턴 시계 1점을 받았다. 또 그의 아들은 3190만원 상당의 위블로 골드 시계 등 명품시계 7점, 부인은 루이뷔통 등 500만∼1000만원 상당의 명품 가방 2점을 받았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받은 뇌물은) 모두 되돌려줬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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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뷔통 스피디 30. [사진 제공=루이뷔통]

우리나라에서 패션 아이템이 로비 수단으로 부상한 것은 1999년 ‘옷 로비’ 의혹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사건은 외화 밀반출 혐의를 받던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 구명을 위해 김태정 검찰총장의 부인 연정희씨를 상대로 강남의 고급 의상실인 ‘라스포사’옷 로비를 벌였다는 소문이 보도되면서 불거졌다.

그동안 뇌물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1960년대 뇌물은 생필품이 전부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던 이기붕 당시 부통령 집에서 발견된 선물 목록에는 깨소금, 멧돼지 뒷다리, 쌀을 비롯해 칠면조 8마리 등 생필품이 주를 이뤘다.

1980~1990년대에는 뇌물로 금제 골프 퍼터나 골동품, 그림이 주로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뇌물은 은밀한 것’이란 인식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입고 걸치는 명품이 뇌물 사건에 수시로 등장해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예ㆍ체능계 입시비리 수사에서 모 여대 체육과 여교수 집에서 고급 양주 50여 병, 명품가방 80여 개 등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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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양주. [중앙포토]

뇌물은 뭐니뭐니 해도 ‘현찰’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현찰을 담는 상자도 계속 변화해 왔다.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현금이 전달되기 시작하면서 현금을 의심없이 전달하는 방법 중 가장 먼저 각광 받은 것이 사과상자다. 정치비자금 비리에도 사과상자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최돈웅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SK로부터 100억 원의 정치비자금을 사과상자를 통해 받았다. 이후 여행용 가방(4억~5억 원)과 골프 가방(1억~3억 원), 007가방, 복사용지 박스 등으로 뇌물을 담는 그릇은 진화를 거듭했다.

여기에다 2005년 한국마사회 비리사건에서는 안동 간고등어와 상주 곶감 등 지역 특산물 상자를 활용한 기상천외한 ‘뇌물용기’가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생필품에서 시작된 뇌물은 진화를 거듭해 요즘에는 최고급 와인과 호텔 숙박권 등도 동원되고 있다. 이어 최근엔 비리 혐의로 구속된 진경준 전 검사장과 김모 부장판사 등의 경우처럼 중고차량 등도 뇌물 용도로 등장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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