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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다시, 마약왕 사냥철이 돌아왔다

중앙일보 2016.09.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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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넷플릭스 제공]

‘나르코스’(Narcos)’. 스페인어로는 ‘마약상들’을 뜻하고 미국 마약단속국(DEA)에서는 ‘마약상을 추적하는 요원’을 의미하는 은어로 쓰이는 단어다. 드라마 ‘나르코스’는 콜롬비아의 전설적인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1949~1993)의 실화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넷플릭스 웹 시리즈 '나르코스' 시즌2 보고타 촬영장 탐방기

지난해 8월 시즌1을 처음 공개한 이 시리즈는, 9월 2일 열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두 번째 시즌을 공개하며 콜롬비아의 충격적인 근대사를 관통하는 방대한 스토리를 매듭지었다. 지난 5월, magazine M은 시즌2 촬영이 한창인 콜롬비아 보고타의 ‘나르코스’ 촬영장에 방문해 안드레스 바이즈 감독과 세 주연 배우들을 미리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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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넷플릭스 제공]

지난 5월 초, 넷플릭스는 세계 각국의 기자 20여 명을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로 초대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꼬박 20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보고타는 넓고 푸른 고원으로 둘러싸인, 평화롭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시민들의 표정은 밝았지만, 중화기로 무장한 경찰들을 지나칠 때면 ‘마약과의 전쟁’으로 얼룩졌던 콜롬비아 근대사의 이면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르코스’는 1980년대 초, 전 세계 마약 유통의 80%를 지배했던 콜롬비아 마약 조직 두목 파블로 에스코바르(바그네르 모라)를 조명한 드라마다. 에스코바르의 삶을 중심으로, 그를 추적했던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 스티브 머피(보이드 홀브룩)와 하비에르 페냐(페드로 파스칼)의 이야기 그리고 1980~1990년대 콜롬비아 사회에서 벌어진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다룬다.

마이애미를 비롯한 미국 남부 지역에 대량의 마약을 공급하며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던 에스코바르는, 자신의 계획을 저지하려는 이들을 잔혹하게 암살한 범죄자였다.

그와 동시에 아내와 자식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헌신적인 가장이요, 자신의 고향 도시 메데인의 빈민층에게 무상으로 주택과 일자리를 제공해 ‘빈민가의 로빈 후드’라 불린 영웅이기도 했다. 그가 죽은 지 23년이 되는 올해, 에스코바르의 삶은 조국인 콜롬비아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대와 인물의 ‘복잡성’을 탐구하다

시즌2 총괄 프로듀서이자 에피소드 네 편을 연출한 안드레스 바이즈 감독은 ‘나르코스’ 제작진 중 유일한 콜롬비아인이다. 그는 “에스코바르에 대한 콜롬비아인의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며 “‘나르코스’의 매력은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현실 세계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것”이라 밝혔다.

에스코바르를 연기한 바그네르 모라는 “최고의 캐릭터는 종종 모순적”이라고 운을 뗐다. “다른 마약상들과 달리, 에스코바르에게는 ‘콜롬비아를 좀 더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목표와 열정이 있었다.

마약 사업에 손대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됐을지도 모르는 인물이다. 이러한 그의 양면성을 연기하는 것이 정말 흥미로웠다.” 마약단속국 요원 머피 역을 맡은 보이드 홀브룩은 이렇게 반문했다. “만약 당신이 지붕도 없는 집에 산다고 하자. 어느 날 누군가 당신에게 새 집을 지어 준다면, 당신도 그 사람을 ‘영웅’이라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나르코스’는 머피의 내레이션을 통해 당시 혼란스러웠던 콜롬비아 사회상을 요약하여 보여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에스코바르라는 일개 범죄자가 어떻게 콜롬비아를 넘어 미국에 악명을 떨칠 수 있었는지’ 면밀하게 짚는다.

페냐를 연기한 페드로 파스칼은 ‘나르코스’를 “개인과 집단의 어두운 면을 들추는 드라마”라 설명한다. 에스코바르라는 개인에 대한 탐구뿐 아니라 그를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머피와 페냐의 도덕적 갈등, 콜롬비아 정부의 딜레마, 미국 정부의 비정한 태도 등을 깊고 폭넓게 다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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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넷플릭스 제공]

마약왕의 장엄한 몰락을 그릴 시즌2

‘나르코스’ 시즌1의 마지막 장면. 미국의 범죄자 인도 조약에 불응하고자, 에스코바르는 자신이 건설한 초호화 감옥 라 카테드랄(La Catedral)에 스스로 갇힌다. 콜롬비아 정부는 그를 미국으로 인도하려 하고, 이러한 속셈을 알아챈 에스코바르는 라 카테드랄을 탈출한다.

시즌2에서는 탈옥 이후부터 그가 1993년 사망하기까지, 약 1년 6개월간의 도피 생활을 다룬다. 시즌1에서 에스코바르가 초보 밀수꾼이었던 1977년부터 무소불위의 마약왕으로 우뚝 선 1992년까지, 15년간의 세월을 그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바이즈 감독은 “시즌1이 에스코바르의 전성기를 다뤘다면, 시즌2는 그의 몰락에 집중한다”고 설명한다.

탈옥한 에스코바르는 정부가 내건 현상금뿐 아니라 미국 CIA, 카리요 대령(모리스 콤프테)이 이끄는 콜롬비아 특수 부대, 라이벌 마약 조직과 극우파가 조직한 자경단체 로스 페페스 등 다양한 적들에 쫓긴다. 그럼에도 에스코바르는 최후의 순간까지 보복과 투쟁을 이어 간다.

‘에스코바르’라는 거울에 비친 콜롬비아

‘나르코스’는 궁극적으로 콜롬비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제 에스코바르는 1982년 자유당 예비 국회의원에 선출됐지만, 그가 마약상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나르코스’는 ‘콜롬비아를 변화시키겠다’는 포부를 품었던 에스코바르가 절망을 겪고 처절하게 복수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 낸다. 바이즈 감독은 말한다. “불가능한 꿈을 현실로 이루려 했던 그의 비극적인 열망에 시청자들이 공감한 것 같다.”

‘나르코스’ 시즌1은 콜롬비아 내에서 이미 큰 인기를 거뒀다. 모라는 “콜롬비아인에게 ‘나르코스’는 자신들의 역사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고 말했다. 파스칼은 “아마 이 시리즈의 진정한 주인공은 콜롬비아 그 자체”라며 “만약 콜롬비아에서 ‘나르코스’를 촬영하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성공은 거두지 못했을 것”이라 덧붙였다.

바이즈 감독의 감회는 조금 남다르다. “‘나르코스’는 ‘코카인의 나라’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콜롬비아의 근대사를 역동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콜롬비아인이 겪어 온 고통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신은 콜롬비아를 너무 아름답게 만들었기에, 대신 이 땅에 악한 사람들을 주셨죠.” 시즌1에서 에스코바르의 암살 시도를 모면한 세사르 가비리아(라울 멘데즈) 대통령은 “마약범들을 미국으로 인도하겠다”고 밝히는 기자 회견에서 이처럼 말한다.

이것은 어두웠던 근대사를 거쳐 온 콜롬비아인이 스스로 던질 법한 애잔한 위로의 말이기도 하다. ‘나르코스’는 우리가 보지도, 잘 알지도 못했던 콜롬비아로 당신을 초대한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라는, 끔찍하되 화려한 낙인을 통해서.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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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코바르는 20대 중반이던 1975년 마약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마약왕에 등극한 것은, 보고타 북서쪽의 도시 메데인을 거점으로 라이벌 마약 두목들과 연합한 조직 ‘메데인 카르텔’을 만들면서부터다.

1982년 메데인 카르텔은 하루 6000만 달러(약 670억원)를 벌어들이는 대형 마약 조직으로 성장했다. 2년 후 에스코바르는 서른다섯 살에 ‘포브스’가 뽑은 전 세계 부자 7위에 이름을 올렸다.

개인 축구팀을 소유했고, 세계 각지에서 수입한 동물들로 개인 동물원을 만들기도 했다. 얼마나 돈이 많았는지, ‘매년 창고에 보관했던 현금의 10%를 쥐가 갉아먹어 없어졌다’는 소문도 있다. 콜롬비아 정부가 범죄자 인도 조약을 철회할 경우, 국채를 갚아 주겠다고 나선 일화는 꽤 유명하다.

에스코바르의 사업 철학(?)은 분명했다. 그는 ‘은 아니면 납(Plata o Plomo)’이라는 원칙을 세웠는데, ‘뇌물(은)을 받지 않으면 총알(납)로 응징하겠다’는 의미다. 부패한 콜롬비아 정치인과 군인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뇌물이 통하지 않는 정치인과 법조인, 기자와 경찰 등은 암살자를 보내 잔혹하게 살해했다.

범죄인 인도 조약에 찬성했던 대통령 후보 세 명을 살해했고, 콜롬비아 행정보안국(DAS), 그의 만행을 고발한 언론사 ‘엘에스타도르’ 건물을 폭파하기도 했다. 콜롬비아 법무부 청사를 습격해 인질들을 살해하고 범행 증거를 소각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마약상과의 전쟁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선 후보 세사르 가비리아를 암살하기 위해, 1989년 콜롬비아 최악의 항공기 사고인 ‘아비앙카항공 203편 폭탄 테러’까지 저지른다. 그가 죽인 사람은 5000명 정도로 추정되지만, 메데인 지역의 일부 주민들은 여전히 그를 ‘국민 영웅’으로 추앙한다. 라 카테드랄을 탈출한 그는 메데인 주민들의 도움으로 도피 생활을 이어 간다.

그러다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발각돼, 1993년 12월 미국·콜롬비아 특수부대의 체포 작전으로 옥상에서 사살됐다. 그의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졌다. ‘미국의 감옥보다 콜롬비아의 무덤이 더 좋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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