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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나는 살해당했다 #6

중앙일보 2016.09.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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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는 호텔을 빠져나오자마자 화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새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상당한 헤비 스모커인 거 같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도화가 야릇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며 담배 연기를 훅 내뿜었다.
 
“뭐야, 당신.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아니꼽게 생각하는 그런 부류였어? 이제 보니 은근 꼰대였구나.”

 
나는 황망히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보다 이렇게 빨리 다시 찾아올 줄은 몰랐네? 그새 나한테 푹 빠진 거야? 그 잠깐도 못 참을 만큼?”
 
도화가 킥킥거리며 짓궂게 웃었다.
나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멍청히 도화를 쳐다봤다.
 
“정말 농담도 못하겠네. 하긴 망자를 상대로 농담을 해봐야 무슨 의미겠어. 정말로 무슨 일이야? 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건 아닌 듯하고. 뭔가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희미하지만 그다지 달갑지 않은 기척도 느껴지는데? 뭐야?”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도화를 찾아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것만으로도 내 의사가 도화에게 명확히 전해졌다.
 
“흐음.”
 
도화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필터만 남은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그러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슬쩍 물러섰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최 상사, 그 심술쟁이 영감을 만난 모양이네.”
 
최 상사? 그 영감을 그렇게 부르나. 그러고 보니 군복을 걸치고 있었던 거 같다. 계급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최 영감이라. 묘하네. 역시, 당신은 여느 망자랑은 다른 거 같아. 그 영감이 노리는 걸 보면 뭔가 있긴 하네. 혹시 당신을 상문(喪門)으로 여기는 건가?”
 

상문? 그건 또 뭐지? 처음 만날 때부터 그랬지만 도화가 내뱉는 말들은 정말이지 모르는 것들뿐이다.
도화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참, 하나에서 열까지 다 가르치게 만드네. 그거 알아? 당신 정말로 피곤한 망자야. 상문이라는 건 말이야, 보통 죽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넋을 말해. 그런 맥락에서 보면 당신도 상문으로 볼 수 있지만, 통상 상문은 무가에서는 잡귀나 악귀로 취급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넋을 전부 싸잡아서 상문으로 보진 않아. 대체로 연고가 없어서 장례도 못 치르고 제삿밥도 못 얻어먹는 영가들을 가리키는 말이지.”

 
나는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상문이 왜 잡귀나 악귀로 취급되는지 알아?”
 
도화가 도전적인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알 리가 있나.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지. 알 리가 없지. 잘 봐.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망자일수록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한 법이야. 자기가 죽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암튼 그 집착이 심해지면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질투와 시기로 바뀌어. 그래서 종종 해코지를 할 때도 많아. 상대적으로 유약한 노인이나 아이들을 건드려서 아프게 한다든가. 하여간에 성질이 더러워. 이것들은 종종 떼로 몰려다니면서 상갓집을 전전하기도 해. 그냥 뭐 그지들이지.”
 
도화가 독설을 날리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최 상사말이야. 그 영감이 상문 잡이가 전문이거든. 성격은 좀 지랄 맞지만 허투루 아무 망자나 막 잡아들이진 않아. 그래서 재미있다고 한 거야, 당신.”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도화의 말에 따르면 그 무시무시한 영감은 나를 악귀로 여기고 잡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 나는 소멸되어야 하는 삿된 존재인 건가. 누구에게도 해코지를 하지 않았는데?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어 울화가 치밀었다. 길을 가다가 이유 없이 뺨을 맞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장담하지 마, 그건.”
 
도화가 툭 내뱉었다.
무슨 말이지, 그건? 뭘 장담하지 말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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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기억이 없다며. 어떻게 죽었는지 전혀 모르겠다면서?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했다면 둘 중 하나 아니겠어. 원한을 샀거나, 정말 억울하게 죽었거나. 솔직히 어느 쪽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잖아? 이거 생각 같아서는 접신(接神)해서 공수라도 받고 싶지만 오늘은 너무 무리해서 사양할래. 그리고 지나친 호기심은 건강에 해로운 법이고.”
 

내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도화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하여간 근래에 만난 망자 중에서 유별날 정도로 특이해, 당신은.”
 
그렇게 쏘아붙이더니 도화는 마치 용건이 다 끝났다는 듯 뒤도 안 돌아보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디를 가려고? 나는 당황해서 그녀를 따라나섰다.
도화가 걸음을 멈추더니 왜 따라오냐는 듯 나를 흘끗 쳐다봤다.
 
“어디를 가기는, 이 아저씨야. 집에 가야지. 설마 나보고 다시 그 호텔방으로 돌아가라는 건 아니지? 나도 집이 있는 사람이야.”
 
나는 머뭇거렸다. 사실 그녀를 왜 따라나섰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굳이 말하자면 길바닥에 버려지는 느낌.
 
“진짜 피곤한 망자네.”
 
도화는 삐딱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할 수 없지. 나도 참 맘이 너무 좋아서 탈이라니까. 오늘은 우리 집에서 보내. 내일은, 뭐 내일 생각해보고. 그렇게 싸돌아다니다가 괜히 민폐를 끼칠 수도 있고. 아니면 막음쟁이나 최 영감 같은 부류들을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신 말이야, 왠지 자꾸 나를 궁금하게 만들어. 뭐해? 빨리 따라와.”
 
도화는 상암동에 있는 복층형 오피스텔에 홀로 살았다. 나는 왠지 그녀가 고풍스러운 한옥에서 살 거 예상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무래도 그녀가 무녀여서 어느 정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다.
도화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귀찮다는 듯 핸드백을 아무 데나 던지고는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인데 쓸데없이 기웃거리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 특히 무구 같은 건 함부로 건드리지 말고. 그러다가 정말 훅 간다.”
 
그 말에 무심코 시선을 돌렸더니 화장대 옆에 가지런히 세워진 한 쌍의 구리칼이 보였다. 작은 협탁 위에는 방울이랑 동경이 놓여있었다.
 
“그래, 거기 있는 것들. 가까이 가지도 마. 안 그래도 그 영감 개들한테 물렸다며? 시간이 좀 지나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많이 약해진 상태일 거야.”
 

맞다. 그 영감이 데리고 있던 무시무시한 개들. 안 그래도 도화에게 묻고 싶었다. 어떻게 그 개들이 나를 물기도 하고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었는지를. 잘은 모르지만 결코 평범한 개들은 아닐 것이다.
 
“참 궁금한 것도 많아, 수업료도 안 내는 주제에. 그 개들, 살아있는 게 아니야. 진짜 개가 아니란 이야기지. 그 영감이 부리는 식(式)이야. 개의 혼령들이라고. 복잡한 이야기는 말해줘 봐야 당신은 이해를 못할 거고. 쉽게, 자석을 생각해 봐. 같은 극끼리는 서로 밀어내지? 그 개들도 그런 거야. 당신이랑 똑같은 형질이니까. 물 수도 있고, 물리적인 영향도 주는 거야. 대충 그렇게 이해하라고. 근데 그런 식신을 얻는 방법이 참 잔인해. 그래서 그 영감, 이 바닥에서 대접을 못 받아.”
 
도화는 거기까지 말하고 소파에서 일어섰다.
 
“특히 ‘인사동’에서 주시하고 있어. 주로 상문 잡이를 하고 다니기는 하지만, 때로 추잡한 일도 하거든. 간단히 말하면 그리 떳떳한 인간은 아니라는 거야. 하긴 뭐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없겠지만. 어쨌거나 나하고는 결이 안 맞아서 가급적 상종을 안 하는 편이야. 그 영감도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야. 아무래도 ‘인사동’에서 주시하고 있으니까, 엮여봐야 별로 좋을 게 없어.”

 
지금 얘기하는 인사동은 내가 아는 그 인사동을 말하는 건가? 종로 3가, 낙원상가와 안국역 사이를 잇는 그 전통 거리.
 
“아, ‘인사동’이 또 궁금하겠지? 그건 말이야. 일종의 경찰 같은 거야. 지킴이들. 나나 그 영감처럼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들을 감시하고 때로 벌을 주기도 하고. 그런데 그 본거지가 인사동에 있어서 그렇게 별칭처럼 불러. 아, 오늘 진짜 당신 때문에 말 너무 많이 한다. 몰라, 나 이제 쉴래.”
 

도화는 아까 승합차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가 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욕실에 들어갔다. 원래 천성적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내가 망자라서 의식할 필요가 없는 건지는 모르지만 너무 당연하듯 행동하니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도화가 샤워하는 동안 배려하는 차원에서 테라스로 나갔다. 멍하니 서서 늦은 시각에도 불빛이 사라지지 않는 야경을 바라보며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아내를 생각했다. 아내도 나를 걱정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어떻게 하면 아내에게 내 죽음을 알릴 수 있을까.
그리고 내 시신도 수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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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창작그룹 <화담>대표.    
소설가,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등
 
주요 출간작 >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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