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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검찰, ‘좌파 영웅’ 룰라 전 대통령 기소…남미 좌파벨트 붕괴 가속화

중앙일보 2016.09.15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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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으로 물러난 호세프(69ㆍ왼쪽) 전 대통령과 검찰 기소된 룰라 다시우바(71) 전 대통령. [중앙포토]


브라질 중도 좌파 정부를 8년 간 이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탄핵당한 후 브라질 좌파가 또다시 위기에 직면했다.
 
14일(현지시간)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연방검찰은 룰라 전 대통령에게 돈세탁ㆍ허위진술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고 밝혔다. 연방검찰은 룰라 전 대통령 외에 그의 부인 마리자 레치시아, 파울루 오카모토 ‘룰라 연구소’ 소장, 대형 건설업체 OAS 관계자 5명도 함께 기소했다.
 
룰라 전 대통령과 그 측근에 대한 기소는 2014년 3월부터 ‘라바 자투(Lava Jato; 세차용 고압 분사기)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돼온 사법 당국의 부패수사에 따른 조치다.
 
‘라바 자투’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에 장비를 납품하거나 정유소 건설 사업 등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뇌물이 오간 사건에 대한 연방검찰 차원의 대대적 조사다. 지금까지 이 수사를 통해 드러난 뇌물은 6500만 헤알(약 220억 원)이다. 뇌물 가운데 일부는 돈세탁을 거쳐 주요 정당에 흘러든 것으로 파악됐다.
 
연방검찰이 룰라 전 대통령에게 부패 혐의를 직접 적용해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부패 스캔들에서 룰라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 대가로 OAS로부터 편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앞서 연방경찰은 룰라 부부가 상파울루 주 과루자 시에 있는 복층 아파트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사문서위조·돈세탁 등 혐의가 포착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연방경찰 관계자는 “룰라 부부가 OAS로부터 불법적인 혜택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으나 룰라 측은 아파트 취득과 관련해 어떠한 위법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룰라가 부패 혐의로 기소되면서 다음 달 실시될 브라질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이번 지방선거는 탄핵정국을 거쳐 좌파정권에서 우파정권으로 세력이 교체되고 난 뒤 치러지는 첫 번째 선거다. 미셰우 테메르 신임 대통령 정부에 대한 평가이자 2018년 대선과 총선을 앞둔 전초전 양상도 띠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탄핵으로 위기에 몰린 좌파 노동자당(PT)은 룰라는 앞세워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그렇지만 최대 격전지 상파울루 시장 선거에서 노동자당 소속 현직 시장의 재선이 어려울 것으로 점쳐지는 등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호세프의 퇴진, 룰라의 기소로 인해 2000년대 초반 남미를 물들였던 ‘핑크 타이드’(Pink Tideㆍ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 시대가 끝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1999년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의 전 대통령의 당선을 시작으로 브라질(2002년), 아르헨티나(2003년), 우루과이(2004년), 칠레ㆍ볼리비아(2006년) 등에서 좌파가 줄줄이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불어닥친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과 과도한 복지 재정 지출 등으로 경제위기가 불거졌다. 여기에 장기 집권에 따른 부패 스캔들은 좌파국가 국민에게 피로감을 안겨줬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친(親) 기업 성향의 우파 정치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해 12년간 지속된 ‘좌파 부부 대통령’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어 12월에 치러진 베네수엘라 총선에서는 중도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야권 연대 민주연합회의(MUD)가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해 17년 만에 처음으로 집권 통합사회주의당(PSUV)에 압승을 거뒀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남미 대륙 12개국 가운데 콜롬비아와 파라과이를 뺀 10개국이 좌파정권이었지만, 불과 1년여 만에 아르헨티나ㆍ브라질 정권이 우파로 교체됐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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