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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10월호] “국민은 사람 중심의 차별 없는 나라를 꿈꾼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6.09.15 00:01
지난 2월 22일, 대구시 산격동 시대를 마감하고 안동시 풍천면에 새 둥지를 튼 경북도청이 9월 8일로 이전 200일을 맞았다.

2017년 대선출마 주목받는 김관용 경북도지사
● 내년 대선에 대구·경북 대표할 새 인물 나와야
● 최초 6선 지자체장으로 야전에서 검증 두루 거쳤다
● 새누리당, 국민이 됐다고 할 때까지 용서 구해야
● 헌법에 대한민국은 지방 분권형 국가임을 명시하자

경북도는 대구시가 직할시로 분리돼 나간 1981년 이후 35년 동안 도청사를 대구에 뒀었다. 도청의 경북 이전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됐으나 유치를 희망하는 각 시·군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쉽사리 논의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2006년 경상북도
지사 선거에 처음 나서면서 도청이전 공약을 내건 후 뚝심 있게 추진한 결과 마침내 재임 중에 경북도청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았다.

경북도는 최근 들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영남권 신공항 문제 등으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지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영남권 신공항은 결국 김해공항의 확장으로 대체됐다. 이어 경북 성주시 성산포대가 사드배치 지역으로 결정되면서 경북 도민들은 중앙정부를 향해 불같이 화를 냈다.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김 도지사에게 사태 수습의 책무가 주어졌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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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청 신청사에 민족의 문화와 얼을 담고자 했다는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현동 기자.

“경북도청 신청사는 세계가 주목하는 관광명소”

김 지사는 국내 유일의 현직 6선(選) 지방자치단체장이다. 구미시장을 세 번 연임한 그는 경북지사도 3연임 중이다. 지자체장의 연임을 3회로 제한하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더 이상 경북도지사 직에 도전할 수 없다. 그래서 경북도청의 이전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사드 제 3후보지 선정, 영남권 신공항 후속대책 등에서 보여줄 리더십에도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지방정치’의 상징인 그가 내년 대통령선거에 직접 뛰어들거나 모종의 역할을 하리라는 얘기도 나돈다. 9월 7일 오후 안동시 풍천면 경북도청 집무실에서 <월간중앙>과 만난 김 지사는 그런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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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용 지사는 분권형 개헌을 통해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실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현동 기자.

새누리당은 대선주자 흥행몰이가 어렵다. 4월 총선을 거치면서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이 민심의 ‘불길’에 많이 그을렸기 때문이다. 산불이 나면 불에 타지 않은 소나무도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새로운 주자를 발굴해야 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경북도청이 이전된 지 6개월이 지났다. 감회가 새롭겠다.
“2006년 경북도지사에 처음 출마할 당시 도청이전을 공약했다. 오랜 도민의 염원이었으므로 사심 없이 결정했다. 하지만 주변에선 모두 말렸던 일이다. 경북도의 각 지역 간에 유치 경쟁이 심했기 때문이다. 차기 선거에 나가려면 도청 이전을 아예 거론하지 말라는 권유도 많았다. 도청이 빠져 나가면 대구시와의 관계 등 정치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막상 해놓고 나서는 어떤 평가를 받았나?
“경북의 새 미래를 위해 결단을 잘 내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새로운 명소로 우뚝 섰다. 도청은 도민의 품으로 가는 게 맞다. 도민들도 현명했다. 도청 후보지 경쟁에서 탈락한 지역에서 내게 더 많은 표를 줬었다. 도지사가 소신껏 행정에 임했으니 지지를 보낸 것이다. 민심은 역시 천심이다.”

경북도 신청사는 특이하게도 한옥 형태로 건립됐다. 전통 건축물의 비례와 균형, 웅장한 자태 등 볼거리를 제공한다. 담장이 없는 청사, 81m 길이의 회랑(지붕이 있는 긴 복도), 민원인들 쉬어가는 북카페 등이 눈길을 끈다. 청사 안에 전시 된 박대성 작가의 대형 수묵화 <불국사 전경>(7.2m×2.1m)과 장순각 작가의 <선비의 붓>(높이 17.5m, 무게 2.5t) 같은 예술품도 방문객의 발걸음을 머물게 한다.
 
신청사를 지으면서 어떤 콘셉트를 담으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경북도 신청사 건립은 단순한 청사 이전(移轉)의 의미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이는 역사적 사건이다. 감히 말하건대 앞으로 다시는 이런 청사를 짓지 못할 것이다. 경북도청 신청사는 도민들의 마음의 고향, 역사의 현장과도 같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탈렙 라파이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사무총장이 다녀가는 등 세계가 주목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지난해 8월에 <월간중앙>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강조했지만 경상북도는 찬란한 신라 천 년의 불교문화와 신비의 가야문화, 선비정신의 유교문화 등 민족 문화의 본산지다. 경북도 신청사에 우리가 가진 이런 문화와 정체성, 성과를 구현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였다.”

“삼국유사 목판본 복원은 자주성의 고취”
 
도청 이전을 통해 ‘한반도 허리경제권’을 형성한다는 구상을 들었다.
“행정수도는 서울에서 세종시로, 경북도청은 대구에서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 신도시 일대로 옮겼다. (행정수도와 경북도청 신도시가) 북위 36도에서 만나 동서발전축을 형성하게 됐다. 신청사는 남부권과 수도권을 이어주고 세종시와 동서로 관통하는 교통망으로 연결된다. 국토를 밭전(田)자 모양으로 연결하는 청사진인 셈이다. 한반도 허리경제권의 핵심 사업으로 세종시와 도청 신도시 107㎞ 구간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을 들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고자 중부권 7개 시·도가 참여하는 정책협의체를 지난 6월에 출범시켰다. 경북도를 비롯해 대전, 세종, 충남·북, 강원, 전북이 참여한다.”

경북도 신청사를 찾는 방문객은 엄청난 규모에 놀라고, 청사 곳곳에 나부끼는 태극기의 물결에 어안이 벙벙하다. 태극기 형상을 한 수백 개의 팔랑개비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된데다, 청사 전면에는 외벽을 거의 다 뒤엎을 정도로 큰 태극기가 현수막처럼 내걸려 있다. 청사 이전과 설계를 이끌었을 김지사의 국가관과 역사관을 말해주는 듯하다. 신청사 1층 현관을 지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2층에 내걸린 대형 현액이 눈에 들어온다. ‘경북은 한국 정신의 窓’이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김 지사는 “대한민국은 수백 번의 외침을 당하고서도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를 굳건히 지켜왔다”면서 “그 정신을 신청사에 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할 사업도 경북도가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삼국유사>의 목판본을 복각하는 사업을 한다고 들었다.
“민족혼을 일깨우고 대한민국의 격을 높인다는 각오로 임하는 사업이 여럿이다. 삼국유사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닌 민족의식의 원형이자 자주적 사관의 곳간과도 같다. 삼국유사의 목판 원형은 소실된 지 오래고 지금은 인쇄본만 전해질 뿐이다. 그 인쇄본을 토대로 목판 원형을 복각하자는 것이다. 또 천년왕국 신라는 민족사의 근간이자 전통문화의 뿌리이기도 하다. 종합적으로 정리한 사료가 없더라. 2011년부터 전공자 136명이 집필진으로 참여하는 신라사 편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족의 긍지를 바로 세우는 역사적인 작업이 거의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내년엔 경주가 아닌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다고 하던데 어떤 취지의 사업인가?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문화 브랜드로 정착케 하는 작업이다. 해외 개최는 200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2013년 터키 이스탄불 이래 내년이 세 번째다. 이 사업은 경북도의 또 다른 회심작인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연결된다. 고대 동서양 문물이 오갔던 실크로드를 통해 우리 선조들은 서역인과 교류했을 것이다. 이 루트에서 우리 민족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게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목표다. 내년 호찌민시의 경주세계문화엑스포도 이 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기획한 것이다.”
기대하는 효과는?
“기획공연, 전시, 학술행사 등 30여 개 문화행사가 현지에서 펼쳐진다. 베트남은 한국과 같은 유교 문화권인 데다 분단의 역사도 공유한다. 베트남 여성들이 행복을 일궈가는 다문화 가정이 5만9000가구에 이를 정도로 양국 관계는 긴밀하다. 베트남의 경제와 교통의 중심지인 호찌민시에 경주와 한국의 문화·역사·경제를 알리는 계기로 삼겠다. 지난해 12월에는 한·베트남FTA가 발효됐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현지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사업 여건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을 주는 경제엑스포로 추진할 예정이다.”
경북도는 원자력클러스터를 구축한다고 했는데 어떤 사업인가?
“국내 원전 24기 중 12기가 경북에 자리한다. 또 전국 유일의 방폐장이 경주에 있기에 원전 현장에서 안전과 연구, 산업을 동시에 도모하자는 게 바로 원자력클러스터 사업의 취지다. 13조5000억원이 투입되는 경북의 미래 성장동력 산업이기도 하다. 제2한국원자력연구원, 스마트 시범 원자로 등이 연구시설로 설립될 계획이며 원자력인력양성원, 원자력 관련 전문대학원 등 전문 인력양성 기관도 예정돼 있다. 원자력클러스터는 일자리 창출과 지역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보다 강력한 추진 의지가 요구되는 사업이다.”

“권한도, 재정도 주어지지 않는 불행한 지방자치”
 
사드 성주 배치 결정으로 지역 여론이 들끓었다. 대구·경북(TK)은 새누리당의 핵심 지지기반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국가 안보보다 더 크고 높은 가치는 없다. 사드는 명백하고 실존하는 북핵 위협에 대비하는 방어수단이지 않나. 반대론자들도 대안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사드 논란이 양면성을 가진다는 데 있다. 안보 가치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주민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도 지켜져야 한다. 주민에게도 생존권이 달린 문제니까 반대한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처지다. 나 자신도 굉장히 어려웠다. 나라가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에 나선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그런 일을 했을까라는 물음도 있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누구를 탓하겠나. 비단 성주뿐만 아니라 어디에 사드를 가져가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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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용 지사는 지난 5월 경북지사로는 처음으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사진제공·경북도.

사드 문제로 박 대통령이 전화를 주거나 하진 않았나?
“그 문제로 통화한 적은 없다. 현장을 지키는 도지사로서 국가 안보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다. 지사가 여기에 왜 왔느냐고 멱살잡이도 당했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앞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중앙정치에 생소하다는 것은 오히려 강점도 될 수 있다. 오히려 신선한 면이 있을 수 있고. 기존 정치구도, 구조에 염증을 느낀 이들에게는 새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건 국민이 결정할 일이다.”

그래도 사드배치 후보지 선정은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할 말이 있지 않나?
“국방부 등 실무진에서 사드배치 후보지에 사는 주민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게 바로 정무 기능인데 말이다. 하긴 사선을 넘나드는 군인들에게 정무적 기능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중앙정부도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은 힘들겠지만 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소통과 대화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지금은 감정이 고조된 상태라 다소간 소강국면을 갖는 것도 바람직하다. 주민의 피해를 보상하는 합리적 대안이 제시되고 적절한 지원책이 따라야 할 것이다.”
영남권 신공항이 무산됐을 때도 실망감이 적지 않았을 텐데.
“김해공항 확장 쪽으로 결론 났다. 우리는 그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밝혀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정부도 대구 K2비행장 이전이라는 어려운 결단을 내려줬다. 그건 그대로 진행하고 신공항 문제는 또 신공항 문제대로 들여다보겠다. 이 문제도 결국은 잘 풀릴 것으로 예상한다.”
지방이 홀대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1995년 4대 동시지방선거 실시 이래 한국의 지방자치도 20년이 넘었다. 지방자치가 성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중앙정부는 지방의 의견수렴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지시한다. 권한도 재정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불행한 지방자치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면?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이후 부활한 지방자치제를 제대로 뒷받침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헌법상의 자치가 아니라 법률에 위임된 자치일 뿐이다. 통일되면 북한에서도 지방자치를 실시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헌법에 분권을 명시했으면 한다. 예컨대 헌법 1조 등에 대한민국은 분권형 국가라고 하면 어떨까? 또 지방자치의 기본운영 골격, 시·도지사 등 지자체장의 지위와 권한을 명문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거듭 말하지만 지방 분권이 안 되면 수도권 집중도 막지 못하고, 통일은 더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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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시범마을이 조성된 세네갈을 방문해 농기계 시연을 하는 김관용 지사. 사진제공·경북도

대구·경북은 건국 이래 네이션빌딩(Nation building)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강한 지역이다. 사드와 신공항 등으로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커진 것 아닌가
“정치와 민심이 따로 논 결과다. 정치권은 현장의 분위기를 잘 몰랐다. 이미 4·13 총선을 통해서도 여실히 증명되지 않았나. 총선 결과에 새누리당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새누리당을 못 미더워하는 보수층 일부와 중도층이 새누리당을 떠났다.”
새누리당을 떠난 그들은 야당으로 갔나?
“공중에 붕 떠있는 상태다. 새누리당은 총선 공천과정이 공정했다고 주장하지만 유권자들은 아니었다고 본다. 정치가 이게 뭐냐고 실망한 보수들이 떠난 것이다. 보수의 반란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그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정현은 솔직하고 행동하는 사람… 믿는다”
 
이런 때 새누리당은 뭘 해야 하나?
“혁신한다고 했는데 국민에게 그리 썩 와 닿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처절히 반성하고 특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정현 대표가 당선된 것도 지금과 같이 해선 안 된다는 주문이다. 새누리당은 국민들이 됐다고 할 때까지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민심이 화석처럼 굳은 게 아니다.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새누리당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용서해줄 수 있다. 이는 국민이 선택할 문제다.”
8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잘하고 있다고 보는가?
“이정현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큰 변화다. 가까이서 본 그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며, 행동하는 사람이다. 길이 있으면 그대로 달리는 스타일이다. 그를 믿는다.”
새누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정권 재창출이 물건너갔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는데.
“야권은 다양한 대선 주자로 흥행몰이가 한창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지난 4월 총선을 거치면서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이 민심의 ‘불길’에 많이 그을렸기 때문이다. 산불이 나면 불에 타지 않은 소나무도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새로운 주자를 발굴해야 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여권의 러브콜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5월 경북도 신청사를 찾아 금강송을 식수했다. 반 총장의 경북 방문에 공을 들였을 법한데.
“지난 5월 반 총장이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유엔 NGO 컨퍼런스에 참석한다기에 정신문화의 요람인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안동에 오던 길에 지척에 있는 문화의 전당인 경북도청까지 찾게 된 것이다. 반 총장과는 잘 아는 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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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하회마을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내외와 탈춤공연을 관람하는 김관용 지사와 부인 김춘희 여사(오른쪽 둘째) 사진제공·경북도

어떤 인연이 있나?
“경북도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다. 1973년 이후 40년 넘게 ‘새마을과’를 운영하는 등 국내외 새마을운동을 주도해왔다. 이 새마을운동의 세계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반 총장과 일로써 만났다. 둘 다 공직에 오래 몸담았지만 이전에는 특별한 만남이랄까 인사를 나눌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반 총장은 새마을운동에 깊은 관심과 애착을 보였다. 2007년 아프리카연합(AU) 회의, 2008년 유엔본부에서 빈곤퇴치 모델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소개하기도 했다. 새마을운동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반 총장과는 2009년 이후 거의 매년 만나 새마을운동 세계화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협의한다.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도 세 번 만났다.”

“큰바위얼굴처럼 사람을 기다린다… 지방에도 사람이 있다”

경북도의 새마을운동 세계화 사업은 올해로 11년째를 맞는다. 한국 농어촌 근대화 경험을 세계 빈곤퇴치의 모델로 활용케 하자는 구상이다. 현재 11개국 30개 지역에 새마을시범 마을이 조성돼 있다. 400명 이상의 새마을해외봉사단이 현지에서 활동 중이다.
 
일각에서는 이원집정부제를 전제로 ‘반기문(대통령)-김관용(총리)’ 조합도 거론되더라.
“(웃음) 구상이야 재미있게 할 수 있겠지. 그런데 나는 그것과는 관계 없는 사람인데….(웃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큰바위얼굴처럼 (지역민들이 위대한) 사람을 기다리고, 또 지방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시기적으로, 또 입장이 있어 내가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했는데 그런 때가 오지 않겠나. 지금은 사드 문제, 공항 문제 등도 있으니 도정에 충실할 따름이다.”

대구·경북에는 유력한 대선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차기 주자 반열에 유승민(새누리당)·김부겸(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들어 있지만 앞서가는 후보들에 비하면 중량감이나 지지도에서 많이 뒤처져 있다. 게다가 새누리당의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는 충청 출신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보수의 대표 주자로 밀 듯한 태세다. 야권에도 문재인 전 의원, 안철수 의원이 선두그룹을 형성한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대통령을 배출한 대구·경북이 내년 대선에서는 다른 지역 출신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될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 그래서 좀 뜬금없는 얘기도 나돈다. 국회의원을 지낸 한 TK 출향 인사는 김관용 경북지사의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설을 들어봤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한두 달 전부터 김 지사가 내년 대선에 나서리라는 소문이 돈다는 것이었다. 박원순·남경필·원희룡·안희정 같은 광역자치단체장이 내년 대선 도전 채비를 갖추는 가운데 김 지사도 그 대열에 합류하리라는 관측이다.
 
대구·경북은 정권의 요람이었고 가장 많은 대통령을 배출했다. 내년 대선 레이스에 대구·경북 주자가 참여할 가능성이 있나?
“대구·경북에는 정권 창출의 보이지 않는 DNA가 있다. 내년 대선에서도 이런 에너지가 결집되고 분출될 것이다. 나는 TK 대선주자가 나오리라 본다. TK에는 ‘체면 문화’라는 게있다. 한번 시작하면 화끈하게 하는데 그전에는 체면 때문에 나서지를 않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내년에 (대선주자가) 나오지 않겠나. 그리고 TK를 대표해서 역할 분담도 있으리라 본다.”

어느 날 문득 한국에서 ‘행복의 사다리’가 끊어진 게 아닌가라는 물음이 강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제 해야 할 것과 해선 안 될 것을 구분해야 하는 상황에 왔다고 느꼈다. 나라 전체가 소통과 협력은 오간 데 없이 흐트러지고 여러 갈래로 조각났다.”

일각에서 김 지사의 대선 출마설도 나온다.
“하하. 4월 총선으로 기성정치에 실망한 국민들 입장에서 새 인물을 주목할 수 있는데 내가 아무 말도 없으니…. 내년 대선에 나갈 것 같기도 하고 안 나갈 것 같기도 하고…. 숨은 사람 찾는 숨바꼭질마냥 정치환경이 만들어지다 보니 그런 여론들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비록 지방행정의 달인이라지만 중앙정치는 생소한 게 사실이고, 또 김 지사의 인지도도 낮다.
“오히려 강점도 될 수 있다. 특히 신선한 면이 있을 수 있고. 기존 정치구도, 정치구조에 염증을 느낀 국민에게는 새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건 국민이 결정할 일이다. 나는 야전에서 일생을 보낸 사람으로서 현장에 문제가 있고 답이 있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에도 현장에 있는 주지사가 대통령이 된 사례를 많이 보지 않았는가.”
재산이나 가족 등에서 문제가 될 건 없나?
“6선의 지방자치단체장인데 검증을 할 게 뭐가 더 있겠나. 당내 경선과 본선을 거치면서 호된 검증을 거쳤다. 그러나 신이 용서의 본능이 있다면 인간은 과오의 본능이 있다고 했다. 허물이 있을 수도 있지만 국민들께 잘 설명하면 이해되지 못할 것은 없다고 본다.”

“이제는 영·호남 협력의 새 시대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영·호남 연정(聯政)을 언급했는데.
“자연스러운 것이지. 이젠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나. ‘어제와 똑같은 방법으로 오늘을 살면서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그렇게 지향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굉장한 차이를 낳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다.”
지난 5월 경북지사로는 처음으로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공식 참석했다.
“영남과 호남은 산업화와 민주화 두 가지 측면에서 나라 발전의 양대 산맥이면서도 갈등 관계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영·호남 협력의 새 시대로 가야 한다. 이는 지도자들이 먼저 실천해야 한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경북도는 이희호 여사님께 도움을 청한 일이 있다. 지난해 10월 문경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앞두고서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에서 열리는 뜻깊은 군인체육대회라서 북한이 꼭 참여하기를 고대했다. 마침 이희호 여사님께서 8월 초 평양을 방문한다고 해서 동교동으로 찾아가 힘을 보태달라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또 2014년엔 과분하게도 KBC 광주방송으로부터 ‘목민자치대상’과 함께 시상금 1억원을 받기도 했다. 이것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인 이희호 여사님께 영·호남의 상생발전과 미래인재를 육성에 써달라며 장학금으로 기탁
한 인연도 있다.”
많은 예비 대선주자들이 중도노선을 표방한다. 이런 추세가 바람직한가?
“보수든 진보든 이념적으로 정리된 입장을 밝혔으면 한다. 그래야 정책 경쟁이 가능해진다. 자신의 노선과 주장을 당당하게 밝히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자신을 주장하는 데 부끄러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나. 정리가 안 된 사람들이 쭈뼛쭈뼛하는 것이다. 요즘은 보수와 진보 이념이 혼재되는 양상도 보인다. 정당의 노선을 따르는 게 싫으면 그 정당을 떠나야 한다. 정당의 이념이 모호해지면 국민들이 선택하기가 어려워진다. 자기 이념을 구체화하는 정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정책을 보고 (지지 후보, 지지 정당을)선택하니까. 이러한 모든 것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전제 위에서 논의돼야 한다.”
그렇다면 김 지사는 정리가 됐나?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을 뭐라고 보나?
“내년 대선에서는 ‘사람’이 최고의 화두로 부각되리라 본다. 다시 말해 ‘사람 중심’의 가치관이 핫이슈로 등장한다는 말이다. 반세기에 걸친 압축성장 과정에서 양극화가 심화됐다. 경제는 발전했는데 중산층은 몰락하고 청년들은 취업도 안 되고 희망을 잃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도 커져 국가적 문제로 불거졌다. 개인의 정체성은 혼란에 빠지고 갈등은 양산되는 국면이다.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나라는 더 망
하는 길로 갈 수 있다. 이미 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문턱을 넘지 못한 나머지 뒷걸음질을 하지 않나.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중심은 사람이다. ‘사람 중심 세상’, ‘차별 없는 나라’를 만들자는 게 내 생각이다. 개인의 가치가 아닌 공동의 가치에 기반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양극화는 국가적 어젠다이기도 하다. 도지사로 양극화에 주목하게 된 배경은?
“나는 6선의 지자체장이다. 경북도는 남한 5분의 1(국토의 19.1%)에 달한다. 하나의 작은 나라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평생을 현장에서 보낸 셈인데 평소에도 느끼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어느 날 문득 한국에서 ‘행복의 사다리’가 끊어진 게 아닌가라는 물음이 강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제 해야 할 것과 해선 안 될 것을 구분해야 하는 상황에 왔다고 느꼈다. 나라 전체가 소통과 협력은 오간 데 없이 흐트러지고 여러 갈래로 조각난 상태다. 압축성장의 그늘에 있는 국민들은 동반성장에서 배제됐고…. 양극화를 극복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양극화는 압축성장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시대지만 방황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념과 노선을 넘어 양극화 극복을 위한 정책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정책결정은 해당 지위에 있는 이들이 하는 것이지만 그 권한의 뿌리는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이제는 수요자 입장에 맞춰 백성이 바라는 데로 가야 한다고 본다. 황희 정승이 세종대왕에게 한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백성이 싫어하면 해선 안 된다.’ 지난 20년 동안 지자체장을 하면서 그런 느낌이 점점 크게 와 닿았다. 무서워졌다. 겸손해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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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방문한 김관용 지사가 독도를 자국영토로 교과서에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일본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경북도

경제민주화에 동의하나?
“1962년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실행하면서 자본이 없는 탓에 정부주도의 계획경제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재벌과 중화학공업을 중점 육성하는 불균형 발전전략을 채택한 것이었다. 균형발전-불균형발전 전략은 오랜 논쟁을 불러왔다. 이제 정부는 경제민주화 장치를 통해 이런 불균형을 조정해줘야 한다. 재벌들이 알아서 소득 불균형을 조정해주면 고맙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국민이 한다. 비정부기구(NGO) 같은 곳에서 그런 일을 하면 포퓰리즘이 일어나고 나라는 어려워진다.”

“국민이 들고일어나기 전에 정부가 소득불균형 해소해야”
 
전국 시·도 지자체장 평가에서 10여 차례나 1위를 차지한 비결은?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었지만 오직 도민만 바라보고 일로 승부해왔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라면 좌고우면하지도, 조금도 주저하지도 않고 치고 나갔다. 대화와 소통으로 문제를 풀면서 항상 진정성을 가지고 도민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했고 잘못하면 솔직하게 용서도 구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좋은 평가를 내려주신 것 같다.”
국민이 힘들어 하는 현실을 절감하는 것 같은데, 도지사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더 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도지사로서 도지사 입장에서 그런 말과 주장을 하는 것이다. 다른 자리에 간다면 그 자리에서 합당한 일을 하겠지.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謀其政)’이라는 말이 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자리의 일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자치단체장 중에는 현실정치와 국가현안에 거침없는 비판을 해 온 이들이 있다. 그것도 공직자로서 책임 있는 자세 아닐까?
“기회가 오면 말하겠다. 가까운 시기에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갈 방향에 대해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시기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중앙정치 참여 의향을 묻자 “도지사 직분에 전념할 때”라며 현 좌표 고수에 무게를 두었던 김 지사였다. 그는 “지방이 잘되면 나라가 발전한다”면서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관되게 헌신하고자 한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에서 김 지사는 새누리당의 4월 총선 참패 원인과 대책, 여당 지도부 개편, 대선 구도와 의제에 관한 의견을 속사포처럼 늘어놓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년 대선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가 물씬 배어 났다.

글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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