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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밀정' 송강호 인터뷰

중앙일보 2016.09.1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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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송강호 공유02 사진=전소윤(studio 706)

‘밀정’의 이정출은 배우 송강호(49)가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정제된 얼굴 같다. ‘살인의 추억’(2003, 봉준호 감독)에서의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시골 형사 박두만, ‘괴물’(2006, 봉준호 감독) 속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박강두, ‘우아한 세계’(2007, 한재림 감독)에서 연기한 소시민 같은 건달 강인구, ‘변호인’(2013, 양우석 감독)의 가슴 뜨거운 변호사 송우석을 떠올려 보라.

흔들리는 마음마저 눈빛 속에 담아낸 송강호

‘밀정’과 마찬가지로 김지운 감독과 함께했던, 일제강점기 배경의 만주 웨스턴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 이하 ‘놈놈놈’)에서 그가 연기한 천둥벌거숭이 무법자 윤태구와 비교하자면 더욱 그렇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인물인 건 비슷하지만, 이정출은 윤태구보다 훨씬 진지한 캐릭터다. 윤태구는 ‘될 대로 돼라’ 식으로 사는 인물(웃음)”이라는 게 송강호의 설명이다.

그 역시 이정출이 새로움을 보여 줄 수 있는 역할이라 느꼈다. “배우로서 서민적인 이미지가 강하지 않나. 이렇게 스타일리시한 시대극에서 이정출처럼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대중에게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가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모호함’은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 송강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키워드다. 그걸 도전 의식이라 불러도 좋다. “일제강점기가 배경인 여느 한국영화처럼 독립군 대 일본 구도를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다뤘다면, 아마 이 영화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밀정’은 그 시대를 바라보는 확고한 틀에서 벗어나, 그 시대에 얼마나 다양한 인물과 생각이 살아 숨 쉬었는지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그것이 그가 느끼는 시대극의 묘미다. “잘 알고 있다 생각하지만, 실은 직접 살아 보지 않은 그 시대를 남다른 상상력으로 그려 내는 것” 말이다.

‘밀정’은 일본 경찰과 의열단 사이를 오가는 이정출의 마음, 그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감정의 길을 숨죽인 채 따라간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이정출에 대한 직접적인 말을 아낀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왜 일본 경찰이 됐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일본의 밀정이 되기 전,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 단체의 활동을 도왔다는 이야기만 살짝 흘릴 뿐이다. 송강호는 이정출에 대해 “어떤 신념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어느 편에나 설 수 있는 인물”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그 인물의 변화 계기를 세세히 그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이정출의 삶은 특별한 계기가 빚어낸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낳은 것이니까.”

그렇기에 그가 결말에서 어떤 선택을 행하기까지 ‘언제 왜 그 마음을 먹었느냐’고 송강호에게 묻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밀정’은 끝없는 마음의 흔들림을 응시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결정적 계기, 클라이맥스를 다르게 느낄 것 같다. 누군가는 ‘의열단이 경성으로 폭탄을 운반하는 열차에서, 이정출이 의열단과 그들을 잡아들이려는 동료 경찰 하시모토(엄태구) 사이를 오갈 때’라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정출이 재판장에 선 장면’이라 생각할 테고. 아니면 결말에서 ‘이정출이 상관 히가시(츠루미 신고)의 눈을 바라보며 어떤 결심을 실행에 옮길 때’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 연기할 때 나는 ‘클라이맥스가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즉, 이 영화의 지형도는 장면장면이 포착하는 송강호의 표정을 어떻게 읽어 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말로 설명하는 대신 무언가를 보여 주는 것. 송강호가 생각하는 예술은 그런 것이다. “영화, 그러니까 예술은 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다. 1 더하기 1이 3도 될 수 있고 10도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게 바로 예술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 역시 그러하다. “어떤 작품이 배우에게 ‘캐릭터’라는 재료를 던져 줬다면, 그걸로 요리를 만들어 내는 건 배우 몫이다.

어떤 요리를 어떻게 할지는, 감독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배우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자신의 말대로 송강호는, ‘이정출’이라는 모호한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지 김 감독과 일일이 상의하지 않았다. 물론 그건 그들이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 ‘놈놈놈’에 이어 ‘밀정’으로 네 번째 호흡을 맞추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다른 감독들이 시나리오를 이야기 전체와 형식적 구도의 세세한 설계도로 활용한다면, 김 감독님에게 시나리오는 극 전체의 간략한 밑그림에 해당한다.

그 대신 촬영 현장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탐험하는 편이다. 만약 김 감독님과 처음 작업하는 배우라면 그 점을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다. 그 스타일에 익숙해지면, 훨씬 창의적이고 풍성한 표현에 눈뜨게 된다.”

그렇다면 송강호는 늘 직관과 즉흥성에 몸을 맡기는 배우일까. “흔히들 그렇게 오해하는 것 같다. ‘송강호는 철저히 준비하고 연습하기보다, 본능에 기대어 즉흥적으로 연기한다’고 말이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어떤 장면은 본능적으로 연기하지만, 어떤 장면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기도 한다. 즉흥적인 연기 역시 그 인물에 대한 준비가 마음속에 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밀정’ 촬영장에서 대사를 되뇌며 연습하는 송강호의 모습을 보고 공유가 깜짝 놀랐다더니, 그 말이 이제야 이해된다.

“지금 충무로에서, 이정출이 지닌 스펙트럼을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라던 김 감독의 찬사가 아니라도, 우리는 ‘밀정’에서 다시 한 번 똑똑히 목격할 수 있다. 송강호의 얼굴에 얼마나 넓고 오묘한 세계가 깃들어 있는지를. 차가움과 뜨거움, 모호함과 분명함, 즉흥성과 정교함, 긴장과 여유를 오가는 그 세계를.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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