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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트럼프가 우리에게 던지는 네 개의 질문

중앙일보 2016.09.12 19:31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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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미국 대통령선거가 두 달을 채 남기지 않은 채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양 후보의 경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선거가 어떻게 끝나건 역사가들은 아마 2016년의 미국 대통령선거를 ‘트럼프 선거’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현상’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매우 근본적인 변화가 불어닥친 선거였기 때문이다.

공동체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 조장하는 트럼프 인기는
현대 민주주의의 원론적 모순
민주주의의 역설, 혹은 위대함은
이런 선동·편견까지 소화하는 것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대안 없다


나는 트럼프 현상이 한국의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매우 임박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 나라의 한갓 유명인의 쇼맨십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질문들이 던지는 함의가 깊고, 또한 한국 민주주의에 던지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을 풀기 위해 앞으로 당분간 고심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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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면서 누구나 지녔던 의문은, 따라서 첫 번째 질문은 그가 과연 얼마나 심각한 후보인가 하는 물음이었으며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멕시코 이민자들은 모두 강간범이며 미국으로 범죄자들이 흘러 들어오고 있다는 그의 선언으로 코미디처럼 출범한 트럼프의 선거운동은 거의 모든 정치평론가의 예측을 거슬러 거대 정당인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공천에 이르렀다. 연일 기존 선거공학과 상식을 거스르고 유권자들을 설득하기보다는 온갖 갈등을 증폭시키는 행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지지세를 과시하고 있으며, 정직성이나 건강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클린턴 후보와 백중세를 이어 가고 있다. 여전히 트럼프 최후의 목표는 당선이 아니라 낙선이 되어 사업과 방송에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라는 논평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아직도 미국 주류 미디어에서 그를 지나가는 악몽 정도로 치부하려는 것 같지만, 적어도 그가 당선권을 바라보는 유력한 후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트럼프가 던지는 두 번째 질문은 과연 트럼프 개인의 기행과 전략적 선택과는 무관하게 미국 대중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트럼프 현상의 핵심에 있는 것은 트럼프 본인이 아니라 그에게서 어떤 출구를 발견한 ‘화난 유권자들(angry voters)’이며, 광범한 세계화의 과정에서 정치적·경제적으로 소외된 비도시 지역 중·하층 백인 남성 유권자들의 조직적인 반란이라면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보다 젊고 세련된 제2, 제3의 트럼프가 나타날 가능성은 농후하고, 누가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조직적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앞으로 대내적으론 이민자 정책에 대한 폐쇄적 강경 드라이브와 대외적으로는 극단적 고립주의로부터 상시적인 요구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던지는 세 번째 질문은 과연 미국 정치 시스템이 이와 같은 외재적 요인에 대해 얼마나 강건한가 하는 물음이다. 복잡하고 긴 정당 공천 과정이란 테스트를 거쳐 한때는 링컨의 정당이었던 공화당이 이민자와 소수자 혐오로 뭉쳐진 후보자를 공천한 사실은 이미 기존 정치 질서의 한 축이 무너진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주별 선거인단을 획득해야 하는 본선에서 적어도 현재까지는 트럼프가 상당히 뒤처져 있는 것으로 보이며, 설령 그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매우 ‘약한’ 대통령이 될 것임에는 확실하다. 삼권 분립이 확립돼 있는 미국에서 의회의 지지가 없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으며, 어느 정당이 다수를 차지하건 공화당 의원 다수가 트럼프와 거리를 두려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데,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적 민주주의가 지닌 원론적인 모순과 직결된다. 즉 여러 다양한 구성원과 그들의 생각과 입장에 대한 동등한 존중이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특정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조장하는 트럼프 같은 데마고그로부터 이토록 취약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자금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후보자의 이미지와 두 줄짜리 슬로건만이 난무하는 선거에서 양극화가 가져온 끝없는 삶의 고통과 소외된 열패감이 손쉽게 발견한 것은 손톱 밑 가시처럼 박혀 있는 이웃의 소수자들이었을 것이고, 트럼프는, 혹은 대개의 데마고그는, 이것이 바로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역설, 혹은 위대함은 아마도 이러한 선동과 편견조차 인내하고 소화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문제와 해결 지점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닌가 한다. 미국과 유럽을 거쳐 이미 우리 주변까지 와 있을지 모를 세계적 흐름이 과연 어디로 우리를 이끌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에게 민주주의 외의 더 나은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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