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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 "터키, 법치국가로부터 광속으로 멀어져 테러 정권으로"

중앙일보 2016.09.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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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

우리는 법치국가로부터 광속으로 멀어져 테러 정권으로 향해 가고 있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무크의 11일(현지시간) 발언이다. 이날 자 이탈리아 신문인 ‘라레푸블리카’ 1면에 실린 서한을 통해서다. 지난달 쿠데타를 겪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지식인·언론인 등을 대거 해고, 연행하는데 대한 반발이다. 전날에도 저명한 알탄 형제가 구금됐다. 형인 아흐메트 알탄은 언론인, 동생인 메흐메트는 여러 권의 저서를 쓴 이스탄불대 경제학과 교수다. 터키 당국은 “형제가 쿠데타 전날 방송된 TV 프로그램에서 쿠데타 개시를 암시했다. 이들이 쿠데타 배후세력과 연계된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파무크는 “터키에선 정부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의 목소리를 낸 모든 사람을 계속 잡아들이고 있다”며 “이는 흉포한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터키에 사상의 자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그는 그동 안 구금된 지식인들을 석방해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파무크가 에르도안 정권에 비판적이었지만 지식인 탄압에 대해 공개적으로 견해를 표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내 이름은 빨강』 『눈』 『하얀 성』 『순수 박물관』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날 라레푸블리카엔 파무크 외에도 영국의 사회비평가이자 부커상 수상작가인 존 버거 등 지식인 50여 명의 공개 서한이 실렸다. 이들은 “기본권·증거주의, 또는 상식도 무시되는 마녀사냥식 검거”를 저지른다고 에르도안을 비판했다.

터키 정부는 실제 쿠데타 이후 쿠데타와 직접 관련성이 없는 지식인과 언론인도 대거 연행했으며, 미디어 150여 곳의 문도 닫았다. 알탄 형제가 출연한 방송도 폐쇄됐다. 2300여 명의 기자들이 해직됐다. 영국 가디언은 “몇 명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당수의 기자가 여권이 취소됐고 출국이 금지됐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20여 명의 선출직 쿠르드 자치단체장들도 직무가 정지됐다. 터키 당국이 테러단체로 여기는 쿠드르노동자당(PKK), 또는 재미 이슬람학자인 펫흘라흐 귈렌과의 연루 혐의에서다. 쿠르드계를 대표하는 인민민주당(HDP)은 “유권자의 뜻을 무시하고 선출된 지방정부·의회를 무력화하는 불법 조처”라고 반발했다. 직무대행이 임명된 곳곳에서는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일부 시장은 출근을 강행하려 해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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