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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범의 쏘울루션] ②공황장애-“나는 누구보다 잘하고 싶다”

중앙일보 2016.09.12 11:32
지난해 10월쯤 50대 후반의 중년 남성이 찾아왔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며 꼭 죽을 것 같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필자는 먼저 그에게 어떤 인생을 살아 왔는지 물었다. 그는 30년 동안 직장에서 미친 듯이 일했다. 평가도 좋아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고, 결국 임원 자리까지 꿰찼다. 그가 일하는 회사는 익히 들어 알만한 대기업이었는데, 최근 20여 년 동안 그는 그룹 내 업무평가에서 매년 1등을 해왔다고 했다. 회사 내의 거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다시피 하며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불면증을 앓아 왔다. 약으로 버텨왔으나 연말이 다가오자 또 한번 압박감을 느끼며 복잡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깨알같이 종이에 적어 왔다. 그 개수가 20개 이상이었다. 뒷골이 당기면서 신경이 곤두서고 아무리 지압을 해도 풀리지 않고, 뒷목에서 머리까지 전기가 통하듯이 쭈뼛하고, 머리가 막혀서 터져 죽을 것만 같고,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고, 손발이 저리고 떨리는 느낌이 오고, 입은 쓰고 바짝 타 들어가고, 소변도 찔끔 찔끔 나오고, 자꾸 짜증이 나고 신경이 날카로워 지며 잠도 전혀 자지 못하고, 누워 있으면 땅으로 꺼지는 것 같아 죽을 것만 같다고 했다. 이런 증상들이 24시간 지속돼 응급실도 수 차례 다녀왔다고 했다. 무엇보다 마음이 도무지 진정되지 않고 불안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며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통상적인 심리적 접근에서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 기제 양식은 크게 투쟁(fight)·도피(flight)·경직(frozen)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위 환자는 적극성을 넘어 전쟁하듯 일에 몰입하며 투쟁(fight)의 양식으로 반응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누구보다 앞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경쟁에서 밀리는 것을 참지 못했다. 치고 올라오는 젊은 부하직원에게 압박감을 느꼈고 상사의 많은 기대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또한 20년 동안 유지해 온 업무평가 1등이라는 자리를 놓치기 싫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실력의 한계를 느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됐다. 환자는 줄곧 1등을 놓쳐 결국 회사에서 밀려나는 상황을 앞서 상상했고, 그럴 때마다 엄청난 공포감을 느끼게 됐다. 죽을 것 같은 발작을 경험한 후에는 다시 또 그런 상황이 올까 두려워하는 지속적인 불안상태(예기 불안)까지 더해지면서 증상은 점점 악화됐다. 전형적인 공황장애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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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증상을 본 연재의 바탕이 되는 『상한론(傷寒論)』을 통해 고대인들이 어떻게 인식을 했는지 한번 살펴보자. ‘맥부, 위중건조, 번부득면...소변불리, 미열소갈자’(?浮, 胃中乾燥, 煩不得眠,...小便不利, 微熱消渴者). 상한론 원문엔 아래와 같이 표현돼 있다. 원문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현상과 발생 과정에서 환자에게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을 압축적으로 기술해 놓았다. 대략 이 환자는 과한 활동과 움직임이 병의 원인이 돼 위 속이 타 들어가듯 허기지고 머리에 화기가 드는 것처럼 짜증이 나고, 잠을 이룰 수가 없고,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으며, 은근히 열이 나면서 살은 빠지고 갈증을 느끼는 현상이 진행되면서 특정 질병이 심화돼 나타났다고 번역할 수 있다.

원문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 ‘맥부(?浮)’를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맥(?)을 쪼개보면 고기 육(肉)과 길 영(永)으로 이루어져 있다. 肉은 사람의 몸을 말하고 永은 물결 파(派)를 뒤집어 놓은 것으로 行(행), 人(인), 水(수)의 자소가 결합돼 이루어진 것으로 ‘여러 갈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의미한다. 종합해 해석해보면 ?이란 ‘살아 있는 생명체의 움직임’을 말한다. 임상적으로는 인간의 행동 가운데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을 다양한 ?으로 압축하여 표현했다. 이번에는 부(浮)를 살펴보자. 물 수(水)와 사로잡을 부(孚)로 구성되어 있다. 흔히 뜰 부라 하여 ‘물에서 뜨다’는 의미로 알고 있지만, 고문자적으로는 넘칠 ‘범’(氾)과 같은 의미이다. 범람이란 액체의 양이 일정한 범주를 넘어서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래서 浮는 일정한 기준선을 넘어선 상태를 나타낸다. 따라서 맥부(?浮)라는 것은 과도하고 무리한 행위로 인해 몸과 마음에 질병이 발생하는 모든 경우를 일컫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적당히, 그리고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을 무리하게 행하는 경우를 말한다.

앞서 본 공황장애 환자도 일정 선을 넘어 전력투구하는 삶, 즉 맥부로 인해 다양한 증상과 질병이 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승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평가를 위해 더욱 매진했고, 낙오하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다. 이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과부하를 자초해 결국 공황장애로 몰고 간 것이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알려진 유명 연예인들을 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함, 인기에 대한 집착, 무리한 일정 등 유사한 맥락에서 질병이 시작되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맥부의 기저에는 어떤 심리가 있을까? 불안함·두려움 등 복잡한 감정이 놓여 있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공포심’이다. 다른 누구보다 내가 잘해야 되고, 앞서가야 하며,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보다 뒤처지는 것은 패배라 인식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주변을 의식하고 앞으로만 달려가려 한다. 모든 일과 사람을 경쟁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진정한 휴식은 없고 늘 긴장상태가 지속돼 공포감이 상존한다. 일종의 교감신경 항진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런 경우 심리적 바탕에 애정결핍이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형제가 많아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거나, 부모의 과도한 욕심이 아이에게 투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경쟁과 전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기질은 자신의 주변을 경쟁 상대로 인식하게 되고 그것이 성장과 함께 고착화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전투적인 파이터 같아 보이지만 그 시작은 사랑을 얻기 위함이었음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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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자의 경우도 어린 시절에 유사한 흔적이 보인다. 6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그에겐 공부를 잘하고 명문대에 진학한 큰 형이 있다. 그는 형에 대한 열등감에 늘 젖어 있었고, 부모는 ‘형만큼만 해도 좋겠다’는 바람으로 은근히 상처를 줬다. 아마도 큰형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둘째를 성장시키려는 나름의 양육 방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평생을 경쟁심 속에서 허덕이며, 남보다 앞서지 못하면 존재의 가치가 없다는 압박을 느끼며 살게 된다.

이런 류의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경쟁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누구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투쟁의 시간 후에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을 번갈아 써야만 인체는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삶은 치열하고 쉽지 않지만, 투쟁과 전투와 경쟁 후에는 휴식과 안락을 허락해야 한다.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공기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치유란 자기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고쳐나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나간 삶의 흔적을 뒤돌아보고 편중된 삶을 반성해야 한다. 조급하고 무리하게 애쓰기보다는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몸이 기뻐야 마음도 기쁘고, 마음이 편안해야 몸도 편안해 진다. 주변을 의식해 경쟁 대상으로 삼지 말고, 마음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여 자기 자신의 삶에 집중하여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30년간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 왔는데,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은 삶 속에 놓여있다면 정말 억울하지 않은가?

이 환자는 깊은 반성과 통찰을 통해 현재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자신에게 찾아온 공황장애를 통해 투쟁의 삶에서 평온한 삶으로 완벽히 전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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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범의 쏘울루션]은 현대인이 겪는 여러 마음의 질환을 다루고, 고대 의학서인 『상한론(傷寒論)』을 통해 해결 방법을 찾아본다. 총 10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저자인 노영범 한의사는 30년 노영범 부천한의원 대표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공황장애, 우울증, 주의력 결핍 등 신경정신질환 전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계를 움직이는 파워엘리트 21인’으로 선정된 바 있고, 2007년부터는 한국소비자보호원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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