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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의 제대로 읽는 재팬] 아베 ‘출산 총력전’…무제한 초과근무 기업에 벌칙 추진

중앙일보 2016.09.12 00:34 종합 18면 지면보기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9일, 일본 관가는 숨가쁘게 돌아갔지만 정부와 도쿄도에서는 저출산 대책 논의가 잇따랐다. 후생노동성은 근로자의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기 위한 첫 전문가 검토회의를 열었다. 사실상 무제한의 초과 근무(잔업)를 허용하는 노동기준법상의 노사 협정을 고쳐 상한을 설정하기 위해서다. 현재 일본 정부의 초과근무 상한 기준은 월 45시간이지만 예외를 인정해 대부분의 기업이 이를 넘기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규제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벌칙 규정을 만드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다. 장시간 근로가 결혼은 물론 남성의 가사 분담과 여성 활약을 막아 저출산을 부른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근로 방식 개혁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새롭게 힘을 쏟고 있는 저출산 대책 분야다.

장시간 근로가 저출산 만든다 판단
1억총활약상에게 근로개혁도 맡겨

아베 총리는 이날 근로 방식 개혁을 뒷받침하는 세제 개혁 논의를 지시했다. 자문기구인 정부세제조사회 총회에 참석해서였다. 핵심 검토 대상은 전업주부 가정을 우대하는 배우자 공제(控除) 제도를 바꿔 맞벌이 부부의 세금도 경감해주는 방안이다. 남성이 직장에서 일하고 여성은 가사를 맡았던 1960년대의 세제를 고쳐 일과 육아의 양립을 꾀하겠다는 취지다.
도쿄도는 보육원 확충에 나섰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지사는 이날 보육원 입소 대기 아동 해소를 위한 126억 엔(약 1353억원) 규모의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빈 집과 빈 점포 등을 활용해 보육원 정원을 올해 5000명 더 늘리기로 했다. 보육 인프라 확충은 저출산 대책의 큰 기둥이지만 대기 아동이 도쿄도만 8400여명(전국 2만3000여명)에 이른다. 고이케 지사는 이날 저녁 아베 총리를 만나 두 살까지로 돼 있는 소규모 보육원(정원 6~19명)의 나이 제한 철폐도 요청했다.

2012년 말 아베 2차 내각 출범 이후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의 저출산 대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결혼·임신·출산·육아의 각 단계에 따른 틈새 없는 대응을 기치로 관련 예산의 양적 확대와 대책의 질적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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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지난해 출산율은 1.46으로 1994년(1.50)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30~40대 초반을 중심으로 한 출산이 5년만에 늘어난 것이 한몫했다. 쓰쓰이 준야(筒井淳也) 리츠메이칸대 교수는 “최근 경제의 호전과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제도를 확충해 이룬 성과”라고 진단했다. 여성 활약과 저출산 대책 추진을 위한 내년도 예산 요구액은 2조3021억 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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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아베 총리의 저출산 대책 리더십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1억 총활약 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최측근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를 담당 각료에 임명했다. ‘1억’은 향후 50년 후에도 유지하겠다는 인구 목표다. 일본의 전체 인구는 2008년을 정점으로 줄기 시작해 지난해 말 1억2688만 명으로 떨어졌다. 현 추세대로라면 2050년 1억 명, 2100년 5000만 명을 밑돈다.

아베 총리는 적극적 육아 대책을 통해 1.46인 출산율을 1.8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구체적 대책으론 내년까지 50만 명 규모의 보육시설을 새로 확보하기로 했다. 동시에 2019년까지 모든 초등학교에 122만 명 규모의 방과후 아동 클럽을 만들 계획이다. 불임 전문상담 센터도 전국 광역 지자체와 주요 도시에 설치하고, 보육사 급여도 2% 정도(월 평균 6000엔) 인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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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는 가토 장관에게 근로방식 개혁 담당상도 겸임하게 했다. 결혼·육아에 집중했던 저출산 대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모양새다. 결혼과 출산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근로 환경을 정비해야 출산율이 올라간다고 보고 있다. 미혼자의 약 90%가 결혼을 바라지만 30~34세 남성의 결혼 비율은 47.3%에 불과하다. 복합적인 처방전을 쓰는 셈이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이나 남성의 육아 휴직 확대도 이와 맞물려 있다. 세제도 개편해 조부모가 손자의 결혼과 육아 자금을 일괄 증여할 경우 증여세를 면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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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대책도 한 둘이 아니다. 시마네(島根)현 오오난초(邑南町)는 ‘육아 일본 제일’을 내걸고 의료비와 보육료를 무료화해 2014년 출산율을 2.07으로 올렸다. 오카야마(岡山)현 비젠(備前)시도 부모 소득과 상관없이 첫째 아이부터 보육원이나 인가 어린이집, 공립 유치원을 무료로 다닐 수 있도록 했다.

둘째 아이부터 보육원과 유치원을 무상화하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효고(兵庫)현 아카시(明石)시는 이달부터 이 제도 시행에 들어갔다. 이 조치로 시의 부담은 약 4억 엔이 늘어나지만 어린이 양육 지원 제도의 충실화에 따른 인구 증가로 생겨날 세수로 메워나갈 방침이다. 아카시시의 스즈키 겐이치(鈴木健一) 담당 과장은 ”한 해 시의 출생자를 3000명으로 늘려 현재의 인구 29만3858명을 2019년까지 30만명으로 만들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지바(千葉)현 우라야스(浦安)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건강한 여성의 난자를 동결해 보존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미혼인 여성이 장래에 임신을 희망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다. 저출산·고령화는 우라야스를 포함해 수도권 베드타운의 공통 고민거리다. 지자체는 관내 점포가 어린이 양육 가정에 할인과 우대 서비스도 해주도록 하고 있다. 전국의 참가 점포는 44만개에 이른다.

기업도 직장맘이 육아나 부모 간병을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걸 막고, 남성의 육아 지원을 위해 재택 근무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사무직과 기술직 사원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실시 중이다. 재택 근무는 일본 3대 메가 뱅크인 미쓰비시도쿄UFJ, 미즈호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하고 있거나 도입 예정으로 있다. 도요타는 사원의 불임 치료 지원을 위한 휴가 제도도 도입한다. 내년 1월을 목표로 최대 연간 5일 정도를 쉴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 제도는 산업계에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고마무라 고헤이(駒村康平) 게이오대 교수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저출산 대책의 효과는 금세 나오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현재 정책을 전환하면 20~30년 후에는 역사의 분기점이었다는 평가를 들을 것”이라며 “정부가 장기 구상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영환 도쿄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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