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view &] 벤처창업, 실패 비용 줄여주는 정책을

중앙일보 2016.09.12 00:01 경제 8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정 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 쏠리드 대표이사

1892년 설립된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전기조명 회사에서 출발해 가전, 에너지, 항공, 운송, 헬스케어, 금융까지 진출한 세계적인 기업이다. 그러나 최근 뉴욕타임스는 “GE는 이제 아마존, IBM,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했고 124년 된 스타트업(벤처기업)”이라고 소개했다. 전통 제조업의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에서 산업용 인터넷 시장의 잠재력을 예견한 GE는 상징과도 같았던 가전 사업부를 중국 하이얼에 매각하고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금융사업도 축소하고 있다.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사업을 접고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이다. 최근에는 구글을 벤치마킹해 자유로운 업무 환경을 제공하고 스타트업 마인드에 초점을 맞춘 기업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라며 “저성장 시대에 움직이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 대기업도 최근 전통적인 하드웨어 제조사에서 소프트웨어 선도기업으로 변화를 목표로 조직문화를 스타트업 문화으로 개조하기 위한 혁신과 국내외 신생벤처기업 인수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보도된 아시아 시가총액 상위 3개사는 90년대 이후 창업한 신생 중국기업들이 차지했으며 이들보다 업력이 훨씬 앞선 이 회사는 스마트폰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4위에 링크되어 있다.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이 지속되는 새로운 경제 환경을 맞이해 글로벌 선진강국들은 벤처창업 확산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또한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글로벌 대기업들도 “스타트업 정신으로 돌아가자”라는 구호 아래 변신을 거듭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과거 정부주도 산업성장 시기에 많은 기업인들이 성공 신화들을 만들면서 세계에서 부러워하는 훌륭한 대기업들을 다수 일구었으나, 이들 대기업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쇠락하는 사례가 최근 많아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과거와 같은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한 창업자들의 도전과 성공 신화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가 개인의 역량을 넘어 사회적인 요인에도 기인한다. 높은 실업률 속에서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혁신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에 대한 도전이 인색한 것은, 많은 제도개선 노력에도 아직도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창업을 하고 기업을 일구어 기대할 수 있는 이익보다, 실패의 비용이 너무 큰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말 제주에서 개최된 벤처하계포럼에서 국민대 이병헌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주소는 다산다사, 중장년 창업, 생계형 창업, 기술창업 저조, 기술창업 인프라 취약, 고성장 글로벌 벤처 부족, 창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퇴직한 중장년들이 떠밀려 시작한 소상공인 창업이 많으며, 그나마 기술창업에 도전하는 경우에도 열악한 자금조달 시장과 불공정한 시장환경으로 인해 지속성장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지적이다.

기술창업이 더 활성화되고 고성장 글로벌 벤처가 더 많이 탄생되기 위해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결국 실패의 비용을 줄여주고 혁신에 도전해 성공했을 때의 보상을 높여주는 제도개선을 꾸준하게 해나가는 것이다. 현재 융자 위주의 정책금융을 더 과감하게 투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이와 더불어 창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기업가 정신의 조기교육을 확산하고 벤처창업 기업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를 제고하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공정한 시장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제도 정비와 함께 정도 경영의 벤처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업계의 노력도 요구된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이제 기업들은 업력과 규모에 상관없이 항상 새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혁신과 변화를 고민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정 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 쏠리드 대표이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