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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하드고어한 오후 한 시 #6. 눈 쇼 (3)

중앙일보 2016.09.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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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씨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여기를 보세요, 띠용!” 눈동자를 가운데로 모았다. 모은 뒤에는 벌렸고, 벌렸다가는 굴렸다. 굴려도 아주 빠르게 굴렸다.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사장은 열렬하게 환호했다. 박수 치는 것으로 모자라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아빠, 되게 재밌어, 또 해봐. 또 해봐! 아버지에게 조르던 씨처럼 사장은 앙코르를 외쳤다. 또 해봐, 또 해봐!
아아, 아빠는 어지럽단다. 아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눈쇼를 멈추지 않았다. 여러분들, 저 너무 어지러워요. 씨는 어지러웠지만 눈쇼를 멈추지 않았다. 어린 아들에게 눈쇼를 보여주던 아버지처럼 씨는 최선을 다해 눈알을 굴렸다.
얘야, 네게 줄 것이 이것밖에 없구나. 그런데 얘야, 너무나 어지럽구나.
벽을 짚던 아버지. 씨는 허공을 휘저으며 몇 걸음 발을 뗐다. 벽이라도 짚고 싶었다. 어지러워요, 여러분들. 저 어지러워요. 눈알이 구르면서 세상이 빙글거리며 돌았다. 사람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나선형으로 날아왔다.
 
이윽고 씨는 바람 빠진 풍선인형처럼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자기 코를 잡고 백 바퀴, 맴이라도 돈 느낌이었다. 사장은 쓰러지는 것까지 계획된 쇼인 줄 알고 좋아했다.
 
“하하, 재밌어, 재밌어.”
 
너는 재밌냐? 나는 죽을 것 같다. 아들아, 이 새끼야, 나 죽을 것 같다고!
아버지는 일어서지 못했다. 씨도 일어서지 못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탕, 하고 판이 절단 나는 소리가 들렸다. 전 전무였다. 탁자 위에 그의 커다란 주먹이 놓여 있었다.
 
“눈쇼 재미없다.”
 
전 전무가 정색을 하자 사장도 뻘쭘해서 웃음을 그쳤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표정이 냉담하게 굳었다.
 
여느 날처럼 씨는 기획실로 명명된 작은 방으로 출근했다. 양복저고리를 벽에 걸고, 서류 가방을 책상 서랍에 넣고, 구두 대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순간 의자가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 의자가 어디 갔지?
 
“오늘 아침, 부서 이동이 있었어.”
 
조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일러주었다.
 
“자네 의자는 창고에 가져다 놨어.”
 
창고라니. 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조 팀장을 바라보았다. 조 팀장은 눈을 맞추지 않은 채 혀를 찼다. 쯧, 그러기에 적당히 했어야지, 사람이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뭐 해? 어서 내려가지 않고.”
 
조 팀장이 종용했다. 창고라고 하면 지하주차장 구석에 처박혀있는 그 창고를 말하는 건가? 그 창고가 언제부터 정식 부서였지? 이건 아예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이잖아. 어지럼증이 밀려왔지만 의자가 없어 씨는 어디 주저앉지도 못했다.
결국 어디에도 자신이 앉을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씨는 조금 전의 순서를 되짚어나갔다. 슬리퍼 대신 구두로 갈아 신고, 서랍에서 가방을 꺼내고, 양복저고리를 집어 들고 천천히 방을 걸어 나왔다.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이대로 창고로 내려가야 하는 건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시원하게 결정을 내지리 못한 채 씨는 창고가 있는 지하주차장까지 걸어 내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으니 무슨 착오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자네, 눈알 튀어나오는 묘기도 부릴 수 있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전 전무가 곁에 서 있었다. 언제나처럼 고급 양복에 실크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모습이었다. 몸에서 남성용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씨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나오셨습니까?
 
“사람 뒤통수를 때리면 눈알이 튀어나오지. 등 뒤에서 몰래 다가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면 누구라도 눈알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단 말이야. 나는 자네가 내 편인 줄 알았네. 내 뒤통수를 때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전 전무는 점점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이봐. 사장 직위가 높다고 해서 이 회사가 사장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내가 생각하기에 자네는 줄을 잘못 선 것 같군. 놈에게 그렇게 잘 보이고 싶다면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밤새워 룸살롱이라도 쫓아다니는 게 낫지 않겠어?”
 
그러고 보니 전 전무는 어제 있었던 눈쇼를 타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쇼로 말하면 전 전무가 시킨 일이 아니던가. 사장이 눈쇼를 재밌어하기는 했어도 결코 그 쇼가 사장 한 사람만을 위한 쇼는 아니었다.
씨는 억울한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전 전무는 도리어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굴었다. 이봐! 그는 화가 날수록 목소리가 낮게 깔리는 타입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눈쇼를 가르쳐줄까?”
 
“······?”

 
“눈알을 꼼짝하지 않고 딱 한 군데만 고정시키는 거야. 딱 한 사람만 바라보는 거지. 누가 뭐라고 해도 오로지 한 사람만 바라보는 거란 말이야. 가장 어렵지만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쇼지.”
 
“네, 저는 오로지 전무님만······.”

 
변명일랑 듣지 않겠다는 듯 전 전무는 멈춰 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버렸다.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 문이 씨의 진입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었다.
 
씨는 계단을 통해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지하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세상이 지나치게 환한 느낌이었다. 눈이 부시다 못해 바늘로 찌르듯 햇살이 아프게 느껴졌다. 씨는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근무하는 개인 박물관이 씨의 회사에서 멀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전화를 받지 않는 게 이상했다.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근무시간에 웬일이야?”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던 그녀가 씨를 발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전화를 안 받기에.”
 
“자기 얼굴이 왜 그래?”

 
내 얼굴이 어떤데? 씨는 건물 출입구에 붙어 있는 스테인리스 기둥에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쑥 꺼진 눈자위하며 불룩 튀어나온 눈이 도저히 지구인 같지 않았다. 어어, 그러게.
 
“우리 그만 만나.”
 
뒤통수에 대고 내뱉은 그녀의 목소리가 어찌나 차갑던지 얼음덩어리 같은 것으로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 충격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씨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만 만나자니, 지금 농담하는 거야?”
 

그녀의 표정으로 보건대 농담 같지가 않았다. 다들 내게 왜 그러는 거야?
그녀가 또박또박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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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만나자고. 진즉 말하려고 했는데 자기가 너무 바빴잖아.”
 
“어어, 미안해, 내가 그동안 너무 소홀했지?”
 
“그게 아니야. 벌써부터 헤어지려고 했어.”

 
여자가 이렇게 나오는 데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씨는 잘못했다고 빌었다.
 
“한 번만 봐 줘. 이제부터 잘할게.”
 
그러나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으로 말하면 알량한 직장마저 놓친 주제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렇게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너만 아니었으면 그깟 눈쇼니 뭐니 광대 짓도 안했어! 마음 같아선 그 자리에서 잘잘못을 따지고 싶었지만.
 
“내가 잘할게.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할게.”
 
“쇼하지 마! 나는, 네 눈만 봐도 소름 끼쳐.”
 

문 두드리는 소리가 잦아들고 문짝이 들썩거리는 것을 보니 드라이버로 문틈을 후벼 파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빠각빠각 나무 합판 긁는 소리가 신경을 자극했다. 저런 기세라면 나무 문짝이 아니라 철문이라고 해도 금세 뚫릴 것 같았다. 자기만 빼고 모든 게 너무 쉽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왜 이곳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던 걸까. 무엇이 아쉬워서. 사람 마음이 변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것이 사람 마음인 것을. 그것을 몰랐단 말인가. 씨는 비로소 아주 오래전, 왜 취업을 포기하고 소설을 쓰려고 했는지 기억해냈다.
외국어학원에서 만난 여학생과 사랑 비슷한 것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사랑이 익기도 전, 그녀로부터 이별 통고를 받았다. 이유는 듣지 못했다.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마음이 변했다는데. 사람 마음은 왜 그렇게 쉽게 변하는 걸까? 도대체 마음이란 게 어떻게 생겼기에. 씨는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설을 쓰려고 했었지. 사람 마음에 대해 알고 싶어서.’
 
거울 속, 부끄러움 가득한 눈동자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멍청한 눈이군. 큰 것도 모자라 앞으로 툭 튀어나오기까지 하다니.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부서 이동을 통고받고, 몇 시간 후 그녀에게 이별 통고를 당했을 뿐인데 하루 사이 튀어나온 정도가 두드러져 있었다.
씨는 진열장을 열고 천천히 송곳을 집어 들었다. 손에 착 붙는 것이, 그립감이 끝내줬다. 송곳의 끝부분은 너무나 뾰족하게 갈려 있어 생김새만으로도 찬바람이 감도는 느낌이었다. 그 응축된 차가움으로 인해 송곳이 마치 사람의 마음처럼 보였다.
 
‘이런 거였는지도 몰라, 이런 게 사람 마음인지도.’
 
씨는 송곳의 날을 세워 천천히 눈알에 갖다 댔다. 문짝 부서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눈 안쪽에서 들려왔다.
이윽고 온몸이 깨지는 듯한 고통이 시신경을 타고 뇌로 전해졌다. 한쪽 뺨 위로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루아침에 의자가 사라졌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갑작스럽게 이별 통고를 들었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눈쇼를 할 때보다도 아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명의 남자가 좌우 양쪽에서 그를 붙들고 있었다.
 
“꽉 잡아!”
 
씨는 발버둥을 쳤다.
 
“당신들 누구야, 뭣들 하는 거야?”
 
그는 들것에 묶인 채 승합차에 던져졌고 그대로 한참을 달렸다. 씨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지만,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공포에 짓눌려 일부러 잠을 청하기도 했다.
 
엔진 소리가 멈추고 들것이 내려진 곳은 어두컴컴한 숲이었다. 숲과 하늘이 구분이 안 될 만큼 사방이 캄캄했는데 씨는 두 남자의 완력에 떠밀려 내팽개쳐지다시피 걸었다. 앞을 더듬고 싶었지만 두 손이 묶여 있어 씨는 밀려드는 두려움과 공포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건물의 출입구를 통과하자 기다란 복도가 나타났다. 작은 방에 던져지고 나서야 비로소 손을 움직일 자유가 주어졌다. 달랑 침대 하나가 놓여 있을 뿐 이렇다 할 집기조차 없는 방이었다.
네 벽이 흰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는데 철제 침대틀와 침대보까지 하얀색 일색이었다. 언어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할 수 없듯 색깔이 사라진 세상 역시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천사를 그릴 때, 흰옷을 입히고 흰 날개를 달아주는 것도 현실감의 소멸이 목적이 아닌가. 온통 하얀 데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씨는 자신의 존재조차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덜컹, 철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비로소 씨는 발이 땅에 닿은 느낌이었다.
잠시 후 다시 덜컹,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문에 난 작은 창이 열렸을 뿐이었다. 필통 크기만 한 창이었다. 그곳으로 플라스틱 접시 하나가 쑥 들어왔다.
접시에는 볶음밥이 담겨 있었다. 온기 없이 기름기만 번질거리는 음식이었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입에 댈 수 없는. 이어 수저가 들어왔다. 이게 배식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씨는 밥이 들어온 그곳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세상은 사각의 틀 안에 질린 듯 잘려 있었는데 누군가 수저의 끝을 잡고 있었다. 씨는 키를 낮춰 수저를 잡고 있는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아는 얼굴이었다.
 
“어, 너 상구 아냐?”
 
상구 역시 네모난 틀 속의 씨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어쩌면 씨보다 더 많이 놀랐는지도 모르겠다.
 
“어, 너야말로 여기 웬일이야? 눈이 왜 그래?”
 
씨는 자기 눈을 더듬었다. 한쪽 눈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붕대의 투박한 질감이 수형소의 벽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비로소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알 것 같았다. 그날 씨는 자기 눈을 찌르고 구급차에 실려 정신병원으로 이송된 것이다. 출입구에 배식구가 달려있는 것으로 봐서 중증 환자들만 간다는 C 병동에 감금된 것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재촉하듯 상구가 물었다. 씨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몰라, 모르겠어. 그냥 나는, 남들처럼 살고 싶었어.”
 
- ‘눈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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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1969년 경기 부천 출생.
· 인천대 국문학과, 한신대 문예창작 대학원 졸업.
· 2010년 전남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발표한 소설로 <예술가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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