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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전 날 모함한 전두환, 이젠 용서하지만…”

중앙일보 2016.09.10 00:48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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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길 예비역 준장이 9일 육군사관학교 근무 교대식을 참관한 뒤 생도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 강정현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속부관 출신,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만든 장본인, 그러나 쿠데타 모의에 몰려 낙마한 비운의 장군….

손영길(84) 전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예비역 준장)의 파란만장한 군 인생을 압축해 설명하면 이렇다. 손 전 참모장은 대통령 2명이 나온 육사 11기의 선두주자였다. 그러나 1973년 쿠데타 모의(윤필용 사건) 혐의로 군복을 벗은 이후 군부 내 지형이 달라져 그의 동기생들이 치고 올라왔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들이다. 손 전 참모장이 명예를 회복하는 데는 42년이 걸렸다. 73년 군에서 쫓겨난 그는 지난해 5월 대법원에서 재심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42년 세월에 대한 국가배상금으로 5억원이 나왔지만 그는 육사에 기탁했다. 8일 기자와 만난 손 전 참모장은 하나회에서부터 동기생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무죄 판결을 받은 윤필용 사건 때 누가 나쁜 말을 했나.
“전두환이가 그중 하나다. 내 둘도 없는 동기한테 배반당했다. 둘도 없는 동기생한테. 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속부관과 청와대를 경비하는 30대대장,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을 하며 한발 앞서 나간 게 동기들의 질시를 받았다.”
전 전 대통령과는 어떤 관계인가.
“전두환이는 나하고 둘도 없는 친구였다. 우리가 소대장, 중대장, 이럴 때는 정의로 국가에 충성을 맹세했다. 전두환이는 사나이다운 면이 있다. 그런데 (계급이) 올라가면서 사리(私利)가 생긴 것 같다. 우리로 지내다가 ‘나’가 생기고, ‘나’가 생기니 상대인 ‘너’(손영길)로 본 거지. 나는 그리 생각했는데 전두환이 그놈은 야심이 있었던 모양이지. 내게 경쟁심을 가졌던 것 같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손 장군은 양손을 소파 양쪽에 올린 채 꼿꼿한 자세였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 전 대통령도) 내게 받은 은혜는 잊지 못할 거다. 그런 친구가 배반을 했으니까. 형무소(73~74년)에 있으면서 얼마나 울분이 터졌겠나. 형무소에서 쓴 일기장을 요즘도 가끔 읽어보는데…. 난 역사나 요즘 나오는 게 진실의 몇 %일까 생각한다.”
전 전 대통령 시절 서로 만난 적은 없나.
“(5공 시절) 나는 미국 휴스턴에 가서 3년간 있다가 왔다. 돌아올 때 내가 미국에서 전두환을 만났지.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는 답하지 않은 채) ‘야, 내가 큰딸 시집갈 때도 되고 해서 돌아가야 되겠다’고 했더니 ‘내가 이제 임기도 얼마 안 남았고, 뭘 해주기가 어렵다’고 하더라. 그래서 ‘필요 없다’고 했다.”
군 사조직이었던 하나회를 만들었다는데.
“(육사 동기생인) 전두환·노태우·김복동 등과 함께 내가 소령 때(1964~65년) 만들었다. 다들 알고 있는 정치단체가 아니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국가에 충성을 다하자고 해서 하나회라고 만들었다. 그런데 내가 군대를 나간 이후 변한 것 같다. 군인은 정치를 할 수 없다. 군인 성격으로 어떻게 정치를 하나. 정치를 하려면 이중 얼굴이 필요한데. 동기 중에 두 사람이 대통령을 했는데….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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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전 참모장은 “자비를 베푸는 자에겐 적이 없다. 이젠 마음으로나마 그들을 용서해 주려 한다”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내게도 친구가 나를 배반하게 한 원인이 있을 거다. 그래도 그런 (배신) 행위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신의를 배반하는 게 어찌 친구냐. 의리의 사나이라고 하더니 말이야, 아이고 답답하다.”

글=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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