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초당파적 안보와 일자리 민주화
민생경제는 정당협치로만 가능
일사불란한 집단적 행동 아닌
독립적 헌법기관 역할 할 때 가능
공천과정을 확고하게 바꾸면
정당정치가 협치의 길 들어설 것
두 정당 대표가 쏟아낸 절실한 과제들이 과연 신3당 체제-여소야대라는 구조를 통과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까? 의욕적인 대표 연설에도 불구하고 이미 20대 국회는 협치보다는 충돌의 기미가 적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사청문회는 여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거의 반쪽으로 진행되다시피 했고, 임명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해서는 야당이 벌써부터 불신임안을 벼르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형 대통령 중심제를 받아들이면서 행정부-입법부 권력이 분점되는 현상, 즉 여소야대가 빚어내는 정치적 교착으로 몸살을 앓아온 것은 우리만의 경험은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통령제 원조 국가인 미국의 경험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역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적지 않은 충돌이 빚어지곤 했지만 (심지어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공화당의 연방 예산안 처리 지연으로 연방정부의 모든 부서가 잠정적으로 문을 닫는 셧다운이 벌어진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민주·공화 양당은 여소야대 구조 속에서도 그럭저럭 협치를 운영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적 해법의 핵심은 대통령의 설득의 힘이었다. 의회 소수당 출신의 대통령들은 상대당 의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지역구 사업의 우선 지원, 지역구에 연방예산의 우선 배정, 심지어 설득의 타깃이 되는 야당 의원 부부를 백악관에 1박2일 초대하기 등의 다양한 카드를 활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결국 20대 국회에서 주요 정당들이 협치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다 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논의해 오던 정당 내부의 분권화라는 익숙한 주제로 돌아오게 된다. 국회가 여야 정당의 극한 대립의 무대가 아니라 타협과 조정이 이뤄지는 정치의 무대가 되기 위한 핵심 조건은 바로 의원 개인들의 정책 자율성에 있다. 의원들이 당론이나 계파의 행동대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행동하고 상대당과도 협력할 수 있는 정책 자율성은 당 대표나 지도부의 약속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의원들의 행동을 가장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재선 과정(즉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 공천 과정)이 당 지도부, 대통령의 손을 떠나 유권자와 당원들에게 돌려질 때 의원들은 당론과 계파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요즘 세간의 관심은 이정현·추미애 대표가 내년까지 당의 대선후보 경선을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인가에 쏠리고 있지만, 정작 두 대표에게 지워져 있는 당장의 무겁고도 실질적인 과제는 여소야대 3당 체제 하에서 국회와 정당정치를 이끌고 나가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당론 정치로는 정당 간 타협과 협치는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여야 예비 대선후보들의 샅바싸움까지 본격화된다면 여의도의 정당정치는 마치 남미의 국가들처럼 끝없는 교착과 표류로 점철될 수도 있다.
초당파적 안보, 일자리 민주화(이정현 대표), 민생경제(추미애 대표)라는 과제들은 3당체제-여소야대 하에서는 오직 정당 간 협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협치는 의원들이 일사불란한 집단적 사고와 행동을 할 때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헌법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동안 불가능해 보이던 길을 걸어온 두 대표가 지난 10여 년간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 국회의원 후보선출 제도를 확고하게 바꾼다면 우리의 정당정치도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협치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