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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국 오가며 탈북자들 경계의 삶 그렸죠

중앙일보 2016.09.08 00:54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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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신촌의 연세대에서 만난 크리스 리. 이곳에서 문학창작과 영어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리는 “앞으로도 경계인들이 좀 더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늘 글쓰는 걸 좋아했지만 정식 작가가 될 줄은 몰랐어요. 취미삼아 시를 쓰던 제게 소설을 써보라고 권한 건 탈북자 친구들이었습니다. 심지어 5년간 모아둔 일기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어요.”

한국계 미국인 작가 크리스 리
첫 장편 『나는 어떻게 북한 사람이 됐나(How I became a North Korean)』 ?
NYT·가디언 등 해외 언론서 호평

지난달 미국 펭귄북스에서 첫 장편소설 『나는 어떻게 북한 사람이 됐나(How I became a North Korean)』를 내 주목받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크리스 리. 지난 10여 년간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탈북자 돕기 운동을 펼쳐온 경험을 녹여 탈북자들의 삶을 생생하고 충격적으로 그린 소설로 해외 언론의 호평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독재국가로부터 쉽게 도망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지닌 강력한 데뷔작”이라고 평했고, 가디언은 “리는 최상의 작가, 소설은 올해 최고 기대작의 하나”라고 호평했다.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잘 아는 세계니까 더더욱 부담감과 책임감이 따랐죠. 하지만 그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쳐 헌신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저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우연한 행동주의자(accidental activist)’가 된 셈이죠.”

소설은 2009년 평양, 김정일이 주최한 성대한 연회장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졸지에 쫓기는 몸이 된 주인공 용주가 중국 국경지대 난민촌으로 숨어들면서 시작한다. 그곳에는 용주처럼 각기 다른 이유로 북한을 빠져나온 사람들이 있다. 뱃속의 아이에게 새 삶을 선사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넌 장미는 조선족 남자에게 붙들려 화상채팅방에 갇혀 남한 사람들을 위한 스트립쇼를 하고, 미국으로 이민 간 조선족 출신 대니는 목회자의 아들이지만 민족 정체성에 이어 성 정체성 고민까지 더해진 혼란 속에 살아간다.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에서 문학창작과 영어 글쓰기 등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한 작가는 “한국에 알려진 사실과 국경 쪽 현실은 많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5일 연세대에서 만난 그는 특히 “여권·호적 등 종이 한 장이 인생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선교사나 구호단체 자체가 엄청난 권력이 될 수 있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내보다 해외에 더 알려진 그는 2012년 데뷔작인 단편집 『떠도는 집(Drifting House)』이 스토리 프라이이즈 스포트라이트 어워드·로마 프라이즈 등을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 자신과 같은 이민자들의 이야기였다. 2010년 습작용 미완성 소설을 들고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북 콘퍼런스에 참석했다가 유명 출판 에이전트인 수전 골롬브의 눈에 띄어 8군데 출판사가 경쟁을 벌였고, 펭귄그룹과 계약에 이른 뒷얘기도 있다.

이민자·기러기 아빠·탈북자 등의 모습으로 삶의 경계를 떠도는 주인공들은 결국 그의 분신이기도 하다. 4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에게 ‘역 이민(reverse immigration)’은 주요한 테마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살던 곳을 떠나온 사람들은 굉장히 강인한 사람이에요. 한곳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이상 어딜 가도 애매한 손님이거든요. 우리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담아내는 게 소설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경계인들이 좀 더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습니다.” 책은 한국어 출간도 논의 중이다.

글=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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