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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국론분열은 틀린 말…어디든 갈등 있어, 그걸 푸는 게 정치”

중앙일보 2016.09.07 01:30 종합 16면 지면보기
디지털 세상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잊혀진 질문’이 있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사는가. ‘지성과 산책’ 첫 순서로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73) 고려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정년퇴임 후 정치철학을 새롭게 공부하면서 진보와 보수 진영을 넘나들며 ‘정치 개혁’을 조언하고 있다. 최교수는 정치가 세상을 두루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다리 역할을 못하고 답답함만을 재생산하는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3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남북관계 해빙, 빈부격차 해소, 관치교육 해제다.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차세대 리더의 조건이라면서 현재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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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는 요즘 매주 금요일 민주주의 시민교육단체인 ‘정치발전소’(서울 동교동)에서 국제 정치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요즘 국론 분열이 심각해 보이는데 지식인의 책임이 큰 것 같다.
“지식인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 경향이 강해졌고 이것이 정치권력과 결합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막스 베버가 얘기한 ‘도구적 합리성’과도 연결된다. 그런데 사회 갈등이 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국론 분열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체주의사회가 아니라면, 어느 사회든지 갈등이 있고 그것을 민주적 틀에서 해결하는 것이 정치다.”
행복과 평화는 인류의 영원한 소망이다. 교수직 정년퇴임 이후 정치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행복과 평화를 위한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
“ 사회적 조건에서 보면 물질적 불평등, 법의 지배, 갈등을 다루는 정치적 능력이 삶의 질과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에 덧붙여 우리 사회에서 평화는 남북한 대립구도와 연결돼 있다. 여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문제인가.
“북한 사회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전체주의적이고 폐쇄적이고, 이념적으로 경직돼 있다. 1940년대 초 해롤드 라스웰이 폭력을 무기로 하는 정치적-군사적 엘리트들로 구성된 체제를 일컬어 ‘요새국가’(garrison state)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남북한 간의 체제 경쟁은 오래 전에 끝났다. 우리가 북한과 정반대로, 더 민주적이고 더 평화적으로 나아가면 북한의 태도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북핵 미사일 위협이 문제 아닌가.
“북한은 생존의 수단으로 핵무기를 생각하고 있다. 핵무기 문제는 핵무기대로 다루면서 북한 체제를 안심시키는 뭔가를 우리 쪽에서 병행하면서 핵무기가 무용하게 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필요하다. 우리의 안보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대학이 지식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교육 문제는 어떻게 보나.
“교육부의 관료적 통제를 지적하고 싶다. 산학협동의 틀에서 청년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학을 과격하게 구조조정하려고 한다. 자연계와 경제·경영 분야는 숫자를 늘리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줄이는 방향이다. 이것이 대학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또 학문을 평가하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식이 교육부 지침에 의해 이뤄지는데 모두 양적 지표다. 단기간 숙제하는 식으로는 좋은 논문이 나올 수 없다. 정부가 정치적 기준으로 대학 총장 임명에 개입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역사를 정신교육 하듯이 가르칠 수는 없다.”
나라 밖을 살펴보면 미국의 트럼프 현상,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일본의 우경화 등 세계 강국들에서 자국 중심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두 나라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주도했는데, 기존의 주류 정당들이 그 부작용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이 가져오는 정치적, 사회적 반작용이다. 그것이 지금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무슨 뜻인가, 미국 대선부터 짚어 보자.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세계 경제의 발전과 성장을 가져왔다. 중국의 산업화도 사실상 그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부작용 또한 크다. 빈부격차, 고용문제, 청년실업, 사회복지의 약화, 자유무역의 부정적 효과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현상’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미국의 공화, 민주 두 주류 정당이 점차 차이가 없어졌다. 금융개혁과 고용 문제, 이민 문제 등을 양당 지배체제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자 기존 정당 밖에서 포퓰리즘의 형태로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트럼프는 작은 정부, 자유시장, 자유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레이거노믹스, 즉 신자유주의 대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한 방식으로는 미국경제를 다시 부강하게 하고, 백인 노동자를 구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 백인 노동자 계층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으로 부터의 탈퇴)도 트럼프 현상과 거의 비슷하다. 대처리즘을 기반으로 금융산업과 고기술 지식집약 산업이 영국 경제를 끌고 가면서 빈부격차가 커지고 고학력이 아닌 백인노동자들의 고용기회는 줄어들었다. 전통 백인노동자 계층은 브렉시트의 핵심적인 지지층의 하나였다.”
일본의 우경화는 어떤가.
“미국이 혼자 힘으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에는 경제력과 정치적, 군사적 헤게모니에 있어 한계가 크기 때문에 일본이 그 동맹국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일본이 재무장을 추구하는 데는, 일본 자신의 문제 못지 않게 뒤에는 미국이 있다. 한반도와 동지나해역의 힘의 관계는 냉전시기 힘의 관계의 정렬과 비슷해지고 있다. 이 구조에서 한국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우왕좌왕하고, 고립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드 배치 문제는 이 모순을 너무나 분명히 표출시키는 이슈다.”
사드 문제 해결책은 뭐라고 보나.
“사드 배치는 하지 않았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면 너무 빨리 결정했다. 이 정도의 중대사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18세기 프랑스 정치철학자 몽테스큐는 ‘부드러운 상업(doux commerce)’이라고 말했는데, 남북한 관계를 푸는데 경제관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열쇠라고 본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리더는 어떤 모습일까.
“대북 문제의 평화지향적 정책, 사회경제적으로 복지를 확대하고, 빈부 격차를 줄이는 문제, 교육정책에서 대학과 학문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확대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잘 이해하고 개선할 수 있는 비전을 가진 리더가 나왔으면 좋겠다.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 정책의 차이가 없다면 정권이 교체돼도 별로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한동안 마키아벨리와 막스 베버를 공부하던 최 교수는 최근 독일 철학자 헤겔 책을 다시 본다고 했다. 80년대에도 그는 헤겔을 읽었다. 당시 헤겔 강독 모임이 좀 유명했는데 김우창·정문길·김용옥 교수가 멤버였다. 그때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으며 변증법의 의미를 탐구했었다. 요즘 보는 책은
『법철학』이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였던 독일이 선진 문물을 도입해 자기 것으로 소화해가는 문제를 헤겔은 고민했었다고 하는데, 최 교수의 화두도 거기에 맞춰있다.

글=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정치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남북관계·빈부격차·관치교육
세가지 과제 해결할 리더 나와야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터뷰 전문(全文)은 중앙일보 온라인(joongang. joins.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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