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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김진태 전 검찰총장

중앙일보 2016.09.07 00:27 종합 3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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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전 검찰총장

순임금 때 두 열녀의 피맺힌 대나무요

진시황 때 대부 벼슬 받은 소나무니

비록 마음 아프고 영화로운 게 다르지만

어찌 쓸쓸해하거나 흥분할 필요까지 있겠는가

(虞時二女竹 秦日大夫松 縱有哀榮異 寧爲冷熱容)

- 저헌 이석형(1415∼1477), ‘영회(詠懷)’에서

삶은 매 순간의 선택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


조선 초기의 명신 저헌(樗軒) 이석형이 전라감사로 있을 때였다. 하루는 익산으로 초도순시를 갔는데, 그때 마침 흉참한 기별이 날아들었다. 성삼문 등 집현전 동료들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반대편에 선 신숙주·정인지 등은 영달했다는 것이었다. 관아에 운집한 모두가 일제히 그를 응시했다. 마치 당신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묻는 듯이.

그때 저헌이 동헌에 써 붙인 글이 이 시다. ‘이여죽(二女竹)’은 너무도 가슴 아픈 결말이고, ‘대부송(大夫松)’은 말할 수 없이 영광된 일이어서 슬프거나 기쁜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느 쪽이든 스스로 선택했다면 그만이지, 뜻대로 이루어졌다고 기뻐 날뛰거나, 그렇지 못하다고 죽을 상을 지을 게 뭐 있느냐는 것이다. 인생사 선택은 어렵다. 엄청난 책임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지식인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매 순간 선택하고, 다른 한쪽으론 포기해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그 결과까지 뜻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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