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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미국, TPP 해봤자 중국을 막을 수 없다

중앙일보 2016.09.07 00:21 종합 3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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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미 경제전략연구소장(ESI)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해 온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이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됐다.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 여당인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까지 ‘TPP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오바마는 몇 달 남지 않은 임기 안에 TPP가 의회에서 통과되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몇 주 안에 오바마는 의회를 찾아가 TPP 통과를 촉구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이 연설에서 오바마는 자신이 TPP를 밀어붙이는 이유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작정이다. “돈 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지켜줄 무기이기 때문에 TPP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모든 대통령은 안보를 정치적 카드로 이용한다. 오바마도 마찬가지다. TPP가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다 안보 카드 덕분이다. 그러나 TPP가 미국의 안보에 진정으로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거의 없다.

TPP 초기 단계였던 2009년 나는 백악관에서 TPP의 유용성을 놓고 관리들과 토론을 벌였다. 나는 당시 TPP 참여 의사를 밝혔던 7개국 중 브루나이·뉴질랜드·말레이시아·베트남을 제외한 3개국이 이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사실을 지적했다. 남은 4개국은 경제 규모가 워낙 작아 미국이 무역협정으로 얻을 이득이 미미했다. 게다가 7개국 모두 아시아·태평양에서 자유무역을 추진하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원국이었다. 그런데 굳이 또 하나의 자유무역협정인 TPP를 체결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나는 물었다.

그러자 백악관 관리들은 “결국은 정치적 이유”라고 답했다. 중국이 미국을 밀쳐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할지 모르니 TPP로 방파제를 쌓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아태지역에서 미국이 존재감을 보일 기구가 없다면 중국이 그 틈을 타고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게 뻔하다고 관리들은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미국은 아태지역에서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 미 7함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70년 넘게 아태해역을 장악해 왔다. 10만 명에 달하는 미 육군도 같은 기간 아태지역에 주둔해 왔다. 또 미국은 만성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대규모 교역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시아 국가들이 불안을 느낀다면 굳이 TPP를 체결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으리라고 나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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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TPP를 체결하면 중국이 국제교역에서 주도권을 잡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이 TPP 협상을 개시했을 때 중국은 TPP에 참여한 7개국은 물론 한국·인도·태국·인도네시아 등과 역내포괄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을 성사시켰다. 이들 아시아 국가들은 TPP 협상 와중에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기꺼이 참여했다. TPP로는 중국이 세계무역의 룰을 변경하는 걸 막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히 확인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미국이 더 이상 아시아 국가들에 이익을 안겨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엔 미국은 무역협정과 동맹조약으로 엄청난 힘을 휘둘렀다. 미국과 동맹을 맺은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안보를 보장받고 거대한 미국 시장에 진출해 돈을 벌 수 있었다. 미국 기업들의 기술과 공장도 이전받았다. 엄청난 이득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좋았던 시절은 갔다. 미국 시장은 이제 거의 모든 국가에 열려 있다. 미국의 기술과 지적 자본은 여전히 첨단을 달리지만 과거처럼 독점적 수준은 아니다. 한때는 세계의 모든 무역선이 미국을 향했지만 지금의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일부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말단에서 최종 소비자의 역할에 머물러 있다. 미국은 글로벌 인프라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 인프라에도 투자를 게을리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은 최대의 채무국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이 맡은 역할도 생산과 수출이 아니라 차입과 소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게다가 미국은 차입과 소비에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아니었다면, 또 미 재무부가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없었다면 미국은 이미 오래전에 파산했을 것이다.

중국은 어떨까? 현재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대국이다. 외환보유액이 4조 달러에 달한다. 또 베이징은 중국과 중동·유럽·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거대한 비단길을 만들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수조 달러를 투자키로 하고 실행에 들어갔다.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또 중남미와 아프리카·중동에서 중국은 최대 투자국으로 큰소리를 치고 있다. 호주와 유럽 국가 상당수에서도 중국이 투자한 돈이 가장 많다. 이렇게 날로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오바마의 주장은 백번 천번 옳다. 그러나 중국의 생산성과 투자 의지를 따라잡기 위해 힘쓰는 대신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는 TPP 같은 무역협정으로 중국의 부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대단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미 경제전략연구소장(ESI)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 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지난달 22일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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