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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내비게이션] 수학·화학·경영학·본초학 융합 교육…스페셜리스트를 기른다

중앙일보 2016.09.07 00:02 Week& 4면 지면보기

청소년의 관심이 높은 학과를 소개합니다.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늘면서 진학을 희망하는 학과에 대한 탐구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은 여전히 대학의 명성,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곤 합니다. ‘열려라 공부’에서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돕기 위해 학과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관련 진로가 무엇이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0회는 약학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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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발전하고 삶의 질을 중시하는 이들이 늘면서 건강·의료 관련 산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약학은 이런 변화에 가장 민감한 분야다.

고도의 전문성 요구, 2+4 체계로 커리큘럼 운영
학업량 많기로 유명…한 학기 전공 10과목 소화
매주 4시간 실험 수업, 병원·약국·제약회사 인턴십도

병원·약국은 물론 식약처·복지부와 같은 공공기관, 제약회사·바이오벤처·화장품산업에서도 약사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약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약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약대에선 무엇을 배우는지, 졸업 후 어떤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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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하헌주 약학과 교수(가운데)와 약대 학부, 대학원생들이 31일 이화여대 약학관 실험실에서 쥐를 이용해 약물 실험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가영, 조아름(대학원생), 하 교수, 조정민, 한지혜(학부) 학생.

전 세계 제약시장은 2003년 500조원 규모에서 올해 1400조원대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양대 수출상품인 자동차와 반도체의 세계시장 규모를 합친 것(약 1000조원)보다 크다. 제약산업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산업으로 꼽힌다. 최선 이화여대 약학과 학과장은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데 보통 10~15년이 걸리고, 성공 확률도 100개 중 1개로 극히 낮다. 하지만 성공하면 뒤따르는 부가가치는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2011년 미국의 제약회사 화이자가 개발한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는 그 해에만 전 세계에서 13조8000억원을 벌어들였다.

제약 분야의 원천기술은 한 나라의 경제를 지탱할 만큼 커다란 파급효과가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스위스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7만8179달러)이 세계 2위인 스위스의 수출액 중 약 30%는 로바티스·로슈 등 글로벌 제약회사의 몫이다.

한국은 세계 제약시장에서 주변국에 머물러왔다. 1990년대까지 국내 제약회사들은 원천기술 확보보다 특허가 만료된 외국 제약사의 약 성분을 분석해 유사한 약을 생산하는 데 주력했다. 오랜 기간 글로벌 신약 시장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스위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국내 제약업계도 연구·투자를 늘리고 있고, 성과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한미약품은 8조원 대에 이르는 신약 기술 수출 계약에 성공했다. 이봉진 서울대 약대 학장은 “병원·약국 등 임상 분야뿐 아니라 신약 개발과 제조·유통·품질관리·수출입 등 약물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약사를 필요로 한다. 약대는 그런 산업계의 요구에 부응해 임상부터 연구 개발까지 약물 관련 스페셜리스트를 길러내는 학과”라고 소개했다.

수천 종이 넘는 약물을 다루고,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약사에겐 고도로 전문화된 약물 지식이 요구된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으로서의 엄격함뿐 아니라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연구 능력까지 약사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은 더 높아지는 추세다.

이런 변화에 맞춰 약대는 한층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마련했다. 약대는 2011년부터 타 학과에서 대학 2년 과정을 마친 뒤 약대 3학년으로 편입해 4년 동안 약물 관련 전공 지식을 배우는 ‘2+4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2년 동안 교양과 수학·과학 기초 지식을 배우고, 약대에 편입한 뒤 약학 전공 과목을 전문적으로 배운다. 김남중 경희대 약학과 학과장은 “약대는 편입 후 4년 동안 전공 과목만 공부해도 빠듯할 정도로 배워야할 내용이 워낙 많다. 편입 전 2년 동안 수학·과학 분야의 기초 지식을 충분히 습득해야 약대 교육과정을 따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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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학은 융합적인 학문이다. 인체 구조와 병의 발생 원리를 알려면 면역학·세포학·병리학·생리학·유전학·해부학에 대한 지식이 기본이다. 약물의 제조·개발 과정을 이해하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합한 용법·용량을 계산하려면 생화학·유기화학·약화학·약품합성학·약제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물리·수학 분야에 대한 지식도 요구된다. 서울대 약대 5학년 안성진(23)씨는 “약의 모양·밀도·강도를 결정하는 제형은 약의 흡수 속도와 효능에 큰 영향을 끼친다. 약학물리에서는 수학·물리 공식을 이용해 제형에 따른 흡수율을 계산한다. 약학을 배우려면 화학·생명과학은 물론 수학·물리까지 다방면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약국 경영에 필요한 경영학적 지식, 약품 관련 법과 제도나 의약분업 등 공중보건정책 등 경영·경제·법 관련 공부도 필수다. 최근엔 동·식물에서 추출한 물질을 응용한 천연물 신약, 치료용 단백질 등 바이오 의약품 시장이 커지면서 본초학·한약제제학 등 동양 의약품에 대한 연구도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최선 학과장은 “약대하면 병원·약국에서 근무하는 임상 약사만 떠올리는데, 실제로 약학은 신약 개발에서 환자에 투약 될 때까지 약물의 생산·유통·소비의 전 과정을 다룬다. 때문에 공부할 것도 그만큼 많다”고 설명했다.

약대는 학업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한 학기에 보통 20학점 안팎으로 10개 내외의 전공 과목을 소화한다. 이화여대 약대 6학년 한지혜(26)씨는 “고혈압 약만 해도 수십 종에 이르고, 각 약마다 수십 가지 성분의 구체적인 효능과 부작용까지 모두 공부해야 한다. 게다가 인종·체형처럼 약 효능이 달라질 수 있는 유전 정보,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까지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약대는 약사 국가고시의 준비 과정이기 때문에 전국 35개 약대의 커리큘럼은 비슷하다. 4년 간의 교육 과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약의 조제와 복약 지도 등 임상 분야, 신약 개발에 필요한 연구 분야, 약물 관련 각종 인·허가 법규와 품질관리 기법을 익히는 보건정책 분야로 구분된다.

모든 분야에서 실험·실습이 강조된다. 매 학기 약학실습 시간을 따로 둬 매주 최소 4시간 이상 실험 수업을 병행한다. 방학 중에는 교수 연구실을 개방해 학생들이 실험 기자재 사용법 등 기초적인 연구 기법을 배우고 최신 학계의 연구 동향을 공부하는 연구실 인턴십을 진행한다. 김남중 학과장은 “3학년으로 입학하면서부터 바로 교수 연구실에 참여해 관심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설명했다. 안성진씨는 “약대 내 학술·연구 동아리의 연구 활동도 활발하다. 방학뿐 아니라 학기 중에도 연구실에서 교수님께 소규모 지도를 받으면서 관심 분야를 연구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3학년부터 5학년까지 이론 공부와 연구 실습을 병행하며 약학 지식을 습득한다. 실무 중심 교육은 6학년 때 빛을 발한다. 다른 이공계 학과와 달리 약대는 1년 간의 현장 실습을 의무화하고 있다. 6학년 1학기에는 15~17주 동안 병원·약국·제약 회사를 두루 경험하는 인턴십을 진행한다. 대개 병원(10주), 약국(5주), 제약회사(2주)로 출퇴근하면서 하루 8시간 이상 실습한다.

병원·약국에서는 환자 처방전에 맞춰 주사·가루약·알약 등 약물 조제와 복약 지도를 실습한다. 제약회사에서는 영업·마케팅 업무부터 신약 개발을 주도하는 연구소, 공장의 품질 관리 공정 등을 경험한다.

6학년 2학기에는 1학기 중 인턴십을 했던 분야 중 자신의 진로·적성에 맞는 곳을 골라 15주 가량 집중적으로 실습한다. 대학원 진학 등을 통해 연구자의 길을 걷고 싶은 학생은 교수 연구실에서 관심사에 맞춰 장기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다. 한지혜씨는 “1년 동안 다양한 현장실습을 하면서 진로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약대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해외 인턴십 기회도 많은 편이다. 이화여대는 매년 여름방학 동안 30여 명의 학생을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부와 같은 국제기구나 미국·캐나다·대만의 병원·약국·연구소·제약사에 5~15주를 파견하고 있다. 매년 2~3차례 씩 교수 인솔하에 10일 일정으로 유럽의 국제기구와 글로벌 제약사를 탐방하는 현장 교육도 활발하다. 최선 학과장은 “선진화된 의료 시스템을 배우면서 글로벌 감각을 익히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경희대는 매년 8월 2주간 경희대 약대생과 일본 호쿠리쿠대, 중국 심양대 학생이 함께 모여 동·서양의 최신 약학을 배우는 한·중·일 학점 교류사업을 진행한다. 서울대는 일본의 대표 제약사 아스텔라스제약사와 미국 워싱턴의 하워드대 대학병원에 우수 학생 2~3명을 파견하고 있다. 특히 미국 LA 일대 약국에서 진행하는 해외약국 실습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 이봉진 학장은 “의약분업 선진국인 미국의 의료 현장을 경험해보면서 약사로서 갖춰야 할 전문성과 직업 윤리 의식을 익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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