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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러시아가 불 붙인 유가…찬물 끼얹는 이란

중앙일보 2016.09.07 00:01 경제 3면 지면보기
훈풍이 일었다. 기대감에 시장도 오름세를 탔다. 2년여간 저가의 늪에 빠져있는 석유 시장 이야기다. 바람은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불었다.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꼽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2위 러시아의 에너지 장관이 5일(현지시간) 유가회복을 위해 손을 잡기로 했다고 밝혔다.

산유량 1·2위 동결에 합의했지만
‘증산 고수’이란 빠지면 효과 미미
“오름세 유가, 장밋빛 전망은 일러”

러시아의 알렉산더 노박 에너지 장관은 공동 회견에서 “올 하반기 언제라도 (산유량) 상한선을 설정하는 데 합의할 준비가 돼있다. 양국은 산유량 동결이 가장 건설적인 도구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칼리드 알 팔리 사우디 에너지 장관도 “공동조치를 취하기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논의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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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보가 전해지자 유가는 상승세를 탔다. 북해산 브렌트유(10월물) 값은 소식이 전해진 이날 오후 4시 배럴당 46.95 달러에서 한때 49.34달러까지 치솟은 뒤 전일 대비 1.7% 오른 47.63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유가는 6일에도 올랐다.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값은 장중 한때 2%나 올랐다. 이달 26일 알제리에서 사흘간 열리는 OPEC 비공식 회담에서 모종의 합의안이 나올 수도 있다는 낙관론이 상승을 뒷받침했다.

연일 이어진 유가상승 흐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장밋빛 전망을 하긴 이르다고 말한다. 비관론의 중심엔 이란이 있다. 이란은 올 1월 경제제재가 해제되면서 산유량을 늘려왔다. OPEC 회원국으로 10.7%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이란은 “경제제재 이전 수준의 점유율을 회복할 때까지는 생산을 줄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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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 회원국들이 동결에 뜻을 모은다 할지라도 이란이 빠지면 원유가격 상승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것이 시장의 분석이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산유국들이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 빠졌다”고 묘사했다. 모두가 산유량을 줄이면 가격이 상승해 전부에게 이득이 돌아가지만 한 곳이라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시티그룹은 “이란이 OPEC가 취할 조치의 장애물로 남게 될 것”이라며 “OPEC가 합의를 본다 할지라도 시장 균형에 실제 영향을 미치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아예 이번 사우디-러시아 간 합의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표했다. 유진 와인버그 코메르츠방크 원자재부문 대표는 “양국이 말하는 산유량 동결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경쟁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표면적으론 손을 잡았지만 실제로 생산량을 동결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OPEC 국가들의 산유량 추이다.

저유가 탈출을 위해 끊임없이 감산 회의를 열어왔지만 지난 8월 기준 OPEC 국가들의 하루 생산량은 사상최고치인 3369만 배럴을 기록했다. 산유량을 최대치로 높여놓은 상황에서 ‘동결’을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OPEC가 이달 말 합의안을 내놔도 생산원가가 40달러 이하인 셰일오일과 셰일가스를 갖고 있는 미국이 동조할지도 미지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월에도 산유량 동결에 합의했지만 불발로 끝난 것을 언급하며 “사우디와 러시아의 이번 합의가 원유시장 펀더멘털에 끼칠 영향은 적다”고 보도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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