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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하세요] ‘4전5기’ 홍수환의 상대 카라스키야 왔다

중앙일보 2016.09.06 00:46 종합 27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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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1월 27일, 파나마의 뉴 파나마 체육관에 모인 1만6000여 명의 복싱팬들은 자국의 복싱 영웅 엑토르 카라스키야(56·사진)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인 홍수환(66)은 쓰러지고 또 쓰러지면서도 포기할 줄 몰랐다. 17세의 나이에 11전 11KO승을 자랑하던 카라스키야가 홍수환의 왼 주먹에 쓰러지자 체육관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홍수환이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페더급 초대 타이틀을 거머쥐며 ‘4전 5기’의 복싱영웅으로 탄생한 순간이었다.

1977년 챔프전서 3라운드 KO패
4년 뒤 은퇴해 시장 거쳐 국회의원
“홍수환은 나의 친구” 9일 만나

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카라스키야는 “나를 향해 ‘일어나’를 외치던 관중의 함성이 오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파나마 국회의원으로 국회 교통·통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초청으로 전날 방한했다. 그는 오는 9일 자신의 상대였던 홍수환과 만날 예정이다. 98년 국내 방송국의 다큐 촬영차 파나마를 방문한 홍수환과 재회한 지 17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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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홍수환(오른쪽)과 카라스키야의 경기 장면.

당시 다 잡은 승리를 놓치고 눈물을 훔친 카라스키야는 시간이 날 때면 휴대폰으로 당시 경기 영상을 찾아본다고 했다. 그는 “3라운드가 되자 홍수환이 사자처럼 돌진해 내 복부를 가격했다.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카라스키야는 4년 뒤인 81년 링을 떠났다. 그는 “그 경기에서 패한 뒤 우울함과 무력감이 찾아왔다. 복서로서 전의를 상실한 셈이지만 오히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그는 이후 정계에 입문해 시의원과 시장을 거쳐 국회의원이 됐다. 현역 시절처럼 건장한 체구를 자랑하는 그는 “세 달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20대 킥복싱 선수와 대결을 펼쳤는데 2라운드 만에 KO시켰다. 하루 2시간씩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카라스키야는 “홍수환은 정말 철저하고 끈질기게 노력하는 복서였다. 4번이나 쓰러지고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98년 만남 당시 홍수환을 알아본 파나마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외쳤고 나는 ‘나의 친구’라고 이야기해줬다”며 “링 위에서는 치열하지만 적을 만들기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다. 공이 울리면 서로 껴안고 격려한다. 복싱은 친구를 만들어 주는 스포츠”라고 말했다.

글=김원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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