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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TV보는 남자] 공감 백배! 우리 곁의 ‘청춘’에게 고함

중앙일보 2016.09.0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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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게 당길 때가 있다. 매운맛 혹은 짠맛이 필요한 순간처럼 말이다. 이건 비단 음식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강렬한 액션이 쾌감을, 섬뜩한 공포가 스릴을, 달콤한 로맨스가 설렘을 준다면 ‘청춘 드라마’는 여름날 더위마저 날리는 청량음료 같은 장르다.

TV 드라마 '청춘시대' 깊이 읽기

유난히 길었던 폭염 속에 이렇듯 상큼한 드라마가 우리에게로 왔다. 8월 27일 종영한 TV 드라마 ‘청춘시대’(JTBC)가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이 드라마에는 청량함을 넘어 인생의 깊은 맛까지 진하게 우러났다.

TV 드라마 ‘연애시대’(2006, SBS)의 박연선 작가와 ‘12월의 열대야’(2004, MBC)의 이태곤 감독. 두 사람은 각각 ‘이혼’과 ‘불륜’이라는 자극적 소재를 섬세한 만듦새로 풀어낸 바 있다. 소재의 선정성을 필력과 연출력으로 뛰어넘은 것이다. 특히 박 작가는 유연하고 기발하게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해 왔다.

코믹 수사극 ‘얼렁뚱땅 흥신소’(2007, KBS2), 교정 미스터리 ‘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화이트 크리스마스’(2011, KBS2) 등이 그 예다. 이 감독 역시 ‘네 이웃의 아내’(2013, JTBC)와 ‘사랑하는 은동아’(2015, JTBC)에서 안정적인 연출을 보여 줬다. 이들이 호흡을 맞춘 ‘청춘시대’는, 두 사람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기분 좋게 충족시킨 작품이다.

여기에 신선한 배우들의 조합이 더해졌다. 이야기를 지탱하는 무게 중심이었던 한예리의 단단함, 한복을 벗고 맞춤옷을 입은 듯한 박은빈의 자유로움, ‘아이돌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를 가뿐히 떼어 낸 한승연과 류화영의 매력 그리고 신인 배우 박혜수의 풋풋함. 이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 ‘청춘시대’는 균형 잡힌 드라마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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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서 청춘은 혼자 울지 않는다

‘청춘시대’는 오랜만에 부활한 캠퍼스 드라마이자 청춘 드라마다. 불어로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셰어 하우스 ‘벨 에포크(Belle Epoque)’.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곳에 사는 20대 여성들이다.

밤낮 없이 아르바이트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윤진명(한예리), 나쁜 남자와의 연애 때문에 눈물 마를 날 없는 정예은(한승연), 걸쭉한 입담에 귀신까지 보는 ‘모태 솔로’ 송지원(박은빈), 끔찍한 사고 이후 미래 따윈 생각하지 않는 강이나(류화영), 여기에 신입생 유은재(박혜수)가 합류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응답하라 1994’(2013, tvN)처럼 ‘고교 졸업’과 ‘대학 입학’이라는 규격화된 관문을 통과한 이들이 한 공간에 모여 살게 된 것이다. 다만 시대가 달라져 하숙집은 셰어 하우스로 바뀌었고, ‘하숙집 엄마’의 역할과 존재감은 미미해졌다.

‘청춘시대’의 다섯 주인공은 마치 ‘인사이드 아웃’(2015, 피트 닥터·로날도 델 카르멘 감독) 속 캐릭터처럼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고 좌절과 용기가 교차되는’ 날것의 감정을 서로에게 드러낸다.

극의 초반부에는 낯선 이와 함께 살 때 느낄 법한 일상적 고충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어색한 일이다. 타인과 마음을 나누려면 포기해야 할 것도 많고 이해해야 할 것도 많기 때문이다. ‘청춘시대’는 이 모든 과정을 멋 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려 낸다.

‘모든 면에서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순간, ‘청춘’이라는 계절은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므로 은재의 셰어 하우스 입성은, 그의 인생과 인간관계에 또 다른 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처음에 ‘나만 힘들 거야, 내가 가장 많이 참고 있어’라고 생각하던 은재.

하지만 곧 나만 힘든 것이 아님을, 모두가 조금씩 참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다면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그때그때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도 배우게 된다. 그래야만 갈등은 해결될 수 있으며,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상대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다. 한집에 사는 청춘들은 그 자체로 대안 가족이며, 이 드라마는 가족애보다 진한 그들의 우정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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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현실적인 청춘 스케치

‘청춘시대’는 다섯 주인공이 자기 내면의 진짜 얼굴을 발견해 가는 성장담이다. 진명은 말한다. “(너는 네 얼굴을) 직접 본 적 없잖아. 그러니까 거울이 진짜인지 사진이 진짜인지 넌 모르는 거고.” 진명의 말에 은재가 덧붙인다. “그러고 보면 내 얼굴을 나만 못 보는 거잖아요. 그거 왠지 무섭지 않아요?”

원래 스스로에게 솔직하기가 가장 어려운 법. 이 드라마 속 청춘들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조심스럽게 자신의 진짜 얼굴에 다가간다. 특히 상반된 삶을 살아가는 진명과 이나의 관계가 흥미롭다. 어렵게 사는 것을 받아들인 진명과 쉽게 사는 쪽을 선택한 이나. 둘은 전혀 다르지만 어쩐지 닮은, 거울 같은 존재다.

고통의 종류야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죽도록 힘든 시간을 통과했으니까.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청춘시대’는 그들 각자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극적 긴장감으로 활용한다. 발랄한 청춘물에 서늘한 미스터리 코드를 녹여 이야기의 축으로 삼았다. 장르 각각의 전형적인 매뉴얼에 갇히지 않는 구성 방식이 신선하다.

이러한 장르적 결합은 어느 날부터 지원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신발장 귀신’ 에피소드에서 비롯된다. 함께 살아도 함부로 꺼내 보일 수 없는 봉인된 감정처럼, 신발장에 꽁꽁 숨겨 놓은 나만의 비밀.

그 허구적 존재 덕분에 다섯 주인공은 애써 외면하고 피하기만 하던 자신의 비밀과 직면하게 된다. 이 설정은 막판 반전을 위한 장치라기보다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맥거핀으로 기능한다. ‘귀신’이라는 설명 불가능한 타인마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로 설득력 있게 사용된 것이다.

이 드라마의 무기는 지독한 현실감이다. 우리 곁의 청춘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사건들이 갈등의 원인이다. 누군가는 지나왔고 누군가는 통과 중인, 아프지만 눈부신 나날들.

원래 극은 현실을 기반으로 재가공되는 경우가 많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아님에도 또다시 그 세계에 빠져드는 까닭은, 재가공된 현실에서 느껴지는 공감과 위로 때문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청춘시대’의 리얼리티는 칭찬할 만하다. 헉헉대며 달려오는 주인공을 버스가 기다려 줄 리 없고, 위기의 순간에도 근사한 왕자님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그 모든 판타지를 대신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 현실에는 흔하지만 정작 드라마에는 드물었던 청춘의 이야기. ‘청춘시대’의 등장인물 중 어느 누구 하나 마냥 착해 빠지거나 못되 처먹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를 100%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그러하듯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 나갈 뿐이다.

또 하나의 칭찬을 덧붙이자면, ‘청춘시대’는 섣부르게 가치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스폰서를 두고 여대생 행세를 했던 이나에게도 “그렇게 살지 말라”며 훈계부터 내지르진 않는다. 또한 레스토랑 상사의 불합리한 행동을 묵묵히 감내하는 진명의 모습도 일단 지켜볼 뿐이다.

나쁜 남자와의 연애로 힘들어하는 예은에게도, 서투른 첫사랑에 안절부절못하는 은재에게도, 소개팅에서 번번이 퇴짜 맞는 지원에게도 충고보다 응원을 건넨다. 사실 개인이 선택한 삶에서, 그 곁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최선’이란 그런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 것. 청춘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 정재은 감독)에서 “난 네가 도끼로 사람을 찔러 죽여도 네 편이야”라고 말하던 태희(배두나)를 볼 때의 울컥함을 이 드라마에서도 느꼈다.

술에 취한 이나가 평소 앙숙처럼 티격태격하던 예은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적이 있다. 그것은 마음고생 심한 연애를 끝내길 바라는 친구의 진심 어린 행동이었다. “지가 얼마나 괜찮은 애인지도 모르고…”라며 주정하던 이나의 얼굴. 그 진심을 마주한 밤은, 예은도 우리도 잊지 못할 것이다.

글=진명현. 영화사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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