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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주문할게 배달 좀…” 연세대서도 단톡방 성희롱

중앙일보 2016.09.03 01:13 종합 8면 지면보기
“첫 만남에 XX해버려.” “여자 주문할 게 배달 좀.” 연세대 총여학생회가 1일 공개한 이 학교 남학생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단톡방) 대화 내용이다. 이 학생회는 “모 학과의 실제 대화를 각색 없이 발췌한 것”이라며 중앙도서관 정문 앞 기둥에 카톡 대화 내용을 담은 대자보를 붙였다. ‘남톡방(남자 카톡방)’이라는 이름의 이 대화방에는 3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김모(23·여)씨는 “같은 학과 동기나 같은 수업을 듣는 남학생들이 나를 놓고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에서 이런 일이 끊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대학가 잇단 SNS 언어 폭력 논란
폐쇄공간으로 여겨 도넘은 표현
퇴폐농담 당연시 남성문화도 원인
“카톡 대화도 음란성 강하면 성범죄”

지난해 말 국민대 단톡방 사건을 시작으로 대학생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성희롱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월 ‘고려대 카카오톡 대화방 언어 성폭력 사건 피해자 대책위원회’는 “술집 가서 X나 먹이고 자취방 데려와” 등 이 학교 남학생들의 성희롱 발언을 담은 카톡방 대화를 대자보를 통해 공개했다. 여기에는 “지하철에서 도촬 성공함” 등 범죄와 관련된 내용도 있었다. 논란이 일자 고려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29일 가해 학생 일부의 입학연도와 단과대학 고유번호, 성(姓) 등을 총학생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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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4일 경희대에는 익명의 대자보가 붙었다. 지난해 10월 이 학교 국제캠퍼스의 한 동아리 소속 남학생들이 대화방에 없는 여학생들에게 성적 모멸감을 주는 대화를 해 1∼3개월 정학 등의 징계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달 서울대 인문대 남학생들의 SNS 성희롱 사건도 이 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를 통해 알려졌다. “배고픈데 먹을 게 없냐”는 질문에 “***(동기 여학생 이름) 먹어”라고 답하거나 “과외 요청 들어온 초등학교 5학년은 로린이(로리타+어린이)”라고 표현했다.

전문가들은 SNS라는 공간이 갖는 폐쇄성과 부실한 인성 교육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많은 사람이 SNS를 감정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긴다. 이 때문에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는 것보다 SNS 대화에서 더욱 퇴폐적이거나 혐오 성향을 보이는 언어를 구사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대학생 이전인 중·고등학생의 언어생활만 봐도 ‘X나’ 등 욕이 수시로 입에 오르내린다. 학생들이 대학생 정도로 성장하면 이런 습관과 태도를 버려야 하는데 집과 학교에서 인성 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어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성들의 왜곡된 연대의식과 성문화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최란 사무국장은 “남성이 여성에 대한 성적 농담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는 식의 왜곡된 성문화가 이런 문제를 낳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사무국장은 “남성들의 연대의식을 확인하는 방법이 이런 집단 성희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끼리니까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교(변호사) 세종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SNS 성희롱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면 명예훼손과 모욕에 해당된다. 음란성이 강한 표현이 있으면 성범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채승기·윤정민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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