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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외교부 폐쇄적…마음 열어 민간외교 적극 활용해야

중앙일보 2016.09.03 00:44 종합 1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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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ICAPP 사무총장은 “역내 정치 지도자들의 교류를 확대해 한국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다”며 “우리가 사무총장을 계속 맡기로 양해했으니 정부가 확실히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2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푸트라 세계무역센터. 아시아 36개국에서 온 86개 정당 대표들이 모였다. 한국에서도 이혜훈·박인숙(새누리당)·박영선·최명길·권칠승(더불어민주당)·이상돈(국민의당)·노회찬(정의당) 의원, 황진하 전 의원 등이 참석했다.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 9차 총회다.

정의용 ICAPP 상임위 공동의장 겸 사무총장

이날 가장 바쁘게 움직인 사람이 정의용(70) 전 의원이다. ICAPP 상임위원회 공동의장 겸 사무총장을 맡아 10년 이상 ICAPP를 주도하고 있다. 헌장을 기초하고, 상임위원회와 사무국 등 조직체계의 틀을 만들었다. 이번 총회 공동선언문도 말레이시아 집권당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와 협의해 정 사무총장이 작성했다.

공식 외교는 다양한 교류를 통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주목받지 못하고 보수도 없는 일을 계속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달 27일 서울 ICAPP 사무국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두 번을 더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광화문 외교부 청사와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사무국에는 이번 총회에서 쓸 문서가 박스째 쌓여 있었다. 52개국 360여 개 정당이 참여하는 단체 사무국이라고 하기엔 초라하다. 이번 주 초 만난 그는 공동선언에 담길 남중국해 문제의 표현을 두고 베트남·중국 측과 의견 조율을 하느라 골치를 썩고 있었다.
 
ICAPP가 기여한 게 있나요.
“아시아의 민주주의 제도 확산에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복수정당제도에 바탕에 둔 민주주의를 확산하고 있어요. 모든 정당에 문을 열어놓고 있거든요. 이번에도 36개국 86개 정당이 참여하는데 몰디브 같은 작은 나라도 서너 개 정당이 참여합니다.”
그 정도로 다원주의를 확산한다고 할 수 있나요.
“예를 들면 지난해 네팔이 민주헌법을 제정할 때 유엔 대신 ICAPP에 중재해 달라고 요청해 도와줬어요. 네팔의 세 정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만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해줬다고 굉장히 고마워했어요.”
ICAPP 중재로 처음 만난다고요.
“그런 일이 굉장히 많죠. 2014년에는 스리랑카도 마힌다 라자팍사 대통령을 설득해 ICAPP 총회를 야당과 같이 주최하게 했어요. 그때 야당 당수가 라자팍사 대통령을 몇 년 만에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지난해에 정권이 교체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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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ICAPP 상임위원들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유엔 차원의 협력을 요청했다. 왼쪽부터 테오 삼바가 인도네시아 노동당(GOLKAR) 부총재, 무사히드 후세인 사예드 전 파키스탄 상원 군사 위원장, 호세 데 베네시아 전 인도네시아 국회의장, 반기문 총장, 정의용 ICAPP 사무총장, 샤르마 올리 전 네팔 총리, 아사프 하시에프 전 아제르바이잔 외무위원장, 수수야라 전 캄보디아 의원.

2013년에는 미얀마 군사 정부의 통합단결발전당(USDP)과 ICAPP 상임위원회가 인권 신장과 보호, 다당제를 통한 민주주의 제도 확립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그걸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저는 그 회의를 위해 사전에 두 번이나 네피도를 찾아갔어요.”
 
북한도 참여했던데.
“최근에 뜸한데, 그전에는 상당히 활발하게 왔어요. 대개 노동당의 부부장급이 옵니다. 지난해 5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지역 협력에 관한 특별회의를 개최했을 때도 노동당 부부장이 왔어요.”
핵 문제를 언급한 적도 있죠.
“핵 문제를 포함해 남북한 사이의 문제는 당사자 간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채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ICAPP는 역내, 특히 양자 간 갈등이나 분쟁을 논의하거나 중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역내 공동과제를 어떻게 합심해 풀어 나가느냐 하는 의견을 교환하는 곳이죠. 이런 원칙에 대해서는 서로 양해가 돼 있습니다. 그런데 2010년 12월 캄보디아에서 열린 6차 총회는 연평도 포격 직후여서 남북한 정당 대표들이 서로 비난 발언을 했습니다. 그 바람에 회의를 주재하는 입장에서 제가 매우 난처했습니다.”
외교부와는 어떤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저도 외교부에서 오래 근무했지만 외교부가 폐쇄적이라는 외부 비판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국내의 다양한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야죠. 외교부가 최근 공공외교를 강조하고 있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외교적 자산을 활용했으면 합니다.”
ICAPP에서 만나는 것으로 끝나면 의미가 없고, 한국 내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필요하지 않나요.
“저로서는 외교부 예산과 인력을 지원받아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외교부가 소극적인 것 같아 서운했어요. 다행히 올해부터 우리 정부가 총리실 예산으로 ICAPP 사무국 활동을 지원해 주기로 결정해 다른 나라에서도 다들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의 외교정책은 안정적이지 못하죠.
“한계가 있어요. 그렇지만 정치인들이 상당히 순수한 데가 있더라고요. 저는 열린우리당 의원 시절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았어요. 대표들과 생각이 무지하게 달랐는데도 항상 결정하기 전 제 의견을 경청하더라고요. 그것을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한 인권 문제 이런 데서 의견이 달랐던 거죠.
“대일 관계에서도 그렇게 심한 표현을 쓰는 게 아니라고 했고, 한·미 현안을 해결해 나갈 때도 표현을 잘해야 한다고 했죠. 예를 들어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내면서 ‘우리가 보내고 싶지 않은데 미국이 요구해와 보낸다’ 이런 식으로 작성한 거예요.”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마찰이 있지 않았나요.
“대부분 노 전 대통령이 한·미 동맹 관계에 많은 어려움을 야기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주한미군 재배치, 한·미 FTA 같은 굵직한 현안들을 원만히 해결했습니다. 다만 외교적 표현이 거칠어 미국과 국내 여론으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많이 샀다고 봅니다.”

그는 한·미 FTA 때의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청와대 대책회의에서 당시 노 대통령이 ‘한·미 FTA 이거 참 좋은 건데,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하고 물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거는 대통령께서 하시면 최고로 잘하신다. 직접 하시면 된다. 지금까지 너무 잘하셨다’고 했어요. 나는 진심으로 칭찬을 한 건데 오해도 받았어요.”
 
쉽게 잘 전달했나 보네요.
“예. 한 번도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이 정확했어요. 정말 FTA에 대해서는 노 전 대통령이 굉장히 말을 잘했어요.”
어떻게 외교관이 되려고 했습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2년 전국 영어 토론대회에서 선발돼 미국 신문 뉴욕데일리미러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토론대회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시카고의 한 고등학교에 한 달 반 다니게 됐는데, 그게 계기가 됐죠. 서울대 외교학과로 진학하고….”
정치는 어떻게 하게 됐어요.
“아직도 몰라요. 2004년 1월 말에 제네바 대사를 마치고 돌아왔어요. 그때 국제노동기구(ILO) 의장을 맡고 있어 그해 3월 집행이사회를 하느라 제네바에 가 있었죠.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강제노동 문제로 유럽과 중동 대사 20여 명이 내 방에서 다투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전화가 왔어요. ‘거기 왜 갔느냐’ ‘ILO가 뭐냐’고 묻더니 ‘아 국제노동기구 의장이십니까’ 하더라고요. 입맛에 딱 맞았던 거죠. 그때 비례대표로 몇 사람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 했는데 며칠 뒤 저로 발표했어요.”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외무고시 5회에 합격한 뒤 통상국장, 주미 공사, 이스라엘 대사, 제네바 대사, 17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의 이종사촌이다. 지난 대선 때 정 사무총장은 문재인 캠프, 이 전 실장은 박근혜 캠프에 있었다.
 
[S BOX] 창립 16년 ICAPP 서울에 사무국…중국·몽골 “요원 파견하고 싶다”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는 2000년 9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만들어졌다. 그때 한국에서도 김영삼 전 대통령,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등 10여 명이 참여했다. 현재 52개국 360여 개 정당이 참여하고 있다.

방콕(2002), 베이징(2004)을 거쳐 2006년 서울에서도 총회를 열었다. 사무국은 서울에 있다. 정의용 사무총장은 서울 총회 준비 때부터 상임위 공동의장과 사무총장을 겸하며 이 회의체를 주도해 왔다.

“구체적인 행동은 어려워요. 그렇지만 각국의 고위급 지도자가 참여하고 있어 생각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도움을 준다고 봅니다. 빈곤 감소,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방지, 정치 부패, 테러 등을 다루어 왔습니다.”

지난해 4월 자카르타에서 3대륙 정당회의를 열었다. 중남미정당회의(COPPPAL)와 아프리카정당회의(CAPP)가 참여했다. 내년에는 아프리카에서 열린다. ICAPP가 유엔 옵서버로 등록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유엔에 정식 의석은 없지만 회의에 출석하거나 유엔 활동에 참가하는 단체를 말한다.

한국이 사무총장을 계속 맡는다는 공감대가 있다. 사무국을 유치하거나 사무차장이라도 차지하려는 나라도 있다. 몽골·아제르바이잔·중국 등 사무국 요원을 파견하고 싶어 하는 나라도 있다.

글=김진국 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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